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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da 린다 Aug 21. 2020

출근안하는 엄마에게도 이모님이 필요한 이유

어린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나오던 머털도사가 떠오른다. 질리도록 봤지만 보고 또 봤던 그 만화, 우리 언니들은 지겹다고 볼멘소리를 꽤 했던 게 기억난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머털이가 스승님에게 테스트 받던 씬인데,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내용?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절벽같은 다리지만 옆이 낭떠러지가 아니라, 잔디밭 이라는 생각이 들면 더 쉽게 다리를 건널 수 있다는 거다. 심리적인 안정성하에서 무어든 더 쉽게 성취할 수 있다. 나를 든든하게 받쳐줄 잔디밭이 있는데, 무엇이 어렵겠쏘냐? 이런 심리적인 잔디밭이 엄마에게도 필요하다. 이모님이라는 나의 잔디밭. 내가 돈 한푼 벌지 못해도 이모님 고용을 계속해서 유지하기로 한 이유이다.


말그대로 출근하지 않는 삶을 영위한지 1년 반이 넘어간다. 아이가 돌이 지나니 육아도 아주 쪼끔 (눈꼽만큼?)은 괜찮아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 그런 하루들.. 아기의 생존을 위해 애쓰던 일들이 줄어든 대신, 아이의 생활에 관여하여 사람을 만드는 일에 더 집중을 하는 시간이다.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 집안 곳곳에서 사고를 내는 일명 '발발이형' 아들램은 그저 즐겁게 행복해보이니 참 다행이다만.


출근하는 사람을 그만두기로 하고, 나는 이모님 지출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말그대로 나는 집에 있는데, 여전히 이모님의 존재가 필요한가? 이모님의 역할은 무엇인가? 해주시는 업무는? 당장 십만원도 벌지 못하는 내가 월에 백만원을 당장 하루 4시간에 육아와 가사 소싱으로 맡길만한 것인가는 아주 깊은 고민을 거쳐야 하는 의사결정이었다. 못벌면 씀씀이를 줄이자는 현실주의자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모님이 매일 4시간동안 해주시는 일은 2시간 아기 산책, 1시간은 간단한 청소와 남은 1시간은 아기 목욕과 저녁 먹이는 일 정도이다. 돌이 지난 후로 아기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수월해진 것은 사실이었기에, 이모님 대신 청소용역이나 가전이모님들 (로봇청소기) 등을 활용하는 안도 고민해봤다. 하지만 결론은 이모님의 업무보다는 이모님의 존재, 그러니까 이모님이 내게 주어준 독립된 시간 4시간은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모님이 우리집에 와계시는 건 4시간이지만, 그 네시간을 확보한 나에게는 하루 24시간 동안 영향을 미친다. 내 일을 고민할 시간이 없어서 생기는 불안감, 영감을 받을 책 한장을 넘기지 못해 생기는 답답함, 아이와 육아를 감당하면서도 나의 일을 투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부재 이 모든 것은 하루 중 네시간은 오롯이 내 것이라는 안정감에서 불식된다. 아침에 아기를 케어하느라 정신 없는 가운데에도 오후의 '내 시간'에는 무엇을 해야지 라는 설렘이 있기에 더 밝은 얼굴로 아이를 대할 수 있다. 이모님이 준 4시간의 힘은 아침에도 밤에도 존재한다.  


그 분이 줄여주시는 일거리가 내 하루의 총생산량에 드라마틱한 차이를 내진 않는다. 가사 노동과 육아 라는 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자동화할 수 있는 영역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주시는 시간, 그리고 그게 가져온 심리적 안정성을 주는 역할은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나는 그 안정성을 기반으로 홀로서기를 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 육아에 매몰되 결국 나를 잃을 것 같다는 이유로 불안했던 나였다. 그 불안감이 편리한 삶의 관성을 이어나가려 했던 이유 중 하나 였기에 남편도 나도 이모님을 계속해서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잔디밭으로 보이던 절벽으로 보이던 위험한 길은 변함 없는 사실일거다. 하지만 그 길을 더 가벼운 마음으로, 밝은 자세로 건너간다면 내 하루는 더 행복할 것같다는 생각. 나의 여정이 고난일지언정 시간이 지난 후에 결국 이 시간은 나의 마음가짐으로 기억되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나는 마이너스 백만원 대신, 사치스러운 행복과 자신감을 내 미래를 사겠다. 음하하- 일단 질러보고, 어찌됐든 나는 오늘도 월 백만원을 벌 공부를 해보자. 화이팅-


머털이의 저 헤어와 눈썹 참 잘, 막그리셨다. 막그려야 명작이 나오나.. 그 와중에 스승님 드레스 간지보소. (출처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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