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ynda 린다 Jun 04. 2020

당근마켓에서 생긴 일

나눔 하고 더 받은 염치없는(?) 이야기

 육아를 시작하고 또 서울의 시골 같은 지금의 동네에 이사를 온 후 아나바다 운동 마냥 중고 거래로 육아템 돌려막기를 하고 있다. 처음엔 동네나 아파트 카페를 통했는데 몇 달 전부터 당근마켓이라는 앱을 통해 더 넓은 지역으로 중고 거래 중이다. 무척이나 편리하고 충분히 쓰임이 있는 물건들이 버려지지 않고 소액으로 구매도 가능하니 너무 좋은 앱이라는 생각이... 그 와중에 당근마켓에서 생긴 최근의 에피소드를 기억하고 싶다.


 며칠 전 친구에게 선물 받았던 아기 이불을 중고로 팔아보려고 단돈 만원에 판매글을 올렸는데, 집에서는 그래도 꽤 멀리인 곳에서 사러 오시겠다는 분이 있었다. 대중교통이 썩 편한 곳이 아니라, 오시는 차비가 더 들 것 같다는 생각에 그냥 드리겠다고 했는데 여차저차 일정을 잡다 그분이 하는 일이 기관에서 입양 가는 아기를 잠시 봐주는 일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아차 싶었다. 우리 아기가 참으로 소중하고 너무 사랑스러운 요즈음, 숲이 또래의 이런 아기들 누구 하나 마음에 상처입지 않고 그렇게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로서 살아줬으면 하는 나의 막연한 바람도 커져 가던 차였는데, 입양이라니.. 물론 좋은 출발이 더 크겠지만 마음 한켠이 저릿했다. 아기의 월령을 묻고 그간 팔려고 모아놓은 옷들을 다 같이 드리기로 했다. 아기 장갑이랑 신생아 모자 들을 함께 패킹해서 그분이 오실 때를 기다리려 했는데 사연을 들은 남편 역시나 가만있지 않는다. 좋은 일 하시는 분이 번거롭지 않으시게 직접 가져가 드리고 싶단다.


 워낙 공사가 다망한 우리 남편, 업무와 업무 사이 틈을 찾느라 이틀이 지나고 드디어 그분 댁에 가져다 드렸단다. 비 오는 평일 밤, 남편은 가는 길에 그분께 드릴 과일을 사간다더니 그분 집 앞, 편의점에서 과일 주스 한 박스를 사들고 갔다는 걸 보니 어지간히 정신없는 가운데 갔었나 보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그분을 보자마자 서로의 손에 들린 것들을 보고 실소가 나왔단다. 이심전심 일까, 그분도 우리를 주려고 같은 과일 주스 박스를 준비하신 거였다. 하하, 참으로 민망하지만 따뜻한 상황에 허허 웃고 있을 남편과 그분을 생각하니 내가 다 웃음이 나왔다. 나눔을 받은 분은 젊은 부부가 너무 착하다며 우리가 준비한 이불과 아기 옷가지 보다 훨씬 더 많은 선물을 준비해주셨다. 집에서 짠 참기름이며 과일이며 남편이 준비한 주스 박스는 받지도 않으셨다. 비 오는 밤에 잘 도착했느냐며 안부를 전하던 분, 끝내 우리 아기에게 맞을만한 새 신발이 있다고 보내주신단다. 참 따뜻한 분과 더 따뜻한 거래였다.


불현듯 20대 우리의 연애시절, '따뜻한 세상'이라는 작은 모임으로 함께하며 도와주던 그룹홈 (가정보육기관)이 생각났다. 그 시절 중소기업의 신입사원이던 나와 대학생이던 남편은 고사리(?) 손으로 주위를 삥 뜯어 어린아이들을 도우려 했었다. 큰 도움이 될만한 돈도 재능도 우리에겐 없었지만 그만큼 순수하고 무모한, 아름다웠던 젊은 날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바쁘게 결혼하고 일하고 어렵게 고군분투하며 나는 시험관과 직장생활, 남편은 자기 꿈을 찾아 취직 대신 선택한 사업의 길을 7여 년을 버텨왔으니.. 먹고사느라 잊혀져있던 기억의 한 조각이었다. 그 시절이 떠오르게 해 준 당근마켓의 따뜻한 거래. 아, 이거 나중에 당근마켓의 사연 이벤트 같은데 지원하면 좋겠다.


우리들의 대화의 시작


야무지게 잘 정리했다고 칭찬받았는데, 다 찍지를 못했다



남편이가 받아온 선물들, 남편이 사간 주스랑 그분이 주신 주스, 과일, 기름까지! 우리가 더 많이 받아 민망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