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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 Mar 13. 2017

밑천을 탈탈 터는 진솔한 대화

#25. 같이 살아서 좋은 점

넌 찐따처럼 굴지 말고, 너 자신에게 솔직해야 해.
지금 한가롭게 서핑을 배우고 싶다고 할 때야? 넌 지금 겁이 나는 거라고. 지금 당장 매일매일 검색을 하면서 준비를 해야지. 넌 실제로 그 프로젝트를 진짜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 아닌 것일 수도 있다고.


두다다다 총알처럼 쏴대다가 흠칫했다. 아. 말이 너무 심했나. 상처받지 않나? 근데 녀석은 고개를 주억거린다. 너 말이 맞아.


밑천을 탈탈 터는 진솔한 대화가 그리웠다.


2년여간을 둥실둥실 세계를 떠다니다 보면 힘든 것들 그리고 싫은 것들이 당연히 있는데 난 그중에 하나가 "졸라 밑천 탈탈 터는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아무리 베를린이 좋았어도 독일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 같은 이야기를 매번 반복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떠나는 사이인데 이야기를 해봤자 얼마나 하겠는가. 물론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상대가 있으면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시간


어제 같이 사는 식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거의 새벽 3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난 몹시 피곤했고, 술도 한 방울 안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3명이서 정말 서로의 밑천을 탈탈 터는 이야기를 했다. 서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 하고 있다면 왜 안 하고 있는지. "말로 서로를 조졌다." 근데 난 그게 너무 좋아서 두 다리 쭉 뻗고 꿀잠을 잤다. 그다음 날 엄청 피곤할 줄 알았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고 개운했다.


너 예쁘고, 나 예쁘고, 블라블라 그렇고 그런 대화는 이제 싫다.


진솔한 대화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 언제 마지막으로 진솔한 대화를 나눴는가? 그냥 그런 나 잘났고, 너 잘났고, 우리 모두 잘났어요- 이딴 이야기 말고 말이다. 이런 대화는 솔직히 독이다. 동창 모임이 대부분 그러하다. 하하호호 서로 우정이 어쩔 씨 고 하지만 그것이 우정인지 난 사실 전혀 모르겠다. 서로 겉치레 없이, 화장 없이, 가면 없이, 잘 보이려 젠체하는 거 그런 거 전혀 없이. 가드 내려놓고 서로의 약점을 보여주는 그런 대화 말이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거 말고, 상대방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그런 대화 말이다. 그렇다고 나의 기준을 남에게 가져다가 서로 비난하고 비판하는 중심의 대화 말고, 진짜 그 사람을 중심에 놓고 나누는 대화 말이다. 그런 대화를 하게 되면 난 무슨 상담받은 것보다 훨씬 더 (무조건 너 잘했어요. 우쭈쭈 상담을 난 싫어한다. 전혀 도움이 안 됨.) 개운하고 후련하다.


그런 대화를 어떻게 하면 나눌 수 있을까? 사실 그 친구들과 알게 된 지는 오래지 않았다. 하지만 왜 우리는 그러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까?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난 결정적인 요인은 "우리가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삼시세끼 거의 다 같이 먹고- 아침에 부스스한 모습을 서로 보며, 심지어 속옷 빨래를 널기도 한다. (... 또르르) 애초부터 뭐 가면이니 어쩔씨고가 없고 그냥 다 무장해제된다. 그리고 고 그 사람을 진짜 알게 된다. 그냥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는 허름한 여행자라고 생각했었는데 같이 살아보니까 정리정돈이 칼 같은 깔끔쟁이였던 것이다. 이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런 꼼꼼한 면과 다르게 또 스쿠터를 모는 걸 쳐다보니까 은근 허당인 것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함께 사니까 스리슬쩍 보이는 것들이다. 그는 혹은 그녀는 전혀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더 자세히 알 수도 있다. 화장을 하고 가면을 쓰는 것도 순간이지 함께 사는 순간 와르르 무너진다. 이 것이 '코리빙' 혹은 '캠프'의 숨은 힘이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게 최고 포인트였다. "그냥 같이 사는 것"


무장해제, 민낯, 서로 각자 모습 그대로


그렇게 무장해제된 우리는 서로의 민낯을 보게 된다. 가족이 아닌 연인이 아닌 타인에게 우리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 꽤나 어색한 일이다. 


이렇게 발가벗겨진 나 자신이 불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래서 우리는 저녁 먹고 나서, 혹은 아침에 멍 때리다가 내면의 속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사실 나 외로워. 

사실 나 요즘 돈이 너무 없어서 불안해. 

부모님이 보고 싶어. 

나 잘하고 있는지 걱정된다. 

요즘 쫌 심심해.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을 너무 잘 알기에 이야기해줄 수 있다. 야. 너 잘하고 있어 괜히 졸지 마. 혹은 야 너 요즘 너무 멍 떄리기만하고 정작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 정신 좀 차려!라고- 그 사람이 만약 가족이라면 오히려 가족이라서 이야기 못할 수도 있다. 엄마에게 언니에게 아내에게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은 사실.. 슬프게도 제한적일 수도 있으니. 그래서 두 번째 가족이라는 것은 꽤나 쓸모 있다. 


당신은 그런 가족이, 친구가 있는가? 당신의 못난 점, 삐뚤어진 점, 약한 점, 잘난 점, 당신의 민숭민숭한 그런 민낯을 그냥 보여줘도 괜찮은 그런 식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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