채찍 말고 당근이 필요할 때
앞의 "왜"를 답해보는 과정을 통해 의지력이 샘솟았다. 이제 모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다음날부터 미친 듯이 몰두해서 "저는 게으름과 무기력을 탈피하고 새로운 나로 변화했어요" 하면 좋으련만 인생이 어디 그리 쉽던가.
불타오르던 의지력은 조금씩 사그라들고 다시 게으름이 나를 붙잡는다. 나도 모르게 다시 스마트폰과 침대와 한 몸이 돼 간다. "니가 그러면 그렇지." "빨리 일어나서 뭐라도 좀 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나를 채찍질한다.
마음은 먹었는데 몸이 안 따라줄 때 우리는 우리에게 화를 내고 윽박지른다.
의지력이 약한 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나, 게으른 나, 멍청한 나. 난 나에게 무수한 채찍만 휘둘렀다.
아이를 키울 때도 엄격한 훈육과 칭찬을 적절하게 섞어야 아이의 성장에 효과적인 것을.
나는 왜 그동안 나에게 당근을 주는 걸 잊어버렸을까?
그래서 나는 채찍은 잠시 내려놓고 당근을 주기로 했다.
어제까진 분명 내일 운동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오늘은 그냥 쉴까? 가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꼭 가야 할 나만의 당근을 찾아 운동을 가게끔 만들었다. 예를 들어 운동하는 곳 옆에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집을 찾아놓는다. 메뉴를 온라인으로 미리 보고 내일 운동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그 메뉴를 먹어야지 하며 잠이 든다. 아침이 되어 운동이 가기 싫어도 그 디저트를 먹고 싶은 마음에 참고 오늘만 가보자 하고 나를 달래며 집을 나섰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나중에는 운동 후 기분이 상쾌해져서, 운동 후 몸 컨디션이 좋아져서, 심지어는 운동 자체가 좋아져서 보상 없이도 꾸준히 가게 되었다.
또 다른 예로는 다음날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최대한 내 기분을 끌어올릴 환경을 만들었다. 전날 그 일을 할 때 들을 음악을 미리 골라놓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미리 사놓았다. 그리고 그 음악과 커피는 절대 미리 듣거나 마시지 않았다. 딱 그 시간만을 위해 남겨 두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작업하는 그 시간 자체가 내게 행복이 되었다. 귀찮고 게을러질 때도 그 행복한 기분이 떠오르며 "그래, 오늘도 해보자" 라며 의자에 앉게 되는 놀라운 일도 일어났다.
행복한 소비생활에 대한 책 "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의 엘리자베스 던 교수 역시 평소에는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카페라테의 날을 정한다고 한다. 뭔가를 해내거나 성과를 거 둔 날에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다. 그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상을 통해 행복을 증진하는 동시에 성과나 실적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내가 해오던 것이 실제로 연구결과에서 효과가 있다고 입증되니 신기하다. 아니, 그럼 안 할 이유가 더 없지 않은가! 나처럼 어린아이 정도의 의지력을 가지고 있으며 아주 게으르고 무기력하다면, 나를 어린아이라고 생각하고 어르고 달래 보자. 채찍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는 당근이 필요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