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生): 끝이 정해진 시작 - 우리는 사랑없이 살 수 있나요?
열 살이 채 안 되는 어린나이에는 나를 돌봐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신앙처럼 믿기도 한다. 영원이라는 단어를 알지도 못 할 나이에도, 그들이 내 곁에 영원히 함께할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 어리광을 부리기도하고 떼를 쓰기도 하고, 괜히 속상하게 하기도 하고.
인생이 어느 순간 멋지게펼쳐질 것 같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가상의 나이 x가있다. 그때쯤의 나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더 예뻐해주고, 보살펴주고, 먹고싶은 것, 입고싶은 것을 잔뜩 사 줄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될 거란 상상을 막연하게 해보며 기분좋게 잠들던 때가 있었다.
나에게는 부모님과 스무살이그랬고 모모에게는 로자 아줌마와 열네살이 그랬다. 하지만 문제는 몇 살이 되어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삶은 친절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모든 게 달라질 것 같았던 나에게도, 아버지의 방문 덕택에 돌연 그토록 열망하던 열네살이 된 모모에게도.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불공평할지몰라도 삶은 공평하다.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한다.’ 라는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대전제 앞에서 우리 모두는 나약하고 무능력하니까. 내가 살아갈 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죽어가는 것이 필연적인 삶의 질서. 나를 돌보아주고내가 돌보아주던 이들이 떠나갈 때 준비되어 있는 이가 감히 있겠는가. 그게 열네살이든, 열일곱살이든, 서른네살이든.
열 살로 살아온 열네살 꼬마가할 수 있던 모든 방식으로 죽어가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던 모모는 사랑스럽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했다. 맙소사, 향수라니. 그 얼마나 예쁜 마음인가.
모모는 정상이라고 말해주던카츠 선생님, 온화한 화법으로 모모를 지켜주던 하밀 할아버지, 로자아줌마를 위해 온갖 미신을 동원하며 녹초가 될 때까지 춤을 춘 왈룸바 씨 일행, 끝까지 모모를 돌보아준 살벌한 복서 출신 트랜스젠더 롤라 아줌마, 그리고 모모가 새롭게 사랑하게 될 나딘 아줌마 까지. 불친절한 삶 앞에서도 그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는, 죽어가는 이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캄캄한 밤에도 삶이 반짝거릴수 있게.
사랑이 모든 것의 답이라고생각하는 낭만적인 인간은 되지 못하지만. 시궁창 같은 세상을 함께 살아가며 사랑해 주는 이가 있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는 것이 삶이라는 것엔 동의한다. 분명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만큼 귀한 마음이 분명 어딘가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뒤적여도 잘 보이지가 않는 건 어쩌면 나이 때문일까. 나 때문일까. 아님, 너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