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악의 각자도생 VS 어금니 꽉 깨무는 해피투헬프

조직의 문화컬처, 시장의 선택은?

by Lyla

많은 기업들이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조직 문화를 정의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는 데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홈페이지나 sns 피드에 열심히 설명을 해두는 편이죠. 사무실에 가면 널찍한 포스터나 커다란 티비 스크린에 조직 문화를 알리기도 해요. 마치 학교 다닐 때 칠판 위에 붙어있는 급훈 액자 같은 거라고 보면 됩니다. 오너나 대표가 생각하는 성공의 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에서는 컬처라고 부릅니다. 왜 굳이 한국어 놔두고 영어로 부르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컬처핏 인터뷰가 따로 있을 정도로 조직이 지향하는 문화 안에 잘 정착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인터뷰가 채용 필수 코스입니다. 아무리 스펙이 뛰어나도 마지막 컬처핏 인터뷰를 통과하지 못하면 조직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조직 안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려면 피차 잘 맞는 편이 좋기 때문에 컬처핏 인터뷰에서 떨어졌다고 해도 상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랑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뜻이니까요. 어차피 상성이 안 맞으면 회사 생활 자체가 피곤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극과 극을 달리는 두 개의 상반되는 문화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ㅎㅎ


바로 극악의 “각자도생”, 그리고 어금니 꽉 깨무는 “해피투헬프”입니다.




A사는 대표가 자신을 당신의 성장에 베팅한 투자자로 포지셔닝합니다. 그는 자본과 기업가정신으로 회사라는 인프라를 구축해 놓은 투자자입니다. 그는 직원을 “뽑아주었다”라고 생각합니다. 넓은 사무실도 얻어놨고, 월급도 주고 각종 비용도 정산해 줍니다. 고용보험과 건강보험도 책임져줍니다. 동아리 활동도 지원해 줍니다. 구내식당도 지원합니다. 이러한 인프라를 통해 직원들이 자신의 꿈을 펼쳐서 이 세상에 무언가 멋지고 재미있는 걸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에게 소속감을 주고 대표 마음에 들게 기획해 온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원을 지원함으로써 직원들이 자신의 열정을 쏟을 일자리를 제공하고 성취도 맛볼 수 있게 도와준다고 생각합니다.


자, 기본적인 인프라 제공했으니 이제 한번 돈 만드는 재주를 부려봐! 너네 면접 볼 때 뭐든 잘할 수 있다며!


재주를 잘 부려서 성과가 나면 포상이 있습니다. 아니,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감투까지 준다고? 더욱더 성장이, 성공이 간절합니다. 내 성장에 베팅한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앞다퉈서 성장을 증명할 꺼리를 찾습니다. 사업의 장기적인 방향은 누가 알려준 적도 없고 또 알아도 별 수 없습니다. 어차피 사업이란 게 다 운인데. 내 성장이 중요해. 이렇게 각자도생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는 팝콘각입니다. 특별히 의사결정을 내려주지 않아도 젊은이들이 동분서주 직접 프로젝트도 만들어와, 밤낮없이 일해, 여기서는 불타는 훌라후프를 넘고 저기서는 외발 자전거를 타며 접시를 돌립니다.


부서별로 주어지는 뚜렷한 목표는 없습니다. 성과 될만한 아이템을 캐치해서 실현시키는 능력자 밑으로 헤쳐모입니다. 저 팀에서 작업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이 팀이랑 겹쳐도 아무도 교통정리하지 않습니다. 치고받고 싸우든 말든 비슷한 프로젝트가 동시에 몇 개씩 돌아가든, 그중 하나만 이기면 됩니다. 회사 내에 존재하는 유한 자원, 이를테면 특정 인력의 리소스, 장비, 지식 등을 두고 같은 조직 내에서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다툽니다. 그렇게 더 서로가 서로를 강하게 단련시키는 구조. 투자자님의 최애 픽이 생기고 끼리끼리 삼삼오오 뭉치면서 정보의 흐름도 작은 서클 안에서 돕니다. 이런 문화컬처에서 살아남으면 그 누구보다 강력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곳인 줄 모르고 들어왔다가 컬처쇽을 받고 납작 수그리고 있는 이들도 있죠. 다들 치열하게 치고받을 때 아무도 자신을 위협적인 경쟁상대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혹은 애초에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도록 느릿느릿 움직이는 이들도 꽤 여럿 포진해 있습니다. 아예 성장을 포기해 버렸지만 아무도 그들을 케어해주지 않습니다. 고인 물에 가라앉은 낡은 낙엽처럼 다른 곳으로 이동할 에너지조차 없고 그냥 거기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스스로 기획하고 스스로 이끌고 스스로 시간과 에너지를 갈아 넣은 프로젝트에 지쳐 인류애를 잃은 이들은 이 낙엽들을 보고 현타가 옵니다. 아, 그냥 저렇게 있어도 되는거였잖아?




