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그리움에 대한 글이다
캐나다에서 1년간 살다 온 이야기를 쓰는 지금은 다녀온 지 1년 반이 조금 넘은 시점이다. 나는 여전히 울프빌 교회 예배를 보고 (드린다고 하는 말은 적절하지 않을 정도로 그냥 보고 있다.) 간혹 울프빌에 살던 친구들과 연락을 한다. 얼마 전 내 생일에는 캐나다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에게 생일 축하를 전했다. 영어로 적힌 많은 Happy Birthday를 보며 그들을 다시 기억했다. 보고 싶다. 내 캐나다 친구들.
1년이란 기간이 매우 긴 것 같지만, 실상은 나의 긴 인생으로 비교해 보자면 그리 길지 않은 짧은 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한국땅에서 보낸 겨울이 훨씬 길어도 나는 겨울 하면 그 캐나다의 겨울이 떠오른다. 영하 10도의 눈이 오지 않는 날씨. 길에서 눈은 치웠지만 약간의 서리가 덮여서 겨울 부츠를 신고도 조심조심 걸어가야만 했던 가끔 스쿨버스가 지나가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침 인사를 나누던 곳, 그리고 은은한 나무향이 나던 차가운 공기와 잠바의 앞부분을 적시던 나의 뜨거운 입김까지.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 가끔 그 기억이 사무치게 그립다.
그 곳에서 예쁜 곳도, 웅장한 곳도, 유명한 곳도 가보았지만 거기에서 제일 기억나는 건 그 길과 거기에서 깊은 우정을 나눈 사람들이다.
1년 살기를 마무리하던 크리스마스쯤엔 그곳의 사람들에게 나는 마치 나에게 최면을 걸듯 거듭해서 말했다. 이 사람들이 너무 그리울거 같아 참을 수 없었다.
"저는 이곳에 2년 뒤에 다시 올 거예요. 반드시 오고 말 거예요."
모두가 꼭 오라고 말했지만, 사실 빈센트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던 터전을 버리고 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꼭 잘 생각하고 하도록 해."
그때는 한편으론 조금 섭섭하던 그 말이 지금은 이해가 된다. 캐나다 1년 살기를 하기 위해 떠나던 마음가짐과 만약 거기에서 완전히 살기 위해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을 너무나 다르다. 그 경험을 이미 20대에 하여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셨던 할아버지는 아셨던 것이다.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지금도 다시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지만 내려놓아야 하는 것 역시 너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금 우리에겐 다시 캐나다에 간다는 명확한 계획은 없어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시간을 보내고만 온 것은 아니었다. 영어 실력 향상이라는 그 목표 하나만 보고 갔음에도 그걸 자처하고라도 캐나다 1년 살기는 우리 가족에겐 너무나 수지맞는 장사였다. 유학생으로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답답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온 나는 우리 반 다문화 학생의 어머니에게 더욱 마음이 쓰인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학교 원어민 선생님이 어려움이 처할 땐 선뜻 손을 내밀게 된다. ADHD아이를 최대한 통제하고 하게 만드는 게 능사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다른 방법이 있음을 알게 해 주었고 마냥 똑같은 목표를 향해 모두 똑같이 나가는 게 과연 교육적 평등일까 라는 의문점을 나에게 심어주었다. 학교와 교회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해 나에게 가진 것을 나눠준다는 것이 손해만 보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또한 이 글에는 쓰지 못했지만 한국에선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던 남편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나의 30대의 도전 중 가장 큰 도전이었던 캐나다 1년 살기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가기 전에 많은 사람들과 뜨거운 포옹과 감사의 이별을 했다. 두 팔을 벌려서 한 사람을 힘을 줘서 안는다는 건 나에게 너를 깊이 받아들이다는 뜻일 것이다. 수없이 많은 포옹을 남기고 나는 그곳을 떠났다.
지금도 그들에게 내가 남긴 포옹과 그들이 나에게 준 뜨거운 사랑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