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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Jun 23. 2020

각자도생 육아라이프, 내가 바란게 이건 아니었는데?

육아 번아웃이 촉발한 지독한 회의주의

아기 태어난 지 일 년이 되어간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모든 과정에서 육아 휴직 중인 내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 보니 그 책임감의 무게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냥 화가 머리끝까지 나도, 다 팽개칠 자신이 생겨도 사표 한 장 남기고 쉬이 떠날 수 없는 게 이 애미라는 직업. 그럼 소는 누가 키우냐고?


아기가 최근 들어 신생아처럼 발작하듯 우는 경험을 몇 차례 겪고 한 달 넘게 중이염을 달고 야밤에 119까지 불렀던 에피소드, 남들이 들으면 뭐 이렇게 오바스러워 라며 우스갯소리가 될법한 일들은 사실 나에게 큰 스크래치를 남겼다. 밤에 혼자 잘자는 아기를 두고도 괜시레 불안함이 커져갔다. 아기 손을 잡고 누워있어야 마음이 편해져서 저녁도 안먹고 그냥 아기랑 같이 누워 자기도 했다.


밤중에 갑자기 우는 아기, 흥분해 뒤로 자빠지는, 열이 펄펄 나는 아기를 안고 혼자 집 곳곳을 날뛰고 한손엔 아기를 다른손엔 전화기로 구급차와 남편을 찾는 일은 공포영화보다 더 오싹한 경험이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아기와 있고 싶어서 아기를 만난건 아니었는데... 물론 나는 바쁜 남편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다 달라며 볼멘소리를 하던 여자였다. (물론 나도 남편 못지않게 잘 벌던 여자였고) 하지만 출산을 기점으로 부부 중 한 사람은 가계를, 다른 한 사람은 육아를... 그렇게 각자도생을 목표로 모인 '타인' 같은 결혼생활을 되어버린 건 내가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이런 불안과 불만 속에서 며칠 전 우리 부부는 신경이 곤두선 짧은 대화에서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지금껏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살고 있다. 밤낮없이 일하는 남편의 사정 그리고 그 깊이를 다 알 수 없겠지만 나 역시 육아라는 고된 일상의 피로감과 더불어 최근 열의를 갖고 해오던 모든 일들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크게는 열심히 살던 나에 대한 회의. 아기만 키우다가는 나이 들어 후회하게 될 거다 무언의 손가락질이 느껴지는 세상에서 그 불안감을 불식시키고자 무언가를 부지런히 준비하고 꿈꾸던 나였다. 하지만 실상은 매일의 육아와 아기와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과 원인분석, 결과도출을 도맡느라 일상의 익사 상태였음을...


결혼 전 아기를 좋아한다는 남편은 평일 24시간을 일에 몰두하며 종종 카카오톡으로 아기를 예뻐해 주는 일을 담당하고 나는 아기의 새벽부터 자기 전까지 아기의 안녕에 할애한다. 하루 네 시간의 어린이집과 다른 네 시간의 이모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찍이 도산이 났어도 백번은 족히 났을 경영상태 였다. 주말에도 큰 차이는 없다. 평일 내내 불태우며 일하고 미팅하고 기회를 찾고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느라 번아웃된 건넛방의 남편 코골이 소리를 들으면 새벽 다섯시에 첫 수유를 해달라고 깨울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말 새벽엔 아기와 잘테니 건넛방에서 자라던 약속은 이미 아무도 기억하고있지 않다 .


누군가는 우리가족의 생계를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하고 누군가는 우리가족의 유지를 위해 몸을 갈아 육아를 한다. 식사는 커녕, 아기를 생각하느라 짐도 못싸는 이런 취약한 환경을 생각하며 나를 뒤돌아본다. 대체 누구를 위한 결혼생활과 육아일까? 누구를 위한건가? 가족을 위한 것? 가족을 꾸리고 싶어했던 나를 위한 것? 아기는 아름답지만 아기를 홀로 전담하며 키우는 일은 정말 너무 힘들다. 하아... 진짜 떠나고싶다.


육아 전담팀의 노고만큼이나 생계팀(돈벌고계신)도 힘들거다. 육아는 그런것이다. 모두의 기운을 쏙 빼놓는 것... 토네이도처럼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하 남편도 힘들겠지 하지만 입장바꿔 잘 안된다 전담팀의 애로사항이 더 절절한 이유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얼른 일하러 나가고싶다. 정리 안되도 그냥... 하 근데 그럼 소는 누가 키울까 소는... 우리 소는.....


너무 솔직한 글이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너무 예쁘고 아름다운 존재다- 이건 변함없는 팩트! )


오늘도 어린이집 등원이라는 전쟁을 치른 곳... 패잔병은 있었고 전우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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