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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Nov 13. 2020

슬픔을 가져다주는 것들에 관하여

슬픔은 감추고 싶은 것이다.

다들 슬픔은 민낯처럼 고스란히 드러내기보다 꾹꾹 눌러 담아 표출하지 않으려 한다.

당최 티 내지 않으려 한다.


울었냐는 물음은 짐짓 사람을 부끄럽게 만든다. 대부분은 울었냐는 물음엔 아니, 라며 반문하곤 벌게진 눈가를 소매로 훔쳐내 짠 눈물기를 지워낸다.

그럼에도 슬픔은 벌건 눈가에, 축 처진 입꼬리에, 떨리는 턱 근육에, 처진 어깨에 덕지덕지 묻어있다.

애잔한 것들은 너무도 사소하고 작은 마음들에서 시작하여 우리를 울게 만들고야 만다.


심장을 쿡쿡 찌르고, 위장을 덜덜 떨게 만들며, 영혼의 반을 어딘가에 저당 잡힌 듯 현실감 없는 기분을 들게 한다.

울컥 터져 나오는 울음은 소리 없이 묻히거나 혹은 짐승처럼 목놓아 포효하게 되기도 한다.

나는 슬픔이 몰고 오는 감정엔 무너져내리는 일이 잦아서 그럴 때면 참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울곤 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화장실 한 칸에 숨어들어 울기도 했고, 마냥 주체되지 않는 감정일 때는 시선 따위 상관없이.

배설하듯 눈물이라도 흠뻑 쏟아내어 그렇게 해소해야 풀어지는 감정도 있는 것이다.


나를 슬프게 하는 숱한 것들이 있다.

생채기를 내는 말 한마디. 무례함. 아집 등의 태도.

태도이기만 하면 좋으련만, 이따금은 사람이 사람을 서글프게 하고 물건이 사람을 애달프게 만든다.

이렇게 슬프게만 하면 좋으련만, 때때로 거칠고 모질게, 세상 밖으로 내몰기를 작정한 듯 매몰차서 사람을 아프게 한다.

앓게 만든다.


슬픔을 가져다주는 것들은 결국 나를 울리고야 만다.

상실이 가져오는 공허함은 마음을 가난하게 만든다.

빈곤해진 마음을 채워주는 것은 또 다른 이의 마음.


슬픔은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슬픔은 과시하고 싶은 액세서리가 아니기에, 마음을 추스르며 노출하려 하지 않는다.

당최 티 내려하지 않는다.


슬픔을 가져다주는 것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애착이 갈 수밖에 없는, 내 안에도 존재할 그 서툰 마음과 감정과 태도에게.

그것들이 나를 또 울릴 것을 알면서도, 다시 내 곁을 찾아와 나를 슬프게 할 것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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