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아이는 버릇이 없다.‘
'아들을 가진 엄마들은 아무 곳에서나 소변을 보게 한다.'
몇 년 전, 한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 두 가지 주제로 난리가 났다. 댓글 폭발로 글쓴이가 글을 삭제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날 선 글들이 오갔는지 짐작이 간다. '외동아이는 버릇 없다.’는 말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듣던 소리였다. 나는 외동이 아니었지만, 외동아이를 키우고 있던 외숙모에게 어른들이 늘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제삼자 입장의 어렸던 나도 기억이 날 만큼 자주 들었을 정도였으니 본인들은 얼마나 듣기 싫었을까 싶다.
글쎄, 외동아이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 이 말에 신경 쓰지 않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의 외동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가 버릇이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오히려 더 엄하게 키우고 있을 것이다. 외동아이라서 버릇이 없고 형제자매라서 예의가 바른 것은 아니다. 결국은 아이의 성향이고 부모의 양육 태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뿐인데, 그걸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아 난 모르겠고~'라며 그저 상처 내기에만 급급해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외동 엄마들은 다둥 엄마에게 "둘째는 (육아가 힘들어 막 키울 테니) 발로 키우겠어요."라 하고 다둥 엄마는 외동 엄마에게 "하나라 (너무 쉬워서) 발로 키우겠어요." 라고 한단다. 서로 상처 내기의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외동 엄마로서 나는 둘 셋씩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하나도 버거운데 둘 셋씩 챙기려면 얼마나 바쁘고 힘들까.'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각자 가진 생각의 차이인 것이지 외동 엄마의 생각과 다둥 엄마의 생각이 반드시 저렇다고 치부하며 싸운다는 것 자체가 답답할 노릇이다.
'화단에서 소변을 보게 하는 거 너무한 거 아닌가요?'
이 글에선 아들 가진 엄마와 딸 가진 엄마의 싸움이었다. 급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지만, 화단은 괜찮지 않냐, 아무리 급해도 근처 화장실을 찾아야 한다, 딸들은 다 그렇게 키운다, 무슨 소리냐 딸들도 버젓이 보이는 곳에서 소변을 누고 있는 것을 많이봤다. 그런 싸움 와중에 이런 댓글이 있었다.
‘급하다고 화장실을 찾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소변을 보게 한다는 건 결국 엄마가 편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요?화장실을 찾 다 실수를 해버리면 엄마는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고 그건 귀찮은 일이 되어 버리니까 일단은 편하게 해결하려는 것이죠. 용변이 마려운지 미리 확인을 하고 실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화장실을 찾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맞아요. 그것이 교육인 거니까요.’
맞는 말이다. 급하다고 아무 곳에서나 소변을 보게 한다면 그렇게 해도 되는 일이라고 아이에게 가르치는 꼴이다. 아들이건 딸이건 말이다. 한 번쯤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은 결국 습관이 되고 만다. 나쁜 습관을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은 부모는 없지 않은가. 엄마는 엄마다. 외동 엄마, 다둥 엄마, 딸가진 엄마, 아들 가진 엄마. 그 편가름이 대체 왜 필요한가. 서로를 깎아내리며 나는 괜찮다, 나는 우위에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만이 엄마의 자존감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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