B사는 대표가 자신을 당신의 친절한 동료로 포지셔닝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친절을 베풀어야합니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배울 것은 천지에 널렸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지식을 전달해줘야합니다. 빠르게, 효율적으로, 친절하게. 이 험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정보를 조직 내에서 자발적으로 잘 흐르게 만들어야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며 존중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청춘입니다.


구성원이 어떤 일을 하다가 막혔다? 누구든 진심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문화 컬쳐라고 사무실 곳곳의 벽면에 쓰여있습니다. Happy to Help. 무슨 일을 부탁하든 상관 없습니다. 밑도끝도없이 해피하게 하는게 중요합니다. 도움을 요청하는게 그 구성원이 원래 수행해야하는 핵심 기능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차피 서로가 서로를 으쌰으쌰 돕다보면 우리는 함께 성장할 거니까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많은데 항상 미소 지으며 자기 일처럼 응대하고 무한대로 도움을 기꺼이 주는 기버는 소수정예.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힘이 딯는대로 사방팔방 알아보며 도와줍니다. 오래다녔다는 이유로, 업무 히스토리를 많이 안다는 이유로, 자신의 지식과 에너지를 기부합니다. 대표는 이들이 너무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해피투헬프 문화컬쳐를 앞장서서 지켜주고 있으니까요. 이들은 거의 항상 가장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있습니다. 모두 사무실에 있는 낮에는 도움 요청하는 이들을 성심성의껏 도와주고 본업은 밤에 합니다. 책임감 있는 모습에 더더욱 뭐라도 챙겨주고 싶습니다. 이 사람들 덕분에 회사가 돌아가는거야. 이것저것 회사 업무에 대해 아는게 많으니 역시 리드로 승진시켜줘야겠어. 태도도 참 좋고 말이야. 그렇게 3년차가 리드가 됩니다.


해피투헬프 컬처에 적극 동참하지 않는 까칠이들은 대표에겐 눈엣가시입니다. 자신 분야가 아니라 도움을 거절하고 근무시간에 본업에 열중하면 조직의 문화에 잘 맞지 않은 직원으로 보입니다. 비지니스에서는 태도가 중요한데 저런 냉정하고 시니컬한 태도는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마음 속에만 담아둡니다. 나도 해피하게 사람들을 대하고 싶으니까요. 다크한 직원이 퇴사하면 기다렸다는듯이 주변에 얘기합니다. 그 사람, 너무 부정적이여서 싫었어요. 나가서 오히려 좋아요. 그 사람이 핵심 업무를 맡고 있었건, 그 사람 믿고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건 일단 다크한 사람은 우리 조직에 있어선 안됩니다.




두 문화는 장단이 뚜렷합니다.


성장에 목마른 (혹은 성장에 목마르도록 조장하는)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혹사하는 각자도생 문화 vs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청춘 드라마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극심한 회피주의자가 만들어낸 기이한 해피투헬프 문화...


시장의 선택은 당연히 각자도생 문화이겠지만 잡음이 끊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해피투헬프 문화는 보기엔 좋아보이지만 시장에서 발목잡히는 요인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건 조직 문화는 대표의 성향이나 철학에 굉장히 가깝게 맞닿아 있습니다. 어떤 문화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으신가요?


저는 "이 업을 왜 하는가?"가 명확하게 전사적으로 공유되는 조직이 좋은 조직이라 생각합니다. 이 "왜"에 기반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꼭 기업 문화를 대형 포스터로 출력해서 사방에 걸어둬야 할까요? 강력한 "왜" 하나만 있으면 나머지 문화는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생각합니다.






https://truth-dogwood-05d.notion.site/howtomakesenseofanymesskorea?pvs=143nseofanymesskorea?pvs=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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