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막 1장 - 유비토피아

8일 아침 - 유비토피아(ubitopia)

by 이윤수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윤주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소변을 보고 나와서 창문을 가리고 있는 상아색 롤러 커튼을 열어보려고 커튼 옆에 달려있을 개폐용 당김줄을 찾아보았다. 그리 두껍지는 않지만 영화관의 암막처럼 차광이 잘 되어 바깥의 빛을 거의 완전히 차단하고 있는 커튼의 무늬 없이 매끈한 천만이 창문틀에 밀착되어 있고 주변에 커튼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끈이나 스위치는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침대 옆에서 은근한 주광색 빛을 내고 있는 스탠드 등 아래에 리모컨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없다.

"커튼을 어떻게 젖히지?"

윤주가 혼자 말로 중얼거리자

"창문의 커튼을 열까요?"라고 어디에선가 맑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주는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두리번거리며

"어.. 응."이라고 말하자

커튼이 스르르 말려 올라가고 밝은 빛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직사광은 아니지만 환한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다. 윤주는 눈살을 찌푸리며 창문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본다.

넓지 않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 건물이 보인다. 쾌 높고 큰 주거용 건물인지 윤주의 시야가 닿는 건물 외벽은 상하좌우 일정한 간격으로 같은 규격의 창문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창문들은 모두 상아색 커튼으로 가려져 있고 내부가 보이는 창은 하나도 없었다.

아래쪽을 보니 거리에 차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살펴보고 있으니 승용차 하나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윤주는 출입문을 열고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도중에 마주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자동으로 열리는 현관문을 나와 도로에 내려서자 어디에선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길 가 전신주 같은 기둥에 cctv와 스피커가 매달려 있었다.

"어머니 집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강윤주 씨가 맞으신가요?"

'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예."

"방문 목적이 무엇입니까?"

'엄마 집에 가는 데 무슨 방문 목적이 필요해? 아무튼...'

"그냥 좀 보고 싶어서..."

"상계동 어머니 주거지로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얼씨구! 엄마 집도 알아?'

윤주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려니까

"윤주 씨 어머니는 지금 바쁘시다며 급한 일이 아니시면 오후 5시에 방문을 하라고 하십니다."

'뭐라고? 내 전화기가 어디 있지? 전화를 한번 해봐야겠다.'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전화기가 없다. 방에 두고 나왔나 보다. 윤주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전화기를 찾아보았지만 방 안 어디에도 전화기가 보이지 않는다.

"내 전화기 어디 있어?"

윤주가 짜증이 나서 소리를 치자

"윤주 씨의 휴대전화기는 장기간 미사용으로 반납되었습니다."라고 스피커가 대답을 했다.

"뭐? 그럼 친구에게 연락을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

"제게 말씀을 하십시오."

"내 친구 진수에게 전화 좀 해 봐!"

"양진수 씨가 맞습니까?"

"응."

스피커로 전화 신호음이 가고 진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윤주?"

"응. 뭐 해?"

"응. 놀아."

"그래? 그럼 좀 볼까?"

"응. 알았어."

진수의 말이 끝나자 전면 벽이 대형 스크린으로 바뀌면서 진수의 얼굴이 나타난다.

"왜?"

"씨발, 좀 보자니까!"

"뭐? 만나자고? 직접?"

"응!"

"왜?"

'짜증 나! 친구를 만나는데도 이유가 있어야 하나?'

"응, 만나서 물어볼 게 있어."

"그래? 전화로는 안되고?"

"응."

"알았어. 지금 올 거야?"

"응, 어떻게 가야 해?"

"거리에 나가서 택시를 불러!"

윤주가 더 물어보려고 하는 데 갑자기 화면이 사라지면서 진수가 전화를 끊었다.

윤주는 다시 거리로 나갔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내 친구 양진수 집에 가려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택시를 호출하겠습니다.

택시가 배정되었습니다.

1분 25초 후에 택시가 도착합니다."

잠시 후 2인승 전기 택시가 아무런 소음도 없이 스르르 윤주 앞에 멈추어 섰다. 택시 안에 운전기사는 보이지 않았지만 문이 저절로 열렸다. 윤주가 들어가서 앉으니

"행선지를 확인해 주십시오."

소리가 들리고 좌석 앞 모니터에 진수 집 주소와 예정 경로가 지도 위에 표시되었다.

"맞아."

"출발합니다."

무인 택시는 미끄러지듯이 부드럽게 도로를 달렸다. 차창 밖을 보니 차가 지면 위에 살짝 뜬 채로 달리고 있어서 실제로 바퀴의 마찰음이나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로에 사람이라고는 가뭄에 콩 나듯이 이따금씩 길 가를 걸어가는 사람을 볼 수가 있었고 자동차 역시 택시나 순찰차, 관리용 트럭이 가끔씩 지나갈 뿐이었다.

