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명함

by 이용만

종이 명함을 주고받은 뒤에도 지속되는 만남이 없으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한번 주고받았던 명함을 다시 주고받는 일은 또 얼마나 쑥스러웠던가. 비즈니스 명함에는 직장 또는 사업체 이름을 큼직하게 보여주고 뒷면에는 영어로 적거나 주요 경력을 깨알같이 붙이기도 한다.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었으니 종이 명함이 수명을 다한 듯하다. 사람들에게 내가 기억될 의미도 적어 보였다. 핸드폰 번호를 전달하기 위한 용도로 바뀌었다.

소통의 전제는 전화번호다. 종이로 된 명함을 교환하는 일은 첫 만남의 의례다. 그런데 내세울 만한 이력이 없다. 자신감부족이거나 내재된 욕망이 과해서 생긴 오래된 자기 비하 탓인지도 모르겠다. 비교하지 말고 살아 보라지만 번듯해야만 한다는 강박은 어찌할 수도 없다.

스마트폰 번호 하나면 인터넷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전화번호를 스마트폰에 저장하면 소셜 미디어(Social Media)에 연동된다. 클릭 한 번으로 가입과 ‘친구 추가’로 카톡 또는 페이스북에서도 자동 연결된다. 만남이 없이도 인터넷에서 서로를 짐작하기 쉽다. 연결된 사람들로 초대그룹도 만들고 페이스북에서는 ‘알 수도 있는 사람’을 클릭하여 계속 연결도 가능하다. 카카오 스토리나 페이스북을 넘어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통해 글과 사진등 일상생활 까지도 서로를 동시적으로 알게 된다. 사물과 사물끼리도 소통하는 사물 인터넷 시대야말로 초 연결사회를 보여준다.

수필집을 한 권 내면 명함을 대신할 거라는 말이 그럴듯했다. 작가가 되면 명함에 한 줄의 번듯한 이력이 될 것 같았다. 문우들의 합평과 등단이라는 과정을 거친 끝에 수필 작가라는 공인을 받았다. 등단작품으로 수필 한편이 실린 잡지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읽어보기를 강권하는 것 같았다. 시간을 내어 꼼꼼히 봐주기에는 읽어야 할 글과 정보가 차고 넘친다. 과연 책 한 권을 펴내는 일이 가치가 있으려나?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마침 미국에서 열리는 가전제품 전시회(CES)에서 이수만 SM Entertainment 회장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는 4인조 걸 그룹을 각각의 아바타 4인을 포함한 8인으로 된 ‘에스파’를 메타버스 플랫폼에 올리고 있다. 아바타를 포함한 한국인 인구 5억이 가능한 가상 세계를 말하고 있었다. 의외의 발상처럼 들렸다. 환경문제가 있음에도 인구는 국력이고 저출산은 경제성장의 최대 복병 아니던가. 5억이라는 숫자는 꼬리가 9개 달린 구미호처럼 다양한 캐릭터를 9배 수로 단순 곱한 거다. 웬 ‘전설의 고향’인가 싶기도 했지만, 인터넷 강국인 한국이 선택할 만한 미래 인구 전략을 보는 듯했다.

요즘 유행하는 부캐(나의 아바타) 하나 없지만, 내 안의 나는 다양한 캐릭터로 존재한다. 그 과정에 있는 나를 디지털 명함에 녹여 보자. 직급과 성과로 표현되는 종이 명함보다 인생 여정을 함께 하는 과정을 담고 싶었다. 취미와 추억거리로 디지털 명함을 만들었다. 글쓰기와 골프 댄스 같은 취미가 나를 설명하기 편했다. 우선 프로필 사진과 10년 전 탱고 동영상도 붙였다. 수필과 블로그(blog)도 링크를 걸었다. 하고 싶은 비즈니스도 덧붙였다. 서툰 몸짓이라도 그것이 바로 나다움이 아닌가? 팔색조처럼 여러 색깔의 디지털 명함을 여러 개 만들지도 모른다. 재미와 의미 어느 한 구석이라도 매력이 있어야 한다. 서로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 ‘인싸(insight)’ 있는 만남은 지루하지 않은 법이니까.

지인에게 새삼 디지털 명함을 보낸다. 몇몇 분들은 끊임없는 변신에 찬사의 글을 보내주고, 대답 없는 많은 이들은 지루해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디지털 명함은 업데이트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도 올리려니 용기가 필요하다. 관심을 갖는 분들이 친구가 되어 줄 것이므로 원하면 디지털 명함도 만들어 주고 싶다. 팔색조처럼 진화하는 호모 사피엔스로 함께 즐겁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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