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의 커뮤니티 탐방기: 생각
난 사실 단 한 번도 명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명상, meditation,
그거 앉아서 멍 때리는 거 아닌가?
좋은 건 알겠는데 굳이 왜 해?
허핑턴포스트 창립자 아리아나 허핑턴이 최근의 쓴 책뿐만 아니라 여러 인터뷰에서 명상, meditation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한 번 해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 뿐.
오로빌은 마치 팔색조처럼 여러 가지 색깔을 갖고 있는데, 바로 이 명상, meditation을 빼놓고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다. 오로빌의 심장에 세워진 건축물, 마트리 만디르 (Matri Mandir) 금색 구 형태의 이 건물은 오로빌을 상징하는 건물이기도 한데, 이 곳은 바로 명상을 위한 공간이다.
이러하다 보니, 오로빌에서 진행하는 여러 워크숍, 이벤트, 주민들끼리 작은 모임들 중에 명상 모임이 많다. 오로빌 도착해서 어리바리했던 나는 사람들과 친해져야겠다! 는 마음에 아침마다 하는 명상 모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서 참여했다.
아침 조기 축구회처럼, 오로빌엔 아침 명상 모임이 있었다.
처음엔 참으로 히피-히피-하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우주의 오로라 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나름 심각한 모습으로 앉아서 명상이라는 것을 했다. 10분 후에,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라고 물어보셔서, 아 그저 잡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인자하게 웃으시며 원래 다 그런 거라고 하셨다. 그다음에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셨다. 그 종이를 열심히 바라보면서 내 안에 있는 나쁜 생각들을 거기 담으라고 하셨다. 종이가 점점 노랗게 보이기 시작할때즘, 그 종이를 마음을 담아 힘껏 구기라고 하셔서 매우 힘차게 구겼다. 그다음 어떤 느낌이냐고 물어보셔서, 아 그저 뭔가 개운하군요. 허허허라고 말했다. 그 외에 정말 여러 가지 practice를 했다. 대추를 하나씩 주시면서 이제 대추를 mindful eating 할 거라고 하셨다. 일단 그 대추를 처음엔 열심히 쳐다보라고 하셨다. 안 그래도 아침을 안 먹고 왔던지라 열심히 쳐다봤더니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났다. 그다음엔, 대추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하셨다. 대추의 소리보다 배고파하는 내 위장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그다음엔, 대추 냄새를 맡아보고, 마지막에 입에 넣어서 대추를 음미하고 (하.. 아놔..) 마지막에 대추 먹는 데 까지 30분이 걸렸는데, 내 인생에 가장 맛있는 대추였다. (...) 아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mindfulness, zen 아닌가! 하면서 아는 척하고 싶었지만,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내가 가장 mindful 하지 않은 듯하여 잠자코 있었다.
명상 모임이 즐거웠던 건, 다들 쏘-쿨 했기 때문이었다. 매번 세션이 끝날 때마다 어떠했냐고 물어보셨고 그때마다 '아 그저 잡생각이..' '아 그저 너무 배고파서' '개미를 쳐다봤는데요'라고 대답을 해도 괜찮아서 좋았다. 그렇게 아침 조기 축구회 가는 거 마냥 명상 모임을 찾아갔다. 어차피 할 것도 없고 (...) 친구도 없(...), 이런 내가 기특하셨던지 명상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그 유명한 마트리 만디르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사실 혼자서도 마트리 만디르를 갈 수 있지만, 나는 미천한 guest 신분이기 때문에 예약을 해야 하고 좀 귀찮은 절차가 있다. 하지만 오로빌 주민이랑 동행하면 그냥 들어갈 수 있다. (오!) 첨엔 저 괴이하고 못생긴 금색 건물은 무엇인가.. 했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나 같은 무지렁이도 느낄 수 있는 알 수 없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매표소 (?)처럼 생긴 곳에서 카드 같은 것을 뽑았다. 오늘 명상의 화두를 알려준다고 했다. 나의 화두는 "equality'였다. 선생님은 'justice' 였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다시 한번 비장하고 진지한 표정을 하고 마트리 만디르로 들어갔다.
금색 동그란 건물 가까이 들어가면, 정중앙에 물이 흐르는 공간이 있다. 일단 그곳에 둘러앉아서 명상을 시작했다. 45분 명상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45분 후, 나는 알 수 없는 북받치는 서러움에 쳐 울기 시작했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멍 때리다 보니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하고,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지만... 뭔가 토하듯 울었다. 내가 울든 말든 사람들은 명상을 했다. 그리고 또 이동을 해서 크리스털 볼 앞에서 명상을 했는데, 그곳은 너무 신기하게 생겼다 보니 명상보다는 신기하다는 생각, 사진을 못 찍어서 아쉽구먼 이라는 생각을 잔뜩. 거의 두 시간에 가깝게 명상을 하고 나니 기운이 쭉 빠지고 개운한 게 사우나 다녀온 느낌이었다. 이후 아쉬람에서도 명상을 했는데 거기선 명상보다는 잡다한 생각만 잔뜩 하고 온 것 같다.
필이 받은 나는 여러 명상 모임들을 다녔다. 거의 두 시간 가까이 춤을 추는 일종의 '댄스 만델라' 모임도 다녀왔는데 여기선 감정을 좍좍 표출하니까 더 신이 났다. 처음엔 뻘쭘하다가 나중엔 심취하여 나의 혼란스러움과 잡다함을 몸짓으로 풀어냈다. 잘한다고 칭찬도 받음. 호호호.
티베트 명상 모임에선 좀 달랐는데. 한 시간 하고 나서 또 주책바가지 마냥 눈물이 퐝 터져서 엉엉 울었다.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쪽팔려하니까 우는 것은 감정을 화장실 가서 배출하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매우 좋은 것이라고 더 울라고 했다. 그래서 더 퐝퐝 울었다. 나중에 왜 울었냐 라고 물어봐서, 나도 모르게 2년 전에 자살한 사촌언니 이야기를 하면서 엉엉 또 울었다. 그때 당시엔 눈물 한 방울도 안 나오더니.... 괜찮다고 더 울어도 된다고 해서 눈물 콧물 다 짜고 나왔다.
명상을 할 때마다 나도 몰랐던 내 감정들이 생각들이 올라와서 놀랬고, 그 감정들을 오로빌 주민들에게 여과 없이 그냥 다 툴툴 털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오로빌 사람들은 편견 없이 그냥 다 들어주고, 자신의 경험도 알려주고, 서로 도닥여줬다. 마치 오로빌 사람들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웃을 수 있는 공간은 많지만, 울 수 있는 공간은 많지 않다.
오로빌에선 맘껏 울 수 있었다. 이젠 가끔 명상을 한다. 내 마음이 어디 고장이 나지 않았는지, 울고 싶은데 꾹 참고 있는지 체크해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