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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다영 Sep 15. 2020

나눔의 선정 기준

애매하지만 단호한 나만의 기준

아기를 낳아 키우다 회사까지 그만두고 소소한 일상을 누리는 요즘, 나는 작은 마을의 아낙네가 되었다. 서울 변두리 크지않은 마을에서 물건을 나누고, 마음을 주고 받는 게 일상 아닌 일상이랄까.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나눔과 중고거래에 편안함을 갖게 된 일등공신은 아무래도 당근마켓 앱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당근마켓에서 활발한 거래로 매너온도 40.5도씨의 100% 재거래 희망을 기록한 어엿한 최우수 사용자이다. 에헴- (물론 '최우수'라는 말은 브런치적 허용이지만! 다른 말로 구라)


쓸모는 있지만 내게 필요 없는 물건들을 나누기 시작한 것이 벌써 1년이 넘은 것 같다. 실은 주는 기쁨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받는 기쁨이 있었다. 작년 초 첫 아이를 품은 배불뚝이 몸으로 동네 이곳 저곳을 열심히도 다녔다. 갓난 아기와 관련된 품목이 나눔템으로 나오면 한푼이라도 아낄 심정으로 찾아 나선 것- 나눔 받아온 물건 대부분은 귀하게 쓰였지만 일부는 육아템이 뭔지도 모르고 손부터 든 케이스라 그대로 다른 분들에게 가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오리지널 피나눔자 였다. 나눔 감사선물용 초코렛을 따로 사두기도 했으니-


그런 피나눔자에서 나눔자로의 비중이 커진 시점이 있었는데, 아이를 낳은 후 였다. 아이를 낳아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데 환경에 대한 안목, 물건에 대한 생각, 그리고 관계에 대한, '내 것'에 대한 집착 등 다양한 양상으로 그 변화가 도드라진다. 가장 가까이는 내 것이 많다고 생각하며 쉬이 나누게 된 것. 더 많을 것도 더 적을 것도 없는, 예전 그대로의 삶이지만 이전보다 더 넉넉하게 느껴지는 건 아이의 엄마가 되서 생긴 여유때문 같다. 둥근 아기의 얼굴이 떠오르면 맞아 우래기~ 하며 허리끈을 힘껏 졸라 매다가도 나도 모르게 그냥 마음 가는대로 같이 살아내야지 하는 생각이 샘솟는 건 희안한 일이다. 애미가 나누면 결국 아이에게 돌아올 것 같다는 뇌피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눔에도 여러가지 고민이 들 때가 있다. 많게는 나의 나눔을 원하는 사람이 많을 때이다. 과연 그들 중에서 누구를 선택하는가? 물론 피나눔자 선정은 오롯이 나눔을 주는 사람의 권한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아파트 까페나 맘까페에서 댓글순으로 나눔을 받는 경우가 자주 있다보니, 본인이 첫 댓글을 달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눔을 본인의 권리처럼 주장하는 일부 사람을 보며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안하무인의 태도에 나는 마치 내 가게의 고객 클레임을 상대하듯 쩔쩔매다가도 이내 나는 나누러 왔지 팔러온 사람이 아님을 주지한다. 어디까지나 나눔은 나의 테리토리안에서 나의 기준에 적합한 피나눔자에게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대부분 댓글 순으로 나눔을 하기는 하다만)


댓글 순으로 나눔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라, 사실 그냥 편리한 도구일 뿐이다. 그것 만큼 고민할 필요가 없는 기준이 없기에- 그래서 요즘 나눔 글들에는 종종 본인만의 나눔 기준을 올려놓는 경우가 더러 있다. 가령, 최근 1달간 나눔을 하셨던 분이라던지, 빠르게 일괄 나눔을 받으실 분이라던지 등의 기준이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류의 나눔이 아니라, 생각보다 복잡다난했던 내 나눔의 일화를 소개하고 싶다.


몇달 전, 그러니까 코로나가 창궐하고 "아- 이번 달만 버티면 지나겠지" 했던 지난 3월이었다. 나와 남편은 그동안 집근처에서 종종 타던 산악용 자전거를 나눔하기로 했다. 자전거는 꽤나 괜찮은 성능, 성인 남자에게 알맞는 사이즈로 나중에 찾아보니 꽤 비싸게 거래되는 자전거였다. 물론 우리 것은 연식이 많아 열심히 중고가격을 매기고 있는데, 역시나 남 도와주기 일등, 우리 남편이 나눔을 하자는 의견을 냈다. 한두번 남편 물건을 몰래 팔았다가 눈물빠지게 혼난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군말 없이 상세한 설명과 당근마켓에 올렸다. 채 한시간이 지났을까? 쉰 다섯개의 채팅창이 쏟아졌다. 채팅창 저마다 왜 그 자전거가 필요한지를 사연 공모하듯 펼쳐내고 있었다. 이제 막 기어다니는 갓난쟁이를 돌보던 나는 채팅창 알람을 꺼둔채 잠시 남편을 원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최소한의 인수비용이라도 받는건데- 입맛을 다시며 말이다.


육퇴를 하고 다시 당근마켓 앱을 켰다. 쏟아지는 채팅창을 하나씩 클리어 하며, 어떤 연유에서 자전거가 필요하신지를 읽어보게 되었다. 주세요 저- 당당한 한마디부터 대학원생인데 통학용 자전거를 어제 잃어버렸다는 분, 아이랑 같이 탈 자전거 살 형편이 안된다는 분, 돈을 주고 사시겠다는 분, 묻고 따지지도 않고 일단 주소부터 찍으라는 분 참말로 다양했다. 고르기가 정말 쉽지 않았는데, 그중에 제일 내 마음이 가는 분이 계셨다. 그 분은 바로 우리집과 10 여분 거리에 사시는 장애인 분이셨다. 누가 버린 자전거를 고쳐서 타시는 중인데 너무 작아서 병원을 갈 때마다 힘들다는 말씀 이셨다. 동네 주민인데다가 성인용 자전거를 찾고 계신다니 우리 자전거가 딱이었다. 남편과 상의하고 그 분으로 결정해서 인계를 한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계실 54분에게 일일히 연락을 드렸다. 나역시 나눔이든 중고든 줄을 섰는데 대꾸가 없는 것처럼 김빠지는 일이 없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선정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 드리고, 선정 연유를 설명했다. 나는 마치 라디오 프로그램의 일일 디제이라도 된냥 사연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많은 분들이 자기보다 더 필요한 사람을 찾아주어 고맙다는 멘트를 남겨주셨다. 그저 안쓰는 자전거 하나 나눔했을 뿐인데,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가슴을 가진 분이 많았었나? 새삼 후끈해진 핸드폰이었다. 당근마켓에 늘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에피소드를 겪을 때마다 내 가까이에 '선'과 '나눔'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깨달음이 남는다. 아 이래서 살만하네- 갑자기 또 애틋해지는 아낙네의 하루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당근 당근 하나보다.

당근마켓 '최우수'사용자의 후기 끗-


최종 나눔자분과 대화 뚜둔! 그리고 미선정자분들께 남긴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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