얼마 후 택시가 어느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윤주가

"얼마예요?"라고 물어보자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시 질문해 주세요!"라고 택시가 되묻는다.

"요금이 얼마냐고?"

"요금은 무료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말과 함께 문이 덜컥 열린다.

윤주가 차에서 내리자 무인택시는 어디론가 씽 사라진다.

"진수 집이 여기였던가?"

많이 달라진 진수네 집 아파트 입구 주변 풍경에 당황하며 윤주가 중얼거리자

"예. 맞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라며 모니터와 바퀴가 달린 안내 로봇이 윤주를 인도한다. 쭐래쭐래 따라가자 안내로봇은 진수의 집 현관문 앞에서 친절하게 초인종까지 눌러주고 되돌아간다.

"야. 뭔 일 났어? 웬만하면 전화로 하지 왜 번거롭게 찾아오고 난리야?"

문을 열고 윤주를 들이는 진수의 얼굴에 귀찮고 성가시다는 표정이 쓰여 있다.

"혼자 있어?"

"응. 원래 혼자 살잖아!"

"부모님과 동생은?"

"따로 산 지 오래됐어. 몰라서 물어?"

"응, 난 오늘 좀 이상한 게 너무 많아서 너한테 좀 물어보려고 왔어."

"뭔데?"

"거리에 사람들이 없어!"

"그거야 나올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 일하러도 안 가고 학교도 안 가고 놀러도 안 가?"

"응, 집 안에서 다 해결이 되는데 귀찮게 왜 나가?"

"집 안에서 다 된다고? 공부도?"

"응. AI (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 가정교사가 다 가르쳐 주고 물어보는 건 다 대답을 해줘!"

"일도 집에서?"

"일은 왜 하는데?"

"돈 벌어야지!"

"돈은 왜 벌어?"

"먹고살아야지!"

"먹고사는 데 돈이 왜 필요해? 전부 공짜인데.."

"그럼 아무도 일을 안 해? 그러면 누가 먹여주는데?"

"로봇이 다 하지! 사람이 왜 해?"

"그 로봇은 누구 거야? 로봇을 만들고 운영하는데도 돈이 들 거 아니야?"

"다 중앙정부 거고 거기서 다 알아서 하지, 우리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그럼 정부는 돈이 어디서 나나? 세금을 내나?"

"아니, 안 내. 왜 내? 돈이 들지를 않는데..."

"어떻게 돈이 안 들 수가 있지?"

"얘가 오늘 정말 이상하네! 답답한 소리만 하고... 모두 다 AI가 관리 운영하고 모든 물건은 로봇이 만들고 수리하고 배달도 하는 데 돈이 왜 들어?"

"최소한 자원이나 에너지라도 들 거 아니야?"

"자원 채굴과 리싸이클링은 로봇이 하고 에너지는 핵융합 발전으로 무한 청정에너지가 공짜로 나오기 시작한 지가 오래 전이야. 무슨 돈이 들어?"

"그럼 농사는? 밥은?"

"이리 와 봐. 저기 저 유리로 된 빌딩 보이지?"

진수가 창가로 윤주를 데리고 간다.

"저기가 도시 농장이야. 낮에는 자연광으로 그리고 밤에는 인공 태양으로 작물을 기르고 그 아래에는 식물성 단백질로 인조고기를 만드는 공장이 있고 지하에는 조리실이 있어. 요즘엔 인조고기도 잘 나와서 동물성 고기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맛있고 식감이 좋아. 아, 마침 잘 됐다. 배고픈데 뭐 좀 먹자.

오늘 아침 메뉴!"

그러자 벽면에 종류 별로 메뉴판이 뜬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다양하다.

"난, 팬케이크로 먹어야겠다. 딸기도 있네! 생크림에 찍어 먹으면 맛있겠다! 너는?"

"음.. 나는 선지 해장국으로 할까?"

"그래. 알았어.

들었지? 그대로 주문해 줘!"

진수가 허공에다 대고 말을 하자

"예. 팬케이크, 생크림 딸기, 선지 해장국을 주문합니다.

5분 후에 배달됩니다."라고 스피커가 나긋나긋하게 대답한다.

"옷은? 배급하나?"

"사람들이 직접 만날 일이 거의 없으니 옷도 필요가 없어. 그냥 편하게 입고 영상통화하면 옷은 디지털로 보정이 돼."

"그래도 고급 옷이나 신발을 입고 신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걸?"

"글쎄 아직도 있을까? 이제는 누가 명품을 가지고 뻐기면 다른 사람들이 비웃어! 예전처럼 부러워하지 않아. 누구나 원하면 다 가질 수 있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자랑을 할 거리나 되나?"

"그럼 집이나 가구는? 취향이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고... 더 넓고 좋은 곳에서 살고 싶으면 그것도 가능한가?"

