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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만 Feb 04. 2024

 마지막 왈츠

 장례 무도회를 연다고? 댄스파티를 망치려고? 라며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망설여졌다. '청리움'이라는 우아한 댄스파티 공간에서 출판기념을 겸한 생전장례식을 여는 일이다. 용어가 아주 낯설지만은 않다. 생전 장례식은 죽음을 둘러싼 태도와 신념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의미를 갖지만, 동시에 삶의 성찰과 감사의 표현으로 심심찮게 뉴스 기사에도 오른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장례식을 치렀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탐구하고 존재와 문학적 의미를 성찰하는 기회로 삼았다. 수년 전 등단한 후 오랜 취미인 댄스에 대해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책 한 권을 출간하고 싶었다. 칠순을 기념하는 '하모니의 리듬: 춤을 통한 기쁨과 연결의 발견'이라는 댄스수필집이다.

 클럽에 몸담고 춤을 추어 온 지도 20여 년이다. 댄스를 배우고 즐기는 중에 아내와 함께하던 시간들이 소중했다. 리마인드웨딩의 추억도 담겨있고 탱고 시범공연을 위해 레슨을 받아가며 했던 집중훈련은 몇 안 되는 자랑거리다. 이곳에서 죽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가 싶다. 아직 건강하여 여유로운 시기에 죽음을 정리한다면 이만한 곳이 따로 없어 보였다.

 코로나19로 파티가 중단되었다. 그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가 구분이 가지 않은 듯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이러스뿐만 도 아니다. 심장에 박힌 스텐트 숫자로도 인생을 덤덤하게 말하는 지인이 늘었다. 30년 댄스클럽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회원들도 연만 해졌다. 부부댄스클럽 회장으로서 무도회의 활력을 높여야 한다. 우선 파티구성원이 부족한 상황이 근심거리였다. 무도회에서 출판기념회와 생전장례식을 기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나와 뜻을 같이 하려는 분이 있으면 대환영이다.

 가족과 몇몇의 친지들도 초대한다. 드레스코드는 블랙타이(black tie)급(級)으로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평상시 파티 루틴을 따른다. 스포트라이트 조명은 없이 수수한 무도회이다. 원탁 테이블에는 나의 수필집이 가지런하다. 나에 대한 추모사와 함께 먼저 고인이 된 클럽 멤버에 대해서도 묵념시간을 갖는다. 리마인드 웨딩으로 퍼포먼스를 했던 영상도 다시 돌아본다. 영상으로 준비된 나의 일생과 가족들의 사진, 수필집 소개와 클럽멤버들의 인터뷰내용도 들어있다. 친구 신부님이나 동료들이 기도문을 낭독해 주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출판한 책의 의미도 전달한다. 이 책은 우리 부부가 춤을 통해 경험한 삶의 여정과, 사랑과 기쁨, 부끄럽고 슬픈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책에는 우리가 춤을 추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한 담담하고도 깊이 있는 성찰도 담았다. 1박의 파티보다 다음날의 골프대회를 기대하는 지인들은 약간 낯설어할 것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르듯 슬퍼할 일은 더욱 아니고 환희에 찬 장례무도회임을 알린다.

 이제 생전장례식으로서 준비하는 일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회장으로서 리딩댄스는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를 골랐다. 생전장례식에서 마지막 춤으로 표현하는 하직인사다. 내일의 골프대회까지 모든 과정이 영상으로 남을 것이다. 나의 부고 소식은 훗날 남은 가족이 지인에게 동영상을 전송하는 일로 소임을 다한다. 상상만으로도 잘 정리된 죽음 같아 설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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