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의 커뮤니티 탐방기: 생각
사실 구체적인 계획은 전-혀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떠날 때는 그저 아무 생각이 없고 그저 멍뎅- 할 뿐이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이때까지 열심히 있했으니까 (회사 2년, 창업 3년, 쉬는 기간 전혀 없이 총 5년), 아 썅, 내 마음이 내키는 데로 돌아다녀봐야지! 잇힝! 뭐 이런 마음에 좀 더 가까웠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근데 떠나는데 돈이 없....ㅠㅠ)
여행을 지긋지긋한 때까지 해보고 싶었다.
솔직히 해보고 싶은 건 다해봤다. 대학 다닐 때도 창업을 했고, 창업하고 나서 NGO에서 일하고 싶어서 일도 했고, 그럴싸한 간지 나는 컨설팅 회사도 가보고 싶어서 다녀봤고, 그만두고 나서 또다시 창업도 했다. 내가 사랑한 일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나의 회사가, 우리 팀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이면 괴로웠다. 도망가고 싶었다. 내가 왜 이런 거지? 나도 내가 이해가 안돼서 답답했다. 난 행복해야 하는데 왜 우울하지? 내가 창업한 회사잖아! 왜 회사 가는 게 무섭지? 몰려오는 두려움에 엉엉 울다가,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질문했을 때 나도 몰랐던 다른 대답이 나왔다. "여행 가고 싶어. 지긋지긋할 때까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공백기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대학 다닐 때도 그 흔한 휴학 없이, 매 학기와 방학을 정말 깨알같이 각종 인턴과 프로젝트로 정말이지 겁내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보냈으며, 대학 다닐 동안 창업도 했고, 졸업하기도 전에 취업을 하는 등.. 뿐만 아니라, 이직을 할 때도 전혀 휴식기 없이 바로 이직을 했으며, 퇴사 이후 바로 그다음 달 창업을 해버리는 등. 나름 정말, 빡세게 살아온 인생인 것이다. 지긋지긋했다. 생산적이게 살아야해? 계획이 있어야해? 꼭 목적이 있어야해? 그냥 아무것도 안하면 안될까?
그래서, "백수"라는 타이틀을 처음으로 달았을 때.
뭔가 오묘하면서,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무섭기도 하면서, 쫄깃함과 동시에, 너무나 많은 벅찬 감동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여전히 적응이 안되고, 멍하게 흘러가는 하루가 두렵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했을 때 생기는 한국인 특유의 죄책감에 버거워하고 있으며, 사람들 만났을 때 "뭐하세요?"라고 질문을 하면 그 대답을 할 때 버벅거리는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 물론 가끔 당당하게 (?) 아무것도 안 해요- 백수임. 하고 싱긋 허탈하게 웃을 때도 있음.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다. 젠장 이놈의 나라는 세계 여행도 조낸 뭔가 계획을 짜서 구체적으로 생산적으로 해야 하는 나라인 것이다. 지긋지긋했다.
아니 뭘 꼭 테마를 가지고 여행을 해야 해? 그냥 꼴리는 대로 돌아다니면 안 됨?
버킷리스트? 써보려고 했다. 그것도 귀찮더라. 그거 쓰고 그걸 지우는 것도 귀찮았다. 나 걍 나몰라라 하고 돌아다닐 테다! ㅅㅂ
외로웠다.
첫 2-3주는 여행 버프 먹고 신나게 빨빨거리면서 구경하고 맛있다는 곳에서 먹고, 뭐 그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금방 실증을 내버리는 나의 개망나니 성격 덕분인지, 뭐 구경하는 것도 귀찮고, 거기가 거기 같은 느낌이 들고, 맛있다는 것도 모르겠고, 그저 아무 계획 없이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두렵더라. 아놔 이 하루하루를 뭔가로 채워야 하는 거임? 근데 뭔가 귀찮음. 아무것도 안 할래.
근데 아무것도 안 하니까 너무 심심하고 죄책감이 쩔기 시작.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하기 싫음. 앍.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여. 자아붕괴... 아니 나 왜 여행 중인데 안 행복한 거야???? 멘탈 붕괴. 뭐 이러한 과정을 몇 번 돌리고 나서 중얼거렸다... 아. 고저 맴에 맞는 사람이랑 김치찌개에 막걸리 먹고 싶음. ㅅㅂ. 그래. 이 호스텔에 널려있는 -술, 담배, 서핑, 밥, 술, 담배, 서핑, 다시~ 하는 노란 머리 꽐라 얘들 말고- 뭔가 나랑 비슷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음! 아. 어찌나 '커플/부부 세계 여행자'들이 부럽던지. 저들은 같이 다니니까 식비랑 숙소비용도 겁내 절약되겠지. 그렇게 찌질의 쳇바퀴를 돌렸다. (근데 요즘도 그 찌질의 쳇바퀴를 가끔 돌림)
그래서 나를 그냥 꼴리는 대로 내버려두었더니, 알아서 쫄래쫄래 공동체나 커뮤니티 같은 단어들을 쳐서, 각각 그 나라의 나와 싱크로율이 맞는 커뮤니티를 방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왜?
좋아서.
난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 (놀랍게도!)
혹은, 여행에 대한 정의가 많이 다른 편이라고 하겠다. 유명한 장소, 관광지, 유적지, 미술관, 박물관은 처음에는 예의상(?) 방문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안 찾아가게 되더라. 방랑생활이 1년을 넘어가고,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하다 보니, 더더욱, 매우 자연스럽게 나의 일정은 "생존" 혹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 위주로만 짜이게 되더라.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럽다고 하겠다. 태국 정글 속에 있든, 모로코 사막에 있든, 베를린 스타트업 동네에 있든, 그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도, 아파서 끙끙 앓고 나서도,
그만두지 않은 것이 딱 2가지 있었다.
일기를 쓰는 것
사람을 만나는 것
커뮤니티, 공동체에 가면 사람들과 부대끼고, 알아가고, 만날 수 있었다. 유적지? 멋진 풍광? 럭셔리한 수영장? 힙하다는 클럽? 재미없었다. 사람들이 재밌었고, 신기했고, 놀라웠고, 흥미로웠다. 해당 동네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큼 가장 빠른 현지 적응은 없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통해서 가장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사람이 최고의 학교였다.
사람이 최고의 관광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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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커뮤니티, 공동체, 그것이 디지털노마드이든 생태공동체이든 모두 그들의 철학이 있다.
그 철학이 돈, 명예인 곳도 있고, 그 철학이 아직 정리되지않거나, 그 철학의 중요성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지않은 곳도 있다. 이 모든 곳들을 찾아가고, 최소 일주일에서 석달까지 살아보면서 나는 그 사람들의 신념이 뭔지, 철학이 뭔지 질문하고 또한 동시에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어본 것이 아닐까. 왜 이 동네에선 석달이나 머물렀고. 여긴 일주일만에 떠났나를 들여다보면 나 자신이 보였다.
그래서 내가 왜 도망쳤는지 나를 이해하고싶었다. 이해하고 나면, 내가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결국 내가 찾는 건 집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