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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을 그만둔 이유_1

by 리케lykke

https://youtu.be/DhZ50-qP_bQ



어찌 보면 운이 좋았다.


내가 거기서 일할 수 있게 된 게 말이다. 2022년 겨울이 되기 전 나는 여기서 일했다.

말하자면 꽤 길지만 어쨌든 여기서 일하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한 프로젝트에 잠깐 홍보팀장직을 맡아 일한 적이 있는데 당시 원청업체가 이곳이었던 것. 함께 일했던 PD들이 나를 좋게 봤고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해왔다. 처음엔 이들이 진짜 본사 소속이 맞는 건지 의심했다. 아니 사실 본사에 내 책상을 갖기 전까지도 의심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사기꾼도 많고 특히나 서울 사람들은 좀처럼 믿을 수가 없다. 이건 내가 서울을 올라올 때 지방에 있는 지인들이 해주던 말이다. 코베어 가니 조심하라는 말을 진지하게 하면서 말이다. 서울살이 3년 차 지방인으로서 여전히 유효한 말이지 않나 싶다. 어쨌거나 이곳, 특히나 내가 몸담았던 부서는 회계 담당, PD, 작가로 나눠 일을 하고 있었다. 나는 홍보담당 PD가 되어 몇 개의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

처음 몇 달은 모든 것이 신기했다. tv에서 보던 곳이 내 직장이라니. 잘 하면 유재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만나면 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불편할지도 모르니 못 본척해야 하나 즐거운 상상을 한 적도 있지만 퇴사까지 단 한 번도 그를 만난 적은 없다. 내가 본 연예인은 장동민, 양세찬과 양세형, 정이랑, 홍현희, 김호영, 이영지, 채정안, 서경석... 정도인데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인지라 다들 멀끔하니 빛이 났다. 한번은 택배를 찾으러 1층 보관소에 갔는데 '전현무'란 이름이 크게 적힌 박스를 봤다. 전현무의 택배를 내 눈으로 보다니! 이것마저 신기한 건 기분 탓일까. 언젠가부터는 출근하는 게 괴로웠지만 이렇게 가끔씩 마주치는 연예인(택배 박스라 할지라도)을 볼 때는 일할 맛이 나기도 했다. 유명한 연예인이든 아니든 지방인으로서 연예인을 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니 그럴 만도 했다. 큰 회사답게 깨끗한 근무환경과 저렴한 구내식당, 11시 반에 시작되는 여유로운 점심시간과 언제나 비어있는 여러 대의 안마의자는 내가 여기서 일하고 있는 것에 얼마나 많은 자부심을 가져도 될지 체험시켜주는 것 같았다.

수백 명이 있을 법한 이곳에 정규직 공채 채용으로 들어온 직원은 몇 명이나 될까. 나의 체감상 5%에서 많아봤자 10% 정도 일 것 같다. 대부분은 연장이 어려운 2년 계약의 파견직 또는 프리랜서들이 많다. 파견직 기준 실제 받는 급여는 규정된 근무시간 기준 최저 시급 수준인데 다행히 나는 그렇지 않았다. 부서 계약으로 3천 후반대의 연봉을 받았는데 이보다 더 적었다면 아마도 서울까지 올라올 생각을 하진 않았을 것 같다. 연봉이 그리 많은 건 아니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것도 아니어서 2년 후 이 경력을 발판 삼아 이직하면 더 나은 곳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좋아 보이는 회사를 왜 그만뒀는지 본격적으로 쓰려고 하니 벌써 너무 길어졌다. 이번 편은 상, 하로 나눠서 업로드해야겠다.




#퇴사 #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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