"응, 공급 가능한 모델과 크기가 있어. 그중에서 고를 수는 있지만 자기가 별도로 주문을 할 수는 없어. 그래도 집은 웬만하면 쾌적하게 살 만하고, 가구도 호화롭지는 않지만 편안하고 편리해. 그리고 소비자의 반응에 따라 모델과 용적이 계속 좋아지는 중이니까 사람들이 불만은 없어."

"그럼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따로 없는 건가? 모두 똑 같이 살아?"

"응, 취향에 따라 다 다르게 살고 사이버 세계에서는 원하면 얼마든지 사치를 할 수도 있지만 물리적인 생활여건은 거의 다 비슷해! 어차피 가상 세계에서 만족을 충분히 얻을 수 있으니까 굳이 현실세계에서 번거롭게 다 갖추고 살 필요도 없고..."

"사이버로 모든 게 다 된다고? 산책이나 운동하러도 안 나가고 여행도 안 가?"

"응, 잠깐만, 어... 밥 왔나 보다. 밥 먹고 나서 내가 보여줄게."

식탁 옆에 전자레인지 같이 생긴 것 위에서 초록 색 불이 깜박이면서

"주문하신 음식이 도착했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온다. 음식 배달구를 열자 쟁반 위에 주문한 음식이 모락모락 김을 내면서 기다리고 있다. 진수가 음식을 꺼내서 식탁에 올려놓는다.

"자, 먹자! 맛있겠다. 앉아!"

두 사람이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시작한다.

"괜찮지?"

진수가 시럽을 팬케이크 위에 뿌려서 한 입 먹으면서 묻는다. 윤주도 해장국을 한 숟가락 퍼서 먹으면서 대답한다.

"응, 맛있네. 이게 어떻게 오는 거야?"

"응, 공기압력식 배송 튜브가 집집마다 지하로 연결되어 있어서 식당에서 조리 즉시 바로바로 와. 작은 소품과 식사는 이렇게 배달되고 가구 같이 큰 물건은 도로 위 배송 트럭으로 운반되지!"

"와, 그 참 편리하다.

설거지나 청소도 할 필요가 없나?"

"물론이지. 다 먹고 음식 배달구에 도로 넣으면 식당으로 돌아가고 청소는 청소 로봇이 다 알아서 해."

"아프면? 치료는?"

"AI 닥터가 원격으로 진단하고 처방을 하면 약이 즉시 배송되고 치료가 필요하면 엠뷸런스가 집으로 와!"

"의사는 병원에 있나?"

"아니야 간단한 치료나 응급처치는 엠뷸런스와 함께 오는 구급로봇이 하고, 심각하면 병원으로 이송해서 수술 로봇이 수술을 해. 하지만 예방의학이 발달되어 있고 위험한 환경에 노출될 일이 없으니까 응급이나 위급 환자가 많이 생기지도 않아."

"와. 정말 좋네! 그럼 사람들끼리 싸우고 다툴 일도 별로 없겠네?"

"응,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그래도 심심하고 무료해서 그런지 술 먹고 마약을 하거나 자해를 하는 등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그러면 경찰로봇이나 판사 AI가 적절하게 처리하고 구금이나 정신치료를 받게 해.

밥 다 먹었어?"

"응."

"식기 저기에 넣고 이리 와 봐."

진수를 따라서 윤주도 빈 식기를 음식 배달구에 넣고 거실로 간다.

거실에는 작은 소파가 있고 중앙에 헬스장의 운동기구 같은 것이 놓여있다. 진수가 의자에 앉아서 자전거 핸들 같이 생긴 손잡이를 잡고 옆에 있는 헬멧을 쓰자, 그 기구가 공중으로 살짝 떠 오르고 전후좌우 전체 벽면과 천장과 바닥에 영사기 빛이 비치면서 대형 스크린으로 바뀐다. 배경으로 나타난 나무와 풀과 하늘과 땅의 해상도가 높아서 실제로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뭘 해볼까? 산악자전거?"

진수가 발로 페달을 밟기 시작하자 주변 풍경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실제로 울창한 숲 속 오솔길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 같이 느껴진다. 새가 날아다니고 새소리도 나면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날리기도 한다. 바람결에 숲 속 산림욕장에서 맡는 피톤치드 향기가 섞여 와서 기분이 상큼해진다. 진수가 페달을 빠르게 밟으니 풍경도 그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진수의 몸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한다. 잠시 후,

"너, 수상스키 한 번 타볼래?"라고 하면서 진수가 기구에서 내려서자 풍경이 순식간에 파도가 치는 해변으로 바뀐다.

윤주가 기구에 올라서서 헬멧을 쓰자 앞에서 보트가 달리기 시작한다. 윤주가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물 위를 미끄러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쿠션감과 평형감이 느껴진다. 물을 가르는 소리도 들리고 시원한 물이 발과 몸에 튀기는 것도 느껴진다.

