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거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들은 대략 일본에서 10~15년 전에 유행했던 것들이 반드시 일어나곤 한다.
대표적으로 일본에서 있었던 학생들 간의 따돌림, 괴롭힘인 '집단 따돌림(いじめ)'현상이 약 10년여의 시간차를 두고 후에 한국에서는 '왕따, 은따'등으로 나타났고 고독사라던지 골드미스, 초식남, 초고령화 사회와 최근에 들어서는 히토리 세대(さとり世代=달관 세대, 한국에선 N포세대)따위의 안 좋은 것들은 예외 없이 쫒아하고 있다.
이것은 애석하게도 한국의 입법, 사법, 행정, 교육, 군대. 문화 등의 모든 체계들이 35년간의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사회체계가 일본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따라 한 것이기에 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지만 그와는 별개로 일본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왜냐하면, 일본의 현재 사회현상은 약 10~15년 정도 후의 한국이라고 봐도 무리 없으니까.
그중에 하나 꽤나 흥미를 끄는 것이 있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일본 사회현상에 대한 것들을 보다가 한 다큐를 보게 되었는데 어떤 TV 프로그램에 페라리를 소유한 일반인을 따라다니며 촬영한 것이었다.
주인공은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는데 직업은 목수라고 했다. 아버지와 공방에서 일하는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었다. 아니, 어쩌면 TV에서 자신을 찍고 있다는 게 부끄러운지 제대로 카메라를 쳐다보지도 못하는 약간은 소심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대충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을 가지 않고 가업을 이어받아 3년간 정말 최소한의 생활비는 제외한 월급을 모두 저축하여 계약금을 치르고 나머지 부족분에 대한 것은 대출로 해결해서 1만 km 미만의 페라리를 샀다는 것이다. 물론 대출에 대한 이자와 원금을 갚기 위해 앞으로도 5년간은 비슷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자신의 공방의 마당 한편에 직접 만든 온습도 유지되는 전용 주차장에 페라리를 모셔(?) 놓고 일주일에 1번씩 총 한 달에 4번. 비가 오지 않은 날에만, 고속도로에서만 주행하고, 한번 주행 시 100km 이상 달린다는 자신과의 약속(?)이 있다고 했다. (뭐랄까.. 이 녀석은 대체 뭐지?)
취재하는 카메라는 그가 사는 곳도 살짝 비춰주었는데, 아직 독신이라는 그의 비좁은 방에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각종 인스턴트 음식들(라면, 카레 등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소지품, 옷가지 등은 거의 없었고 가구라고는 작은 침대가 다였다. 다큐를 찍고 있는 리포터도 기가 찼는지 내면에서 끌어올린 궁극적인 질문을 던졌다.
"대체, 이렇게 까지 해서 페라리를 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때까지 말도 몇 마디 안 하고 바닥만 쳐다보던 청년은 리포터를 또렷하게 응시하며
"당신은 페라리를 한 번이라도 타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없다면 그런 의미 없는 질문은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 순간의 정적이 영상 속에 그 작은방을 감싸고 있었다.
사실, 겉모습은 형편없기 짝이 없는 데다가 멍청하고 한심한 놈이 제 분수도 모르고 비싼 차를 사서 신세 망치는구나 하고 속으로는 그를 경멸하며 보고 있었는데, 머리를 한번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그는 그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다른 삶의 모든 부분은 극단적으로 최소화시키고 그가 집중할 수 있는 것에만 최선을 다 하는 것이었다. 내가 차에 대해 많이 알진 못하지만 페라리는 대략 일반적인 직장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세금도 높고 잔고장도 많아서 유지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계획을 세워가며 하나씩 현실화해나가는 것이었다.
분명, 일반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아니다. 극단적인 형태의 삶이긴 하지만 그는 일주일에 단 한번 페라리를 모는 것만으로도 삶의 가치를 느끼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떤 가치를 위해 어떤 것들을 감내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