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by 이용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121~180)

로마 16대 황제. 5 현제의 마지막 황제이며 철학자. 스페인가문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친척인 조부에게 양육되고, 후계자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양자가 되었다. 키케로의 의무론과 세네카의 에픽테토스 담화록에서 영향을 받았다. 어린 시절에는 베리시무스(아주 진실한 사람)로 불렸다.

‘행복과는 무관한 것들’에 가치를 두지 않는 스토아철학자로서 그의 명상록은 비망록 형식의 철학일기이다. 게르마니아 원정에서 죽고 아들 코모두스가 후계를 이엇다.

330px-Derni%C3%A8res_paroles_de_l%27empereur_Marc-Aur%C3%A8le_-_Eug%C3%A8ne_Delacroix.jpg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유언. 1844 외젠 들라크루아 리옹미술관


행복이란 미덕을 따라 사는 삶이다.


도덕적으로 가치중립적인 것들은 인간의 행복과는 무관하다. 자연학과 윤리학의 연결된 고리로서 우주는 본성과 동일한 유익을 추구한다.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부분인 이성을 사용해서 정신을 통제하고, 이번에는 정신으로 하여 그 육신을 통제해 미덕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육체적인 성관계를 장기의 마찰과 점액의 갑작스러운 분출이라고 열등하게 보는 견유학파적 태도로 볼 수 있지만, ‘행복과는 무관한 것들’에 가치를 두지 않는 스토아철학 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느냐. 변화가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단 한 가지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변화보다 더 우주의 본성에 가깝거나 친숙한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땔감으로 사용되는 목재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먹은 음식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내가 자양분을 섭취할 수 있겠는가. 네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 중에서 변화 없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로도 있는가. 이렇게 변화가 내게 꼭 필요하듯이 우주의 본성에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너는 알지 못하느냐”

그는 인간 본성을 우주라는 거대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파악하며 변화론에 무게를 두었다.

세네카가 “이중적인 시민적 책무”라고 불렀던 것, 지역적인 공동체의 시민이자 보편적인 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책무가 아우렐리우스에게 주어졌다. “안토니누스로서 나의 조국은 로마이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의 조국은 우주다”


제1권 17개 항목을 통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장점과 강점, 약점과 결점에 대해서도 자신을 돌아보며 신의 은총으로 감사히 여긴다. 자연과 본성을 따라 내재된 이성에 부합하는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솔직하게 서술하였다.

제2권 우주의 본성 신 죽음과 삶에 대해 적었다. 가장 오래 산사람이거나 가장 짧게 산사람이거나 현재라는 순간을 잃는 것은 똑같다.

제3권 어떤 일을 할 때에는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하지 말며, 먼저 치밀하게 검토함이 없이 하지 말고, 무리하게 하지 말라. 너의 생각에 화려하고 그럴듯한 옷을 입히지 말라.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많은 일을 벌이지 말라. 내 안에 있는 신이 너를 이끌어 나가게 하여 맹세나 그 누구의 증언이 없어도 한 사람의 로마인이자 한 사람의 통치자로서 너희 자리에서 내게 맡겨진 국사를 완숙하고 담대하게 처리하다가 이 세상의 삶으로부터 퇴각하라는 신호가 나면 아주 기꺼이 물러나라. 늘 쾌활함을 잃지 말고 외부의 도움 없이 나 자신의 힘으로 해 나가며 다른 사람이 주는 편안함을 물리치고 스스로 서라. 내가 스스로 바르게 서야 하고 남의 도움을 받아 서거나 남이 너를 바르게 세우게 해서는 안 된다.

제4권 너 자신 속으로 물러나서 쉬어라. 너의 이성을 존중하기만 하라. 신으로 받들 여질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인가. 박수를 받는 것인가. 아니다. 혀로 박수를 받는 것도 아니다. 대중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것은 혀로 박수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저 보잘것없는 명성도 아니다. 그 누구의 폭군도 그 누구의 노예도 되지 말고 너의 여생을 살아라. 마음이 선하게 정리되고 늘 새롭게 하라. 너 자신을 기꺼이 운명의 여신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그녀가 너라는 시를 가지고서 자신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 원하는 것을 짜게 하라. 운명의 여신은 클로토 배 짜는 여자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원천을 운명 섭리 신 자연 등으로 표현한다. 에픽테토스가 말했듯이 너는 시신을 짊어지고 다니는 작은 혼이다. 신이 너에게 내가 내일 아니면 모레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면 너는 아주 쪼잔한 사람이 아니며 사람이라면 몰라도 하루 차이는 차이도 아니라고 여겨서 내일 죽든 모레 죽든 상관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너는 수십 년 후에 죽던 내일 죽든 그런 것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런 일을 겪는데도 내가 나의 본성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내게 행운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 뒤로는 이미 지나간 영겁의 시간이 있고 내 앞으로도 앞으로 올 영겁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런 영겁의 시간 속에서 3일을 살다가 죽은 유아의 삶과 세 세대를 산 네스토르의 삶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네스토르는 호메르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그리스의 노老장군으로 현명한 노인, 원숙한 노년의 상징이다.

제5권 죽음이란 에픽테토스의 말대로 불에서는 연기가 나고 나는 집을 떠난다. 왜 너는 세상을 떠나는 것이 마치 큰일이라도 된다는 뜻이 생각하는 것이냐. 불에서 연기가 나는 것이 지극히 자연과 본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일이듯이 불의의 성질을 지닌 사람의 정신이 흙의 성질을 지닌 육신을 떠나 우주 속으로 돌아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뜻이다.