"어? 진짜 물속에 잠기는 느낌이 나!"

윤주가 신나고 신기해서 소리를 지르자

"응, 네 헬멧 속에 전기자극점이 있어서 그걸로 네 신경과 뇌에 직접 자극을 하는 거야. 어때 실감 나지?"

윤주가 손을 놓고 움직임을 멈추자 풍경이 정지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진짜로 밖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운동도 돼!"

"응, 예전에는 가상현실이 시각, 촉각, 청각 등 사람의 감각기관을 자극하느라고 큰 고글을 쓰고 자극 슈트와 장갑을 껴야만 했는데 이제는 그와 더불어 전기신호로 신경계를 직접 자극하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서 훨씬 더 실감이 나고 운동도 많이 되지.

스키, 달리기, 승마, 행글라이딩.... 안 되는 게 없어. 밖에 나갈 필요가 없는 거지!"

"축구 같은 그룹 스포츠도 가능한가?"

"두 말하면 잔소리지. 관객도 있고 태클도 돼! 부상이 없다는 게 단점이라면 유일한 단점이지!"

진수가 껄껄대며 웃는다.

“영화나 음악은?”

진수가 대답 대신 빠르게 주문을 하자 방이 순식간에 영화관, 오케스트라, 팝 공연장으로 바뀐다. 음질도 현장에 있는 듯 빵빵하다.

"여행도 갈 수 있나? 나 아프리카에 안 가 봤는데..."

진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소파에 앉으며 윤주에게도 옆에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윤주가 앉자

"아프리카 사바나 사파리 여행시켜 줘!"라고 요구를 하자, 순식간에 주변이 아프리카 초원으로 바뀌고 사자와 얼룩말 등 온갖 동물들이 소리를 내며 뛰어다닌다. 방 안의 온도와 습도도 환경에 따라 조절이 되는지 금세 덥고 햇살이 뜨겁다.

"우주여행, 바다 속도 되나?"

"물론이지, 비행, 전투, 고대 전투도 가능해. 그런데 그런 건 연령과 시간제한이 있고 살인이나 강간 등 범죄행위는 안 돼! 하지만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걸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어."

“일을 하고 싶을 때는? “

“일? 아.. 그렇지 가끔 일을 하고 싶을 때도 있지.

그럼 사이버 직장에 다니거나 사이버 직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돼. 정원 가꾸기, 농사일, 어업, 제조업, 사무직… 없는 게 없어! 근데 별로 인기가 없어. 사람들이 호기심에 시작했다가 금방 그만둬! “

"사람들이 불만은 없나?"

"정상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족을 하지. 그래서 이 세계를 '어디에나 있다'는 뜻으로 'ubitopia'라고 불러."

"유비토피아?"

"응.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상적인 사회이긴 하지만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지만 이제 드디어 그 이상적인 사회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실현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

"그럼 불만이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건가?"

"응, 있지. 사람 사는 곳에 욕심이나 불만이 없을 수 있겠어? 그래서 매년 투표도 하는 거지!"

"선거를?"

"아니야. 다음 해 운영을 맡을 AI 시스템을 선택하는 거야. 세상을 운영하고 개선할 시스템을 몇 개 AI가 제시하고 그중에 다수가 선택하는 체제대로 한 해가 운영되는 데, 그동안 계속 문제점을 수정하고 개선 발전해 왔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걸 선택해도 대부분 완벽해서 개인이 체감하는 불편은 없었어."

"와, 대단하다. 나도 집에 가서 해봐야겠다."

"그래, 내가 굳이 집 밖에 나올 필요가 없다고 했지?"

"응, 나 그만 간다."

윤주는 자기도 여러 가지를 해보고 싶어서 서둘러 나오려다가 잠시 멈칫한다.

"야, 진수야, 사람들이 안 만나면 섹스는 어떻게 하고 아이는 어떻게 낳냐?"

윤주가 조금 수줍게 묻자 진수가 빙그레 웃으며 대답을 한다.

"짜식! 그것도 다 돼. 가서 한 번 해 봐! 더 좋아!

그런데 얘를 낳는 건 좀 문제가 있긴 해. 원하면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서 기를 수는 있는데 요즘 대부분 여자들이 출산을 기피한다고 하더라고! 인공수정, 인공임신, 인공출산 후 입양도 된다는데 그것도 원하는 사람이 별로 없나 봐. 육아체험도 사이버로 다 되니까!"

"그럼 인구가 줄어서 문제가 되지는 않나?"

"아니야. 젊은 층이 노인을 부양할 필요도 없으니까 사회학적으로 굳이 적정 인구수를 유지할 필요도 없어."

"그래? 알았어. 나 진짜 간다!"

"응, 잘 가!"

하지만 진수 집을 나온 윤주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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