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준 몇안되는 순기능 (?)
코로나가 다음달 아니 그 다음달이면 나아지겠지를 외친지 언 반년이 지나간다. 느닷없는 불청객인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예 건넛방에 떡하니 자리 잡고 앉은 객식구가 된 코로나 19, 아니 숫자 18이 더 잘 어울리는 녀석... 얼른 추억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무뎌지는 요즈음 이다.
코로나가 미친 수많은 영향 중에 내 기준, 가장 큰 것은 아기의 첫 돌잔치였다. 7월 17일, 오늘인 이 친구의 생애 첫 생일은 원래 지난 토요일, 7월 11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14명의 직계가족들과 뷔페 만찬을 즐기는 걸로 계획되어 었었다. 단촐한 시댁 식구와는 달리, 위로는 저 최북단에서, 또 아래로는 저 제주도 최남단에서부터 여행을 해서 와야하는 우리 친정 식구들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행사였다. 제주 사는 두돌쟁이 조카가 비행기를 타고와야하는 부담과 뷔페 식사의 우려 끝에 결국 취소하고 말았다.
호텔 뷔페라고는 생전 몇번 아니 거의 가본적 없으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갈 생각에 없는 살림에 살뜰히 모아놨던 숲이의 돌잔치 비용이었다. 코로나 덕분에 남은 이 예산을 어떻게 쓸까? 허구헌날 싸우는 우리 부부의 관계 개선을 위해 호캉스를 갈까, 프라이빗 풀빌라를 갈까 고민 하던 우리 부부는 며칠 전 깨끗하게 아기의 첫 기부로 올인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놀아본 놈이 논다고 영 가치있게 느껴지지 않은 소비에 선뜻 백만원 넘는 돈을 쓸수가 없었다.
시험관 시절부터 지금껏 호르몬의 노예가 된 나도, 워낙에 남도와주는 일에는 일등인 (칭찬만은 아니다!) 우리 남편도 숲이의 생애 첫 기부를 도와주자는 계획을 짜기 시작하자, 일찍이 가슴 벅찬 설레임을 느꼈다. 도움을 주고 싶었던 건 사실, 우리의 부채의식에 기인했기 때문이다. 큰 병 없이 무탈하게 커가고 있는 숲이를 볼 때마다 무언의 책임감, 채무감을 씻을 수 없었다. 숲이 또래의 다른 아기들 모두가 똑같이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 당연한 진리, 하지만 현실은 과한 욕심인 이 엄혹한 세계 안에서 많은 아기들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우리가 너무 행복해서. 우리만 너무 행복하면 안되는데...
우리 부부는 기억하고 있다. 20대의 남편과 내가 함께 활동하던 후원단체에서 꽤 오래 한 아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아이는 부모의 피치못할 사정에서 그룹홈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하던 아이였는데, 유독 또래보다 작고 우리를 잘 따르던 모습이 선했다. 그런 그 아이는 우리가 집에 갈 시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듯 등을 돌렸다. 마치 반복된 경험에 누군가와의 이별에 무척 익숙해진 그 모습이 더 짠했다. 얼마나 많은 이별을 더 겪어야할까? 나와 남편은 그저 무책임한 슬픔을 안은채 부리나케 짐을 싸서 나와야했다.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핑계로.
한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크지 않다. 그저 박터지게 사는데, 한달 한달 빚 갚고, 먹고사는데 치열한 별다를바 없는 일상 속에서 그저 가진 것 감사하게 영위하고 살아가는 것... 그 사이 소소히 기부하고, 무책임한 감정 대신 계획성 있는 작은 나눔을 실천 하는 것 - 그것이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거다.
숲이의 돌 기부는 그냥 편리하게 돈을 전달하는 것 대신, 또래의 아기들이 사는 곳을 찾고 필요한 물건들을 직접 전달하자는 방향을 잡았다. 돈만 내면 기부금영수증도 쉽게 나오고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번엔 반백수 애미의 재능기부를 할 몇안되는 시기라 마음 먹었다. 동네 맘까페 조사를 거쳐 총 4군데를 컨택했다. 바쁜 남편 대신 내가 조율을 맡았는데, 일단 우리가 원했던 기부처 조건은
1. 우리가 사는 동네 근처의 아기들
2. 가능하면 어린 아이들 (13세 이하)
3. 미혼모 분들을 돕자. (작은언니가 재난지원금을 기부했다며 소개해줘서)
4. + 우리가 사랑한 도시의 아기들
오랜만에 회사 일처럼 엑셀을 켰다. 보육원마다 수요조사를 하고, 열에 맞춰 필요한 물건들을 기입하고, 각 대표 품목의 가격으로 예산에 맞춰 물품 주문을 넣기 시작했다. 천원 아쉬워 우리 아기도 못쓰는 물건들로 나름 선정했다. 베베숲 시그니처 물티슈와 하기스 네이처메이드 썸머 라인업 등... (숲이가 서운해하지 않겠지?) 소고기는 각 원에서 급식으로 쓸 날을 정해, 원하시는 소고기 부위를 조사해서 정육점에 주문했다. 물건들을 네이버와 쿠팡에 주문하는 과정은 단순했지만 상당히 귀찮았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중간에 별 이슈가 많았다. 특히 아기들 마스크를 주문하면 취소되고 주문하면 취소가 되어서 정말 화딱지가 났다. 코로나 이 수박 씨발라먹을 자식...
최종적으로 우리집 근거리의 은평구 한 보육원과 남편이 유독 아끼는 전라도 광주의 영아임시보호소를 메인으로 컨택해서 필요한 물건들, 소고기부터 물티슈 기저귀 등을 주문했다. 다른 용산구와 제주의 보육원과 미혼모센터는 필요한 물건의 매칭이 쉽지 않아 가장 많이 쓰는 물티슈와 아기용 세제로 대신했다. 큰 나눔은 아니라 이름을 밝히지 않고 주문을 넣었더니 미혼모 단체에서는 판매한 물티슈 업체한테까지 연락해서 내 연락처를 추적해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셨다. 역시 별거아닌 도움은 없는가보다. 감사했다.
아무튼 이차 저차 드디어 숲이의 돌잔치는 끝이 났다. 진정한 돌끝맘이다.
솔직히 총 예산 중에 10만원이라도 남겨볼까 했는데 아주 남김없이 콸콸 쓴 나의 주문서, 가족들이랑 탕수육이라도 사먹으려했는데.. 5분동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눌 수 있는 우리의 처지에 다시 감사하게 마무리했다.
숲이야,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아기로 자라나길 바란다. 너는 돌잡이로 판사봉이나 의사가운, 펜 따위는 잡지 않았지만 대신 어떤 일을 하던 타인의 손을 놓치않는 삶을 살길 바란다. 나누고 돕는 삶안에서 스스로 더 큰 만족감과 행복을 쫓는 그런 삶, 엄마 아빠도 아직 닿지 못한 그런 삶을 우리 가족 함께 성장해 가며 가길 기원할게.
엄마도 얼른 돈 벌 구멍을 찾아서(!!) 내년 생일에도 또 다른 나눔을 기획해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숲이야 생애 첫 생일 진심으로 축하해,
우리에게 와줘서 고마워.
-2020년 7월 17일 엄마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