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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Sep 18. 2016

6. 인도 오로빌, 자연 속에서 사는 법

노마드의 커뮤니티 탐방기: 생각


난 참으로 도시 도시한 여자였다.


샤워실에 불쑥 개구리님이 나타나서 개굴개굴했다. 사이즈도 거대한 저 녀석이 점프를 하면 어쩌지. 이 생각이 드는 순간 정말 후다다다다다닥 샤워를 해치웠다. 난 참으로 도시 도시한 여성이었구나. 그 순간 인정했다. 나는 저~~어~~언혀 자연과 하나 되어 나무가 되겠어요 펄슨이 아니라 그저 도시의 인위적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뼛속까지 도시 펄슨임을 인정했다.

 

조심하세요. 두번째 몽구스가 지나가고 있을지도 몰라요!


이전에 나는 나름 자연을 느끼고자 등산을 하거나, 한강을 가거나, 공원에 놀러 갔다. 가서 아무 데나 철퍼덕 앉아서 맥주와 막걸리를 즐겼기에 아 난 참으로 자연 자연한 펄슨이야 라고 생각했나 보다 (....) 시골에 할머니 댁에 가도 기억나는 건 그저 멀리 떨어져 있는 논밭, 경운기, 엄청나게 많은 모기 밖에 없다.... 내가 만난 자연은 무엇이었을까. 도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박제된 모습이 아니었을까.


오로빌은 본디 사막에 가까운 공간이었는데 50여 년에 걸쳐 주민들이 열심히 나무를 심고 가꾸어서 오늘날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박제된 자연이 아니었다. 인도의 거친 기후를 이겨낸 나무와 생명체들이 꿈틀대는 생명력이 넘쳐나는 공간이었다. 그 자연 앞에서 나는 압도되었다.


내가 살던 오로빌 동네 'DANA"


자연이란 본디 수많은 생명체를 품고 있는 공간이다.


그니까 여기서 수많은 생명체라고 지칭했을 때, 영화나 정글의 법칙에서 보던 도마뱀이나 아름다운 이름 모를 새들 귀여운 다람쥐. 겅중 뛰어 도망가는 사슴님을 떠올리기 쉽다. 아 물론 그들도 당연히 존재하고 매우 아름답다. 허나.....


자연의 생명체라 하였을 때 99%는 곤충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름 모를. 다양한. 곤충님들.

난 자연을 사랑하는 여자니까 당연히 산속에서 엘프 엘프 하게 살겠어요. 훗훗... 하면서 첫날 오후 산속에 마치 그림처럼 지어진 집을 보고, 그리고 근처에 놀러 오는 공작새, 말, 강아지, 고양이님들을 보면서, 아 아름답구나 파라다이스야... 어머머 했는데, 그날 밤, 우리 집 현관의 조명에 시커멓게 모여든 정체모를 것들을 보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아. 맞다. 인도는 열대지방이지. 벌레가 벌레 벌레 하게 많구나.....ㅅㅂ


나. 나름. 모기도 맨손으로 때려잡고. 바퀴벌레님은 좀 싫어하지만 그래도 사전 떤져서 때려잡고. 개미님은 어마나 귀여워라 하는 편인데


아 이건 좀 너무 많잖아. 꼭 자연이 이 분야만 너무 자연 자연한 거 아니냐. 하. 그날 밤. 천장에서 가끔 떨어지는 알 수 없는 정체모를 벌레스러운 놈들 덕분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울부짖었다. 당장 내일 모기장을 설치하리라.


그리하여 설치된 거대한 모기장



한 30분 잠을 잤을까. 아침이 왔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새들이 엄청나게 지저귀기 시작한 것이다. 여섯 시 반이었다. 아침이 왔다고 서로에게 군모닁 하는지 뭔지 모르겠지만 아놔 겨우 잠들었는데 이놈의 새 새끼들이 시끄러워서 바로 기상했다. 아. 자연 속에서 산다는 건 이런 거구나.


여긴. 나 혼자 사는 공간이 아니다. 우리 다 같이 사는 공간인 거다.

아침에 새 새끼 소리를 들으며 기상한 후, 몽롱한 정신으로 문을 열어젖힌다. 빗자루를 들고 간밤에 우리 집에 방문하셨다 유기농 모기향(?!)으로 기절하신 벌레님들을 수북하게 쓸어서 정원에 갖다 버린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재빠르게 설거지를 한다. 빵 한톨 한톨 꼼꼼하게 쓸지 않으면 개미님들이 잔치를 벌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미 보아하니 어제저녁 흘린 빵 한톨에 개미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뭐 하는 수 없고. 문 앞에 동네 멍뭉이가 놀러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꼬리를 친다. 대충 챙겨서 주니까 좋아라 한다.


아침을 만들어 먹는다. 망고쨈. 크레페. 요거트.....


다시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다 보니 도마뱀 한 마리가 죽어있다. 주로 우리 집에 한 세 마리 정도 기거하는데 왜 죽었지 모기향이 너무 센 건가 쫌 찝찝해진다. 화장실에 가니 엊그제 보았던 그 개구리가 친구를 데려와서 두 마리가 개굴 거리고 있다. 둘 다 사이즈가 너무 거대하셔서 좀 위협스럽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는데 소와 송아지들이 잔뜩 모여서 길을 막아섰다. 얘네들이 오늘따라 왜 여기 이렇게 모여있는 거지. 비가 많이 올라나. 궁금스럽다. 뿔 있는 녀석이 좀 기분이 안 좋으신듯하여 좀 기세에 눌린 나는 다른 길로 돌아가기로 한다......


샴푸를 바꿨다.

개구리님들이 저렇게 쳐다보는데 계속 ㅇㅇ사순을 쓸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거 쟤네들한테 안 좋은데. 기분이 영 찝찝해서 유기농 비누로 머리를 감기 시작했다.


살충제. ㅇㅇ킬라를 안 사기로 했다.

그 살충제로 벌레. 혹은 곤충님이 죽으면 그 곤충을 도마뱀이 먹고 돌아가실 테고. 그 도마뱀 시체를 우리 동네 고양이가 먹으면 그 아이도 죽을 것 아닌가.


밥이 남으면 따로 모아두었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멍뭉이한테 주려고. 어차피 남은 밥 버리기도 아까우니까 말이다.


 

오로빌엔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았다.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은. 자연과 '같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여전히 시커멓게 몰려드는 곤충님과 불쑥불쑥 나타나는 야생 소들은 위협스럽지만. 이젠 안다. 나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이를 잊고 자연과 격리되어 사는 삶은. 곤충들의 부스럭부스럭 소리 없이. 개미들의 행진 없이. 아침의 새소리 하나 없는 삶은. 얼마나 외로운가. 


이 작은 생명체들도 보살피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얄팍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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