제6권 내게 계모와 생모가 동시에 있다면 계모에게 마땅한 도리를 다하겠지만 너의 마음은 끊임없이 생모에게로 향할 것이다. 지금 내게는 궁정이 계모이고 철학이 생모다. 그러므로 너는 늘 철학으로 돌아가서 거기에서 안식을 하여라. 그러면 궁정에서의 삶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고 궁정에서의 삶도 너를 품어서 끌어안게 될 것이다. 만물의 마음을 주는 것은 우리 눈앞에서 순식간에 날아가 버려서 참새에게 마음을 주는 것과 같다. 사실 우리의 생명은 피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증기이자 공기로부터 흡입하는 호흡일 뿐이다. 사람들의 행태 중에 의아한 것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과 동일한 시대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칭찬하는 것은 거부하면서도, 자신들이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는 후세 사람들에게 칭송받게 되는 것에 큰 가치를 둔다. 하지만 그것은 너의 조상들이 너를 칭찬하지 않았다고 화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죽으면 감각으로 인해 우리가 받는 인상들, 우리를 꼭두각시로 만드는 충동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는 생각들, 육신의 고된 노역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인생에서 육신은 아직 굴복하지 않는데 정신이 먼저 굴복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들을 공경하고 사람들을 구원하라. 인생은 짧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한평생 살아가고 난 후에 수확할 수 있는 것은 거룩하고 정의로운 성품과 공동체를 위한 행위일 뿐이다. 잠에서 깨어나서 다시 정신을 차려라. 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땐 너를 괴롭히던 것들이 너의 꿈에서 일어났던 일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이제는 내가 깨어 있을 때 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너의 꿈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하라. 너에게 할당된 분량의 물질에 만족하듯이 너에게 할당된 분량의 시간에도 만족하라.

너의 목표는 상황과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 네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낀 것을 실행해 옮기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너는 너의 목표를 이룬 것이다. 명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 다른 사람의 반응에 있다고 생각하고, 쾌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 자신이 감각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성을 지닌 사람은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 자신의 행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벌떼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은 한마디 벌에게도 유익하지 않다. 공동체에 대한 정신이 그러해야 한다.

제7권 잠시 후면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잠시 후면 모든 것이 너를 잊게 될 것이다. 변화보다 더 우주의 본성에 가깝거나 친숙한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화난 표정은 본성을 아주 많이 거스르는 것이다. 그것이 자주 반복되어서 습관으로 굳어지면 사람이 살아있는 표정은 죽어가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완전히 죽어 버려서 되살릴 수 없게 된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화내는 것이 이성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어져 버린다면 사람이 살아갈 다른 어떤 이유가 남아 있겠는가. 선한 일을 하고 욕을 먹는 것이 제왕의 일이다. 우리의 인생은 다 익은 벼 이삭처럼 베어진다. 한 사람이 탄생하고 한 사람은 죽는다. 내일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는 듯이 살아가면서도, 거기에 초조해하는 것이나 자포자기해서 무기력한 것이나 가식이 없다면 그것이 인격의 완성이다.

제8권 우쭐함이 없이 겸손하게 받고 주저함이 없이 기꺼이 내어 주어라. 이성적인 존재의 본성 속에는 정의와 반대되는 미덕은 존재하지 않지만, 쾌락과 반대되는 미덕은 존재하는데 그것은 절제다.

제9권 신들에게는 능력 있는 것이거나 없는 것이거나 둘 중에 하나다. 신들에게 능력이 없다면 왜 너는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이냐. 신들에게 능력이 있다면 너는 네게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그 어떤 일이 일어나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고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게 해 주며 그 어떤 일에도 슬퍼하거나 근심하지 않게 해 달라고 왜 기도하지 않는 것이냐. 너는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신들은 그런 것들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요. 그렇다면 너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달라고 비굴하고 무기력하게 신들을 조르는 것보다는 신들이 너에게 준 능력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저 사람에게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겠다면, 너는 저 사람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내게서 없어지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라. 다른 사람이 내 아이를 구해 주소서라고 기도하겠다면, 너는 내 아이를 잃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내게서 없애 주소서라고 기도하라. 너의 모든 기도를 그런 식으로 바꾸고 나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주시해 보라.

제10권 참된 원리들을 진심으로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아주 짧고 평범한 경구만 듣고서도 진리를 깨우쳐서 고통과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예컨대 '바람이 부니 나뭇잎들이 떨어져서 땅 위에서 뒹구는데 인간의 세대들이 이와 같도다'라는 경구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이 경구는 호메르스의 서사시 일리아드 제6권 146에서 149획을 요약한 것이다. 전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사람들의 세대는 나뭇잎들의 세대와 같다. 바람이 불면 한 해의 나뭇잎들이 땅에 떨어져 흩어지지만 봄철이 다시 돌아오듯이 숲에서는 또다시 싹이 트고 다른 나뭇잎들이 나온다.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세대가 오면 한 세대가 간다.

제12권 누군가가 내게 당신은 어디에서 신들을 보았거나 어떤 경로로 신들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기에 신들을 그토록 정성으로 섬기고 공경하는 것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첫 번째는 신들은 우리의 눈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네 정신을 본 적은 없지만 존중하듯이 나는 신들을 보지는 못했지만 신들의 능력을 끊임없이 경험하기 때문에 그 경험을 근거로 해서 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공경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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