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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Dec 02. 2016

셰어하우스 한 달 운영 회고

#4. 회고

정확히 11월 1일 시작을 하여, 12월 1일이니까.

한 달이 지났다.

우리 집을 거쳐간 사람들은 아래와 같다.


미국인 2명. 독립영화팀

버마인 1명. 독립영화팀

한국인 커플 2명. 결혼 후 신혼여행으로 세계를 유랑하는 커플

한국인 1명. 퇴사 후 인생전환기를 맞이하여 생각을 정리하러 온 지인

프랑스인 커플 2명. 학업을 마치고 세계여행을 결심한 커플


벌써 9명이나 되는구나!

이 사람들에게 나는 아늑한 보금자리를 제공했을까?

어제오늘 몇 명을 떠나보내고 나니 그러한 아쉬움이 들었다. 나 역시 집과 집을 오가는 사람 중 한 명이었기에. 타지에서 "좋은 집" 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아무래도 처음 운영하는지라 어설플 것이라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훨씬 더 변수도 많았고 내가 상상한 것과 많이 달랐다. 사실 나름 경험이 쌓여있다고 자부했었다. 전 세계의 쉐어하우스에 살아보았고 커뮤니티들을 방문했으니까. 하지만 방문하는 것과 운영하는 것에는 정말 어마 무시한 차이가 있더라. 운영자가 되어보니 이때까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마구마구 보이기 시작했다.


1."치앙마이" 자체의 특수성

쉐어하우스들은 (1) 주거비용이 비싼 대도시에 위치했기 때문에 이의 부담을 덜고자 하는 경우 (2)퍼머컬쳐, 힐링 등 특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경우, 이렇게 두 가지 이유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치앙마이의 경우 주거비용이 매우 저렴하다는 특징이 있다. (...) 사실 원한다면 도심 중앙 가까운 곳에 위치한 깔끔하고 쾌적한 1인 전용 콘도를 비슷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 아주 매우 상당히 쉽게. (또르르...) 그러하다 보니 '가격' 이 쉐어하우스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전혀 없다. 가격 경쟁력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결국 치앙마이 셰어하우스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사람" 이 전부다.

혼자서 살기보다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어울리면서 치앙마이에 한번 살아보고 싶은 사람들이 우리 집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도심 속에서 살기보다는 약간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부엌이 있고 정원이 딸린 집에서 사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우리 집을 선택하더라.  반대로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 경우 훨씬 더 저렴한 1인 콘도를 구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치앙마이에서는 1인 콘도가 어마어마하게 많고 더 저렴하다.)  혹은 스쿠터를 전혀 탈 줄 모르는 뚜벅이 족의 경우 (이 부분을 너무 간과했다. 내가 손쉽게 스쿠터를 배워서 누구나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다.) 아쉽게도 함께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원하든 원하지 않든 '커뮤니티'라는 요소가 정말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2. 그들의 '스케줄'

처음에 계획은 거창했다. 하우스를 만들어서 하루에 한 번은 서로의 스킬을 공유하고 나누는 워크숍을 할 것이며, 주말마다 근교를 짤막하게 다녀오자. 등등등. 막상 살아보니까 그렇게 안되더라. 일단 처음 입주했던 독립영화팀은 이미 그들끼리의 스케줄이 잡혀있었다. 치앙마이에 마냥 놀러 온 것이 아니고 꽤 바쁜 친구들이었기에 저녁을 함께 먹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입주한 다른 멤버들은 서로 취향이 꽤나 다른지라 뭔가를 "같이 합시다!" 했을 때 떨떠름한 반응이 반복되었고 그래서 몇 번 시도해보았던 조깅, 무비 나잇, 가드닝은 소심하게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눈물..ㅠ-ㅠ) 어찌보면 적응이 되는데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항일 수도 있겠다.


기억나는건 같이 해먹었던 음식뿐....


3. 끼리끼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지난 한 달간 입주한 사람들은 모두 팀, 커플, 지인으로 혼자 독립적으로 찾아온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커뮤니티 빌딩이 더 어렵다고 해야 할까? 저녁을 함께 먹는 나날들도 있지만 늦게까지 남아 오래오래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 만약 다들 혼자 온 경우였다면?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아니면 뭔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치가 부족했던 걸까


4. 공간의 중요성

집을 2개를 얻었기에 이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첫 번째 집은 독립적인 셀 (cell) 구조로 되어있고, 거실이나 부엌이 상대적 비교적 작다. 함께 모여서 TV를 보거나 소파에 누워있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두 번째 집은 반대로 전형적인 일반 가정집이라서 각 방마다 독립적이지는 않지만 대신 넓은 거실과 소파, TV 등으로 모여서 놀기에 적합하다. 그러하다 보니, 두 번째 집이 생기고 나서부터 일명 끼리끼리 문화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절로 거실에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아 공간의 중요성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저녁이 되면 두 번째 집으로 놀러 가서 (??)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고 소파에 널브러지고(!!)는 했다. 그리하여 유일한 우리 커뮤니티의 액티비티는 밥 같이 해 먹고 널브러지기가 되었다.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하고 사람들이 합심하기 쉬운 것이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공간이 바뀌니까 진솔한 대화도 더욱 가능했다


이어서 새롭게 실험적으로 시도한 것은 바로 카우치 서퍼를 받아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 집에 작은 쪽방이 있기에 어차피 렌트를 할 수 도 없는 방, 한번 카우치 서퍼를 받아서 분위기를 바꿔보자! 걱정이 된 건, 돈을 내고 입주한 사람들이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였는데 다들 흔쾌히 그 실험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줬다. 참 고마운 일이다! 커뮤니티 매니저로서 재밌는 액티비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고 찾아오게 된 커우치 서퍼들은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매우 유쾌하게 특히 맛난 요리를 자주 해줌으로써 커뮤니티 멤버 전원의 기분을 고양시켰다! 역시... 음식만 한 것이 없다. (ㅠ_ㅠ...)



찾아왔던 카우치서퍼.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리하야 완성된 그림? ㅎㅎ 공간 + 멤버 + 음식 = 행복


이리하야 11월이 마무리되고 이제 12월이다.

그래도 막상 적어놓고 보니 아무것도 없었던 10월을 생각했을 때 이렇게 많은 것을 시도했고 배웠다니!라는 생각에 기분이 뿌듯하다. 어제만 해도, 아 시밤 망했어 ㅠ-ㅠ이었는데!  시작할 때 마음과는 다르게, 이제 거창한 계획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가 되었고, 이제 바라는 것은 '서로 잘 맞는' 멤버들과 가끔은 저녁을 같이 해 먹고, 흥미로운 액티비티 (다큐멘터리를 같이 본다거나, 서로가 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거나)를 하면서 같이 살면 되지 않을까? 요정도? 서로에게 왜 그딴 연애를 하냐며 겁내 솔직한 연애상담도 해주고, 꺌꺌 웃는 그런 '집' 이 되어가면 좋겠다. 그렇게 2017년 새해를 맞이하면 참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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