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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Feb 06. 2020

직장인의 퇴근 후 루틴

평일 다섯 시 오십오 분쯤 되면 머릿속에서 알람이 울린다.

퇴근 오 분 전!


잔업으로 야근할 일이 없다면 집에 갈 시간. 정말이지 하루 중 이때만큼 신나는 시간이 또 있을까. 직장인에게는 낭만적이기까지 한 ‘퇴근’이라는 단어(같은 카테고리에 월급, 승진, 휴무, 상여 등이 있다)는 만병통치약처럼 스트레스로 지끈거리는 두뇌도 금세 맑아지게 만든다.


그날의 업무를 대강 마무리하고 나면 종일 켜놓았던 모니터의 화면을 끄고, 책상 위에 굴러다니던 볼펜과 연필을 펜꽂이에 넣어두고, 다 쓴 메모지는 버리고, 꺼내놓았던 도장함을 잠근다. 자리에서 일어나 개인 사물함에서 겉옷을 갖고 나오며 하루 중 가장 밝고 큰 목소리로 “먼저 가보겠습니다”라고 하면 나의 퇴근 후 일상이 시작되는 시간 오후 여섯 시가 찾아온다.


작금의 계절. 한겨울에는 퇴근하면 이미 밤인 듯 어둑해져서 불빛으로 가득 찬 풍경이었다면 지금은 겨울인 듯하면서도 어둠은 꽤 늦게 찾아와 주변의 풍경을 고스란히 눈에 담을 수 있다. 퇴근하고 나면 만감이 교차한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기, 라는 미션을 완수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 나름대로 생산적인 일을 하며 건설적으로 살고 있구나, 라는 자부심도 느껴진다. 게 중에서도 가장 만족스러운 퇴근길은 오늘 하루가 사건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갔구나,라고 느낄 때이다. 퇴근 후 술이 마시고 싶어 지는 경우가 두 가지 있는데 전자는 기분 좋은 일이 생겨서 자축하고 싶은 경우. 승진이라던지, 업무에서 인정받아 이익이 되는 이벤트가 발생한다던지. 그런 날이면 괜히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사 가 치얼스- 하면서 기분 좋게 취하고 싶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아 오늘은 퇴근하면 맥주 각 혹은 소주 각이다, 싶어 지는 날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식으로 주종이 확고하게 정해진 날이면 회사에서 한소리 (그냥 흘러보내도 되는 잔소리 말고 업무 책임자로서 책임져야 할 심각한 상황)를 듣고 화장실에서 몰래 울고 왔다거나, 위로해주는 동료 직원들과 회사 욕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술로 풀고 싶은 날이었다는 의미다. 지긋지긋한 애증의 회사. 그래서 금요일 저녁만 되면 유난히 술이 마시고 싶어 지는지도 모른다. 술을 마시면서 스트레스도, 잠깐의 기쁨도 다 흘려보내고 다시 다음날이 되면 지금껏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하기 위해서. 이직하지 않고 첫 직장에서 벌써 5년 차가 된 지금.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히 일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받으며 익숙한 사람들과 더불어 손에 익은 업무를 하고 있다는 건 이따금 무료해지거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럼에도 뿌듯하다. 그냥 오늘 하루도 잘 버틴 내 자신이.


퇴근길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저녁은 뭘 먹을까 생각하며 어슴푸레해진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가끔은 흰 낮달이 떠있기도 하고 구름도 보인다. 어둠과 불빛으로 가득했던 지난달과 다르게 한여름의 저녁인 듯 아직은 밝다. 계절이 자기 멋대로인 게 어느 날은 코트를 입고 나올걸, 싶을 정도로 날이 좋아서 패딩을 입은 게 과하다 싶었는데 또 어느 날엔 롱 패딩을 입고도 옷 속으로 시린 바람이 들어와서 핫팩까지 꼭 쥐고 있어야 할 만큼 한파가 몰아닥친다. 하루하루 매 순간 달라지는 내 일상처럼.


오전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주 사십 시간이 일을 위한 루틴이었다면 이제 여섯 시부터 취침 전까지 개인 여가생활을 위한 제2의 루틴이 시작된다.


요즈음의 루틴은 집에 와서 씻고 가족들과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주말에 열심히 정리정돈 한 책상 앞에 앉는 것.

회사에서도 종일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또 책상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책상이 너무 좋다. 정확히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며놓은 책상이.

새로 장만한 책상 의자에 앉아서 스탠드를 킨 다음 아이패드를 켜서 브런치 글도 쓰고 단편소설도 작업하고 심심하면 유튜브나 인터넷도 하고.

가끔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좋아하는 곡을 틀어놓고 스티커를 잔뜩 꺼내놓은 다음 볼펜이나 연필을 집어 다이어리도 꾸미기도 하는 나만의 공간.

이따금 책도 읽고 색연필이나 오일파스텔로 낙서하면서 그림도 그려보고 작업할 수 있는 나의 작은 서재 내 방, 내 책상.

회사에선 일만 해야 하는 책상이 집에서는 좋아하는 것들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취미생활을 위한 이 두 번째 루틴이 나는 더 마음에 든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의 행복을 위해 구매한 것들은 여태 열심히 일한 대가로 나온 월급으로 산 거니까 결국은 취미생활을 하고 싶으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자기 계발을 위해 소비하는 건 적금 드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소소하게 하루를 조금 더 가치 있고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또다시 내일 업무를 열심히 할 에너지의 원천은 퇴근 후 루틴을 통해 이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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