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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이용성 Jul 24. 2017

종이 달

나는 종종 혼자 조용히 생각이 필요할 때 일본 영화를 본다. 일본 영화만의 정적, 연출, 세심한 심리묘사 등은 여타 다른 나라의 그것들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영화 ‘종이달’은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요시다 다이치 감독이 영화화를 시켰다. 평범한 주부이자 은행 영업사원이 거액의 횡령사건에 휘말리는 과정을 담고 있다. 


시대적 배경은 1994년, 일본의 버블경제가 꺼진 뒤인데 작금 헬조선의 상황과 비슷한 구석이 꽤 있다. 주인공인 리카는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직장을 가진 남편이 있는 주부로 나오는데 극 중 초반에 보면 남편이 은근 그녀를 무시하는 몇몇 장면들이 나온다.


은행에 영업사원으로 취직해 나름 성과를 올려 인정받기도 하나 그래 봐야 직장에서는 계약직, 가정에서는 유능한 남편의 식모와 다름없는 하찮은 존재로 나온다. 바로 이 점이 그녀를 파멸의 길로 이끄는 단초가 된다.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소비를 통해서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내 그 소비가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된다.

손대면 안 되는 고객의 돈을 조금 횡령하고 다시 채워 넣기를 반복하다(이 과정에서 동료직원이 부정행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뭔가 암시가 아닐까 싶은데.. “돈을 보면 나도 모르게 저지르고 싶어 진단 말이에요”)나중엔 가짜 전표까지 만들어 돈을 착복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만든 돈으로 금전적으로 어려워하는 젊은 애인을 도와주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받으려 계속 돈을 쓴다. 하지만 그것은 가짜 돈으로 만든 허상일 뿐,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없었고, 그건 누구보다도 리카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수억을 횡령한 게 들통나게 되어 직장에서 추궁을 받던 중 마지막 변명 아닌 변명(‘가짜 삶이었기 때문에 진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을 한 뒤 창문을 깨고 유유히 도망가기에 이른다. 


선악의 판단보다 행위의 동기를 서사적인 구조로 내내 복선을 제공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주인공의 알 수 없는 동기가 주인공의 핏기 없는 얼굴처럼 서늘하게 다가온다.


영화 종이 달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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