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평 남짓한 내 방 안에서 가장 애정 하는 것들을 소개합니다.
아홉 번째. 거울.
참 신기하면서도 오싹한 사실이 사람들은 자신의 본 얼굴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대체품을 이용하는 것 말곤 없다는 거예요.
지금이야 거울도 있고, 사진도 있고, 심지어 핸드폰 셀프 카메라 기능도 있어서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모습을 쉽게 점검하고 들여다보고 안 보이는 뒷모습도 확인하고 그럴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이 발명되기 이전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던 건지.
그림은 최대한 사실적이라고 해도 화풍도 다르고, 미화되거나 왜곡되는 부분이 발생할 수 있지만(몰론 핸드폰 어플도 뛰어나서 보정 효과가 있지만요) 거울은 직접적으로 자신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도구임이 맞는 것 같아요.
방을 꾸미면서 거울 종류를 여러 개 서치 하다 제가 찾은 거울은 비정형 거울이었어요. 정사각형, 원형, 직사각형 등 곡선이나 직선으로 딱 떨어지는 느낌보단 보다 자유로운 형태의 흐름이 예뻐 보였거든요. 화장할 때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볼 작은 서브 거울 말고 메인으로 사용할 조금 큰 사이즈의 거울을 들였더니 괜히 방 안이 더 넓어 보이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 등 뒤의 모습을 거울이 담아놓고 보여주었는데 얼룩지고 낡은 벽지를 가리기 위해 달았던 노란색 커튼. 철 지났는데도 치워놓을 곳이 없어 구석에 둔 채 그대로 두 계절을 보낸 먼지가 조금 쌓인 선풍기가 제일 먼저 보이더라고요. 방향을 조금 더 틀어서 보면 문이 살짝 덜 닫힌 옷장도 보였고, 침대에 정리하지 않고 어질러둔 이불도 보이는 위치. 그 자리에 제 거울을 딱 놓아두었어요. 깨끗한 거울로 제 방이, 그 앞의 제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더라고요.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는데 큰 거울로 얼굴을 보니까 어쩐지 제 얼굴이 조금 생경하게 느껴졌어요.
짝눈도 더 티가 나는 것 같고, 다듬은 눈썹이 비대칭인 것도 알아챌 수 있었고, 트러블이 나서 붉게 올라온 자국도 보이고.
여태 화장대가 별도로 없어서, 엄마의 삼단 서랍장을 방에 들이고 그 위에 거울이랑 화장품을 올려두고 화장대로 사용했었는데 큰 거울의 위치를 그 서랍장 위에 두니 딱 알맞더라고요.
그러고 나니 거울도 있겠다, 화장대도 만들어진 거 같아서 책상 의자 하나로 화장대와 책상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대신, 화장대용 스툴도 새로 구입했고 여태 모아 온 소품들로 서랍장 위를 작정하듯 꾸며두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물건 전시해두기,라고 하면 맞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취향을 다 넣어 만든 작은 포토존. 때때로 주말에 청소도 하고 배치도 바꾸고 이따금 꽃집에서 사 온 꽃도 화병에 두고 하면서. 지금 보니 여태 소개한 페이보릿 띵스 대부분이 그 작은 서랍장 주위에 있네요.
이토록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에서 보이는 제 표정은 참 여러 가지예요. 회사 책상 앞 거울에서의 어른스러운 표정, 엘리베이터 거울에서의 무표정, 화장실 거울에서 모습을 점검할 때 보이는 신중한 표정... 집 안의 거울에선 그런 걸 다 떠나 그냥 민낯의 저 자체로 보이곤 해요.
머리를 막 감고 나와서 말리지도 않은 상태일 때도 있고, 자고 일어나면 붓기가 빠지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고, 외출을 할 때엔 화장에 집중하느라 진지한 표정, 그리고 어떤 옷을 매치해 입을까 옷을 대보곤 골몰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해요.
가끔 울고 나서 벌게진 눈가도 보이고,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도 보이고. 밖에서의 나보단 좀 더 솔직하고, 꾸밈없는 표정은 맞는 것 같아요. 적어도 밖에선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 때도 있으니깐.
그런 거울처럼 투명하게 저를 보여줄 수 있는, 그리고 그렇게 투명하게 자신을 드러내 줄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기하게 오래된 친구들과 mbti를 했더니 대부분 비슷한 유형이 나오더라고요. 닮았기 때문에 친해질 수 있었던 건지, 친해졌기 때문에 닮아가는 건지 우선순위가 뭐였을지도 궁금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오래오래 같이 갔으면 해요. 무너지려 할 때, 우울해할 때, 나를 잡아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더 많이 알고 싶어지는 요즘이에요.
가끔 삶에 회의가 들거나 지금이 불안해지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겠죠? 모든 게 우리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겪는 현상이지만 저는 최근에 공황이 다시 심해지면서 이제는 방 안에서도 불안이 심해지는 때가 있거든요.
가슴팍이 답답하고 숨이 가쁘고 그래서 한숨을 자주 내쉬고 있어요. 다른 이들은 그런 우울감이 느껴지면 어떻게 극복하려고 할지 궁금해요. 그럴 때 저는 제 방에 작은 스탠드들에 불을 켜고, 스피커에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틀어놓고, 책상에 앉아 혹은 침대에 머리를 기대고 좋아하는 일을 해요.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하고, 유튜브로 재미있는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웹툰을 보기도 하고, 비즈 반지를 만들기도 하고, 피부관리를 하기도 하고, 그냥 그대로 잠들어버리기도 하고.
어떤 글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게 좋다고 하더라고요. 동감하는 바예요. 후회 없이 살아야겠어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은 선택이니까 차라리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좋아하는 게 가득 차 있는 공간. 취미를, 취향을 모으기 위해 쓰는 돈은 아깝지 않아요.
그러기 위해 돈을 벌고 있다, 고 생각하며 적당히 소비하는 중이지만 어쨌든 아마 제 생활비의 대부분은 취향을 위해 소비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을 거예요. 예쁜 것, 귀여운 것, 아름다운 것, 작은 것, 반짝이는 것, 클래식한 것.
고운 것들을 모아서 방을 꾸미는데 어쩌면 전생이 까마귀였을지도 모르겠어요. 자기 둥지를 꾸미기 위해 이것저것 집어오는 검은 새 한 마리처럼.
아직 독립하지 않았지만 제 방 안에서의 시간들을 가족들이 방해하지 않다 보니 그냥 지금처럼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게 느껴져요. 적어도 지나온 시간 중에 후회되는 건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