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일 늦은 첫눈이 제대로 내렸다. 기습폭설로 볼맨소리도 듣지만 지난해보다 늦은 여드레만큼 첫눈은 더 반가웠나 보다. 새벽 도로상태는 차량이 다니는데 지장 없고, 되레 보도 위 사람들이 뒤뚱 총총 위태하다. 오전 10시에는 햇살이 창으로 듬뿍 들어오고 있어 수변문화쉼터 풍경을 보고 싶었다. 다른 지역의 첫눈 풍경을 보러 외출해도 좋겠으나, 북유럽에서 반갑게 궁금해할 막내가 떠오른다. 제 집 안마당 같을 양재천이다.
집에서 5분 거리 아파트를 돌아 나와 밀미리다리를 건너면 바로 양재천 산책로에 연결된다. 밀미리다리는 보행자 전용다리로 차량이동도 없어 동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봄여름가을까지 꽃으로 장식된 포토존이 볼만하다. 다리 위에서는 서쪽에서 동東으로 흐르는 양재천 물길이 멀리까지 내려다보인다. 강폭 150여 m 양재천변 양옆으로 키 큰 갈대꽃이 화려한 오솔길은 황톳빛을 선명하게 드러냈더랬다. 다리 건너 적십자 혈액원 옆에 무슨 공사를 하는 것일까? 카페인가? 강남구 50주년을 기념사진으로 도시의 변천을 세월로 읽었다. 수변문화쉼터라는 곳이 되어 문을 열었다. 2층 너른 슬라브에 파라솔도 놓여있다. 수변문화센터라는 입간판과 야외 조각들이 설치되고 새집 같은 갤러리들이 한동안 호기심을 키워나갔다. 수변 쪽으로 트인 아래쪽 공간은 '모두의 피아노'로 산책하면서도 수준 있는 연주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단학기공 운동에도 참여해 보았다. 발길은 저절로 수변문화쉼터로 향한다. 혈액원의 슬로건은 불러드림(Blood Dream)으로 큼직하다. 헌혈하라고 불러드림인데 이곳 밀미리다리는 쉼터까지 더해져 표어하고 잘 어울린다. 누구든 불러들이고 싶은 곳이다. 걷다가 클래식음악이 잔잔한 실내에서 쉬기도 하고 질 좋은 자판기 커피를 마실수도 있다. 돌아가는 길이 되겠으나 다시 되 걸어도 좋을 만큼 잘 쉴 수 있다.
매주말에는 콘서트도 열리는데 종종 잊는 게 문제이지만, 나의 시간대에는 대신 조각작품 전시회가 있었다.
https://youtu.be/UtrA4ijLBNY?si=E9QF6XQJSiLTbo3c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이래 각종 문화사업들이 지역별로 활발한 점이 지난 세월을 회상할 때 큰 변화였던 것 같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잘한 것은 금방 입소문을 타게 마련이다. 개성을 살리며 지역거주민과 잘 맞는 자연환경을 만드는 게 눈에 보이고 있다. 대모산을 올라가는 숲길에는 나무로 만든 데크로 걷기 좋게 만들어 유모차도 밀고 다닐 정도이니 노인들도 환영한다. 아이디어를 얻고 실행하는 과정이 어찌 순탄하리오만 공무원들이 노력하고 주민이 활용하는 호응이 이루어낸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먹고사는 데에 특화된 세대를 살았으므로 체화된 틀을 벗어나는 데에는 무수한 보이지 않는 손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만들어왔을 것이다. 주눅 들어 멈칫거려서도 안되었고 용기를 내어 예산을 낭비하지 않되 공감을 얻을 기획은 이미 그 자체로 예술 같은 일이었다. 청년들의 조각작품들을 보면서 한 사회가 어떻게 희망을 키워나갈지를 생각하며 감사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실력 있는 예술가가 있어야 가능한 것인지 창의적인 공무원이 필요한 건지 구청장의 리더십을 먼저 살펴야 하는지 한 국가의 시스템을 잘 만들어야 하는지 경제가 우선인지 아닌지 등 물끄러미 작품들을 보고 있다.
2025 강남구 청년작가 초대전 : 조각
수변을 건너는 조각들
양재천 수변문화쉼터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22길 77)
무료관람 전시 기간 중 무휴
강남구청 문화도시과 02-3423-5944
양재천으로 걸음을 옮겨 사진을 찍어 여기 이곳의 이야기를 순간이동 시키려 하고 있다. 골목길을 돌아나가는 코너에는 지난가을 현대백화점 들르크와르 전에서 보았던 낯익은 작품들이 예약전시형태로 전시되고 있어 반가웠다. 동네가 점점 더 우아해져 간다. 150여 년의 시공간의 차이인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부러워했던 티볼리 인어공주 안데르센 그리고 1847년 칼스버그맥주로 세운 글립토테크 미술관이 기억난다. 50년 전 강남 사진전에서 본 대한민국 발전사처럼, 나는 바로 그 시대의 정중앙에 있었고, 한국의 국부가 도처에서 'K 한류-문화'형태로 바뀌는 듯하여 뿌듯하고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