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2)

by 홍진희

「용악산 일대는

- 험준한 지형

- 다수의 실종 사고 발생

- 전자기기 및 통신 기기 작동 이상

등의 이유로 각종 사고가 반복되고 있으며 구조가 지연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입산 시 어떠한 안전도 보장되지 않으며 적발 시 '산림보호법 제15조 및 제57조'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강한 어조의 경고문 앞에 선 해인의 머리 위로 헬리콥터가 요란하게 지나갔다. 등산로 입구를 막아놓은 철조망과 경고문에 슨 적갈색 녹은 이 산이 오랜 시간을 고집스럽게 외부의 접근을 거부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강력한 금기는 강력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법. 산에 올랐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사연과 한때 이 산에서 활약했던 인간 사냥꾼의 이야기에 과장이 더해진 온갖 사연들이 섞여 용악산은 이제 괴담의 장소로 전락해 버렸고 금기는 오히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호객행위가 되어버렸다.

해인은 이른 아침부터 등산로 입구에 모인 유튜버와 무속인을 포함해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조차 돈벌이 수단으로 바꾸는 자본주의의 무한한 능력을 목격하는 중이었다. 콘텐츠에 목말라 있는 이들의 흐릿한 눈은 오래전 경고문만 붙여 놓고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던 경찰이 우르르 등장하자 기대감으로 반짝였다. 입구에 들어서기 전 주변을 정리하는 경찰의 움직임에 금세 실망으로 바뀌긴 했지만.

불필요한 인원을 해산시킨 후 산림청 관계자가 오랜 시간 굳게 닫혔던 철조망의 자물쇠를 열자 경찰과 구조대가 등산로 입구로 줄지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해진 인원이 모두 들어선 걸 확인하고 나서야 순규가 철조망을 넘자 그 뒤를 해인이 바짝 따라붙었다.

야수의 인간 사냥이 벌어지기 전 용악산은 입산이 금지된 산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전에도 낙상과 실종사고가 잦았고, 일제강점기 이 산에 살던 승려 귀신이 나타난다는 등 인평시 내에서 떠돌던 출처 불명의 전설들이 많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강우에게 경고를 들어왔던 해인은 살면서 한 번도 용악산에 오른 적이 없었다. 강우 때문에 꺼리던 이 산을 강우를 찾기 위해 오다니 그 아이러니함에 괜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강우는 사냥에는 취미가 전혀 없었지."

앞서 가던 순규가 걸음을 늦춰 해인과 보폭을 맞추며 말을 꺼냈다. 순규에게서 강우의 이야기를 듣는 건 오랜만이었다.

"나하고 철기는 사냥을 워낙 좋아해서 매년 겨울만 기다렸는데 말이야. 용악산은 사람들이 자주 다니던 산도 아니어서 짐승 사냥 하기에 이만한 데가 없었다. 우린 1년 내낸 수렵허가기간만 기다렸어. 그래서 현명우가 돌아왔을 때 나랑 철기가 그놈을 얼마나 반겼는지 몰라. 이제 제대로 사냥 좀 해보겠구나 싶었거든."

명우가 강우, 순규와 인평시에서 함께 자란 친구였다는 건 해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강우와 순규의 대화에서 간혹 김철기라는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있었다.

"가끔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에 빠질 때가 있어. 그러면 늘 결론은 하나야.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다."

안 그래도 낮은 순규의 음성이 산을 감싸고 있는 안개만큼이나 더 짙고 무겁게 깔렸다. 야수의 첫 번째 사냥이 드러난 날도 아마 이렇게 안개가 짙게 깔린 날이었을 거다. 돈이 될 만한 거라면 뭐든 채취를 할 각오로 산에 올랐던 인근 주민이 짙은 안개에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가 바위 아래 묻혀있던 60대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진술했으니까.

