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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Jun 04. 2020

아기를 낳은지 백일이 지났다

생후 100일, 육아가 부부에게 미치는 영향


 육아를 하면서 남편과 더 많이 다투게 된다. 정확히는 서로가 서로에게 삐치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이게 억울하고 분하고 또 속상하고 왜 그렇게 나의 속도 밴댕이가 되어가는지.. 이 힘든 육아, 특히 잠을 못 자는 고통 속 아기만 바라보고 이 악물어야 하는 상황에 유일하게 내가 탓할 수 있는 사람이 남편뿐이기 때문 같다.


 남편과 나는 연애와 결혼생활까지 합하면 근 십 년을 함께 해왔는데 이제껏 큰 소리를 내어 싸워본 적이 없었다. 서로를 무척이나 좋아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특히 내가 남편을 무지하게 좋아했고) 친구였다 연인이었다 결혼까지 둘이 맞춰온 호흡은 소위 불알친구 못지않은 끈끈한 의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반지하방에서 자취하던 나의 20대 시절, 물난리와 몰카 성범죄를 포함한 산전수전 공중전에 내곁을 지키며 문제를 해결하던 남자친구였다. 나 역시 무일푼에 남도와주기 일등인 남편 곁에서 그를 응원하고 지지하던 여자친구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헤쳐나갈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던 우리 였다.  


허나 아기를 키우는 일만큼은 녹록치 않았다. 육아로 지친 어느날, 나는 남편과 R&R (Role & Responsiblity)를 나누자며 식탁에 앉다가 나를 불평하는 자기회사 직원인냥 사무적으로 대하는 남편을 보고 그자리에서 노트랑 펜을 던졌다. 처음이었다. 그 길로 아기를 두고 (이 역시 처음으로) 집을 무작정 나갔다. 세상 차분한 남편도 내가 던진 물건을 신경질적으로 정리하며 씩씩댔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도 나를 보고 놀랐겠지-

우리는 부부싸움다운 싸움을 한 게다.


 나는 할 말이 많았다. 정신없이 아기를 보고 말 그대로 화장실 갈 여유 없이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밥은 먹었는지 허리는 안 아픈지 그렇게 살뜰히 좀 물어봐주는 남편을 기대했다. 하루는 남편이 집안에서 내가 종일 잠옷을 입고 있는 것이 우리들 침구를 더럽힐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서 화가 났다. 하루 종일 씻고 치장할 틈은커녕 물 말아서 밥 먹기도 어려운 종일 근무인데, 그런 나에게 마치 왜 이렇게 꼬질꼬질하냐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남편이 어이가 없었다. 다른 하루는 남편과 대화 중에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계속 버벅대었더니 책을 좀 읽으라며 단어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잔소리를 들었다. 조리원에 뇌를 두고 왔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다가도 기분이 이내 틀어졌다. 아기를 출산하며 으레 있는 일이라는데 나만 구박을 받는다는 서러움이 복받쳤다.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마치 내가 부엌탱이 라도 된마냥 대우를 받을 때 왜 내가 이러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는 새벽마다 울었고 백일의 기적은 오지 않았다. 남편이 새벽마다 아기 케어를 도와주지 않는 핑계로 아침에 일하러 일찍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왜 그렇게 '티 나는' 일을 하지 않고 '티가 나지 않는' 육아를 택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십 년 넘는 회사생활에 고비고비를 넘기며 그렇게 싫어한 근로자의 삶이었는데... 어디라도 복직할 곳을 찾고 싶어 졌다.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하다.


 결혼은 나와 남편을 크게 바꾸지 않았지만 아기는 우리의 삶 특히 엄마인 나의 삶을 180도 바꿔놨다. 육아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았고 그걸 감수해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시선 속에서 또 여자로서 그리고 나로서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억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너무나 아름다운 나의 아기을 보고 그 존재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것을, 그것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이 신비한 체험을 위해 지불하고 있는 비용이라는 생각을 하며 꾸역꾸역 눌러도 터져 나오는 북받침이 있었다.


 그래도 아기는 날이 갈수록 아름답다. 예쁘고 귀엽다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묵직한 아름다운 존재랄까. 새벽녘 아기랑 나와 둘만이 깨어있는 시간에 나를 응시하며 웃고 교감하는 체험은 죽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그런 극한의 행복이다. 그 어떤 걸로도 치환하기 어려운.. 우리 부부는 아직도 노하우가 없고 미숙하다. 매일을 삐친다 할지언정 미성숙한 우리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 경이로운 시간을 너무 지친 나머지 그냥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지 않길 바란다. 이 생명체가 함께하게 된 기적에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갈등과 고통에만 내가 집중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게 나의 바람이고 결심이다. 


새벽에 일어나 나를 기다리던 아기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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