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아니고 매화향기네

김환기를 만나다

by 이용만

김환기의 그림 한 점이 거실에 새로 걸렸다. 미술수업을 듣는 아내가 달항아리 그림을 덜컥 들고 왔는데 가격은 묻지 못했다. 그림 아랫부분에 86/199라고 적힌 숫자를 보니 한정판본으로 가격도 짐작할 만했다. 며칠 전 갤러리 방문 모임에서 그림에 대한 세금과 투자에 대해 들었는데 그림값이 오르는 일은 세간의 주목을 받는 때라고 했던가. 역시 미술작품을 아는 전문가들이라 소장하던 그림들을 적정한 시기에 판매하였으리라.

그림에 대한 세금을 매기는데 '작고한 작가'여부가 중요한 것 같았다. 고인의 창작물을 소유할 수 없는 아쉬움은 수요를 자극하고 더 이상 공급은 없다. 생존작가인 경우와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게 신기했다. 찬란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아서일까. 국가의 세금제도도 그림을 통해서 삶의 유한함을 일깨우는가 보다.

그림뿐이 아니고 모든 물건 값을 얼마 전부터인가 먼저 묻지 않는다. 가치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를 것이므로, 가격을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 아내가 사 온 옷가지도 내게는 별반 선택권이 없다. 애써 고르느라 지난한 과정이 있었을 텐데, 값을 묻거나 토를 다는 일은 자칫 숨겨진 불만이 나쁜 쪽으로 굳어져 옷을 볼 때마다 좋을 일이 없어서다.

우리 집 거실에 적당한 크기는 몇 호 사이즈일까? 궁금했다. 그림은 1호(號)가 엽서크기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A4 용지를 반으로 접은 사이즈(22.7 ×15.8㎝)라고 한다. 재미있는 건 2호, 3호라고 하여 1호의 2배, 3배가 아니다. 2호는 25.8 ×17.9㎝로 1호보다 조금 클 뿐이니 호수를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작가의 생애와 그림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지면 나아질지 살펴야 할 것 같았다.

매화향기 by 김환기

오랫동안 걸려있던 꽃그림 대신 달 항아리를 보면서 좋은 생각들을 저 항아리에 가득 담고 싶을 뿐이다. 어제 1920년대 뮤지컬 시카고에서 본 스토리처럼 인간의 욕망과 살아가는 모습이 100년 지난 오늘날에도 반복되듯 삶은 '욕망이라는 전차'를 숙명적으로 올라탄다.

영국 콘월 해변을 배경으로 했던 '조개 잡는 아이들'이라는 영화도 떠올랐다. 평범한 화가였던 아버지의 그림이 작고한 뒤 유명해지며 벌어진 자녀들 간의 불협화음을 보았다. 할머니가 된 부인에게는 남편을 회상하는 마음이 값으로 매겨지는 것도 싫었으리라.

30여 년 전 어린이날에 기념으로 구입한 윤극영의 동시를 그린 그림 한 점도 떠올랐다. 여든 근처이셨을 작가님 추천대로 15만 원을 주고 샀다. 최근 인터넷을 통해 100만 원쯤으로 보았던가 싶다. 그림은 우리 가족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가심비(價心比)로 더 바랄 것도 없긴 하다.

호수(號數)와 가격이 머릿속에 남아있는가? 어느새 두 딸에게 하나씩 공평하게 나눠줄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달항아리를 보면서 채우기보다는 비워내야 할 달항아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야 매화향도 보이는가 싶었다. 혹시 김환기 작가도 그래서 작품이름을 '달항아리'가 아닌 '매화향기'라고 지은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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