누군가 등 뒤에서 엽총을 이용해 여성의 가슴을 쏜 거라는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경찰은 사냥감을 오인한 밀렵꾼의 범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후 세 구의 시신이 더 발견되었고 모두가 엽총에 의한 사망이라는 사실에 경찰은 결국 고의적 살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한 사람에 의한 연쇄살인. 냄새를 맡은 언론은 용악산에서 인간 사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냈다.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우연히 범행을 목격한 심마니까지 등장했다. 심마니는 멧돼지 가면에 짐승 가죽을 두른 범인의 기괴한 행색을 언론에 증언했고 '야수와 다름없는 연쇄살인마'라는 어느 언론사의 헤드라인 덕분에 범인은 야수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별명은 범인의 자아가 비대해지는데 큰 영향을 준 듯했다. 야수라는 별명을 얻은 후로는 사냥감을 숨겨두었던 기존의 습성을 버리고 과감하게 전시하는 쪽으로 방식을 바꿨으니 말이다. 탐욕스러운 포식자의 사냥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2년 동안 스물두 명이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사냥 실력을 뽐내던 야수에게 실패는 큰 충격이었던 걸까. 검거된 후 야수는 자신의 사냥 업적에 대해 단 한 번도 자랑삼아 이야기한 적이 없는 건 물론 실종된 강우와 철기의 행방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함구하고 있었다.

순규는 동시에 세 명의 친구를 잃었다. 한 명은 연쇄살인마가 되었고 그 살인마에 의해 두 명의 친구는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해인은 하나뿐인 가족을 잃었다. 잃은 자들의 숫자를 셈하거나, 가족을 잃은 자와 친구를 잃은 자 중 누가 더 괴로울지 고통의 무게를 재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야수로 인해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았고 그건 완료가 아닌 진행형이었다.

"저한테 아빠 전화 못 받은 거 자책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삼촌이 그런 말을 하면 제가 무슨 생각이 들겠어요."

야수가 준 고통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당사자들이 잘 알고 있겠지만. 그럼에도 상처받은 서로를 보듬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며. 그게 현재로서는 야수에게 대항할 유일한 무기였다. 실의에 빠져있던 해인에게 순규가 먼저 이 사실을 일깨워줬고 해인 역시 순규가 흔들릴 때는 일깨워줘야 했다. 상처받은 자들의 본능적이고 암묵적인 위로였다.


"어쩌면 우리는 전부 피해자일지도 모르지. 현명우 마저도."

해인과는 다르게 현명우와 한때 정이 있던 사이이기에 순규는 이런 연민을 가질 수 있는 걸까? 하지만 해인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짐승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인간성을 버리고 짐승의 길을 선택한 계기가 있기 마련이야."

해인의 얼굴에서 마음을 읽은 건지 순규는 두꺼운 손으로 해인의 어깨를 다정히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현명우한테는 그게 아내의 죽음이었을 거고."

"강도에게 살해당했다는 건 들었어요. 삼촌은 현명우가 그 충격으로 야수가 됐다고 생각하세요?"

"제수씨를 죽인 범인이 죗값을 제대로 치렀다면 명우도 야수가 되지는 않았을 거다."

현명우가 검거되기 4년 전에 아내가 강도에 의해 사망한 일은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 사건의 용의자가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기에 아내도 사실 현명우가 살해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야수의 재판이 진행되면서 잔혹한 범행 방식이 화제가 되자 아내를 살해한 진범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사실 해인도 현명우가 자신의 아내를 살해했을 거라 의심해 왔다. 많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들이 자신의 가족을 살해했다. 현명우가 아내를 살해했다는 의심도 합리적인 추론이라 여겼다. 하지만 순규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인평시 국회의원 조카였어. 명우 아내를 죽인 놈 말이다. 마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명우의 집에 침입했는데 하필이면 집에 제수씨가 혼자 있는 바람에 화를 입은 거지."

처음 듣는 얘기였다. 어느 언론에서인가는 다뤘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주목을 받지는 못했는지 국회의원의 조카가 마약에 취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 말은 국회의원의 조카가 진범이 맞는데 누군가 힘을 써서 무죄가 됐단 말씀이세요?"

"범인이 자유의 몸이 된 날 명우가 놈을 납치했어. 바로 여기, 이 산으로."

해인의 질문과 상관없는 답이 나왔지만 그게 오히려 긍정의 뜻이라는 게 분명했다.

"다행히 철기가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고 나랑 강우가 늦지 않게 말릴 수 있었지."

"그럼 그날 복수를 하지 못한 분노로 현명우가 야수가 된 건가요? 다른 사람에게 그 분노를 풀기 위해서?"

"제수씨를 죽인 범인은 사라졌어."

사라졌다니. 겁을 먹고 도주라도 했다는 건가? 아니면 다른 화를 입기라도 했다는 건가? 해인은 순규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명우는 특수부대 출신의 유능한 용병이었어. 정확히 어떤 일을 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 한 명 흔적을 지우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듣기로는 여러 용병 회사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을 제시하면서까지 스카우트하려고 열을 올렸다 하더라. 하지만 명우는 가족과의 안온한 삶을 택했지. 그 선택이 모든 재앙이 되었지만."

그 말은 증거는 없지만 야수의 첫 번째 사냥감이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하지만 국회의원 조카의 실종과 야수가 연관이 있다는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기에 정식 수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순규는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낸 걸까?

의문이 가득한 시선을 순규에게로 돌린 순간 해인은 깨달았다. 현명우의 이야기하는 순규의 얼굴에 드러난 표정은 동정이었다. 해인도 제삼자의 입장이었다면 현명우에게 미약하게나마 연민을 느낄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인간 사냥이라는 비상식적인 범죄를 선택하지는 않으니까. 현명우 때문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 중 누구도 야수가 되는 길을 택하지는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딱했다고 해서 그 결과를 참혹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는 없는 거였다. 그런데도 순규는 현명우를 동정했다. 이 정도로 둘의 우정이 끈끈했던 걸까?

해인의 심정을 순규도 이해했는지 더는 별 다른 말없이 다시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가만 보던 해인은 순규가 오늘따라 많이 늙고 지쳐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색이 네 시간 넘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직 지승이 말한 낡은 암자나 뒤틀린 나무 숲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영진이나 태수처럼 대놓고 불만을 비치지는 않았지만 수색을 해보자 했던 서린도 슬슬 회의론자들에게 설득당하는 눈치였다.

"더 올라가면 전자기기도 작동 안 할 텐데 여기서 박팀장님 연락을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서장님?"

지친 얼굴의 태수가 점점 노이즈가 많이 끼기 시작한 무전기를 두드리며 물었다. 날카로워진 신경을 애써 감추며 부러 더 나긋나긋 말하는 것 같았다.

"이지승이란 사람이 그 암자랑 나무 숲이 정상 근처에 있다고 했어요."

혹여 여기까지 와놓고 철수하는 불상사가 생길까 해인이 태수와 순규의 시선을 차단하고 섰다. 강우의 시신을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지승이 조난을 당한 게 사실이라면 벌써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전화 목소리가 아무리 멀쩡했어도 어떤 부상을 입었을지는 알 수 없는 거였다. 게다가 지승이 말한 야수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사람은 생사조차 불분명한 상태였다. 하지만 1초가 아까워 초조해하는 해인과 달리 경찰들은 느긋해 보였다. 이게 전부 망할 핸드폰 때문이었다. 증거만 확실히 남았어도 모두가 믿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에 해인은 가방에서 지승의 전화를 받았던 구식 폰을 꺼내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오랜 기간 전원이 나가있던 상태라 화면은 벌써 방전된 상태였다. 민하에게 연락을 해보겠다며 한쪽으로 빠져있던 서린이 그런 해인에게 다가왔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곤란해 보이는 표정을 지은 채. 해인이 이유를 묻기도 전에 서린이 먼저 아직 통화가 끊기지 않은 핸드폰을 내밀었다.

"박민하 팀장님이에요. 받아보세요."

핸드폰을 넘기고는 곧바로 순규에게 보고를 하러 가는 서린의 분위기를 보니 좋은 소식이 들리지는 않을 거라는 걸 각오하고 해인은 전화를 받았다.

"네, 삼촌. 세진병원에 가보셨어요?"

하지만 핸드폰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는 민하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낯이 익은 목소리인 건 확실했다.

"이지승입니다. 제가 용악산에서 조난을 당했다는 신고를 하셨다고요. 누구시죠?"

지난밤 해인에게 살려달라 애원을 하던 남자가 짜증이 잔뜩 베인 목소리로 묻고 있었다.

"무슨 목적으로 제어 대한 거짓 신고를 하신 겁니까?"


-계속-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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