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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May 20. 2023

캐나다에 살면서 영어를 잘 못하면 차별까지는 아니라도 은근히 손해나 피해를 볼 경우가 있다.

우선 고임금 전문 직종에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직무능력이 뛰어나더라도 동료나 고객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없으면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한국 이민 1세대들은 간단한 의사소통만 할 수 있으면 되는 미용 요리 세탁소 편의점 모텔 카센터 농업 막노동 등의 직종에 많이 진출했다.

그러나 일상에서 만나는 캐나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직하고 요즘 웬만한 도시에는 은행, 카센터, 보험, 회계, 법률, 식료품 등 한국어 서비스를 하는 업체도 많기 때문에 영어를 몰라도 살아가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오히려 한국인들 중에서 정착을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사기를 치는 경우가 간혹 있어서 교민 사회에서 문제가 된다. 대부분 기존 사업체를 넘기면서 이해관계가 상충되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기에 운전면허 받고 (한국 운전면허증이 있으면 바로 캐나다 면허증으로 교체해 주지만 면허가 없으면 영어로 필기 실기 시험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취득이 무척 어렵다.) 은행 계좌 개설하고 렌트 얻고(기존 경력이 없기 때문에 레퍼런스를 받기가 조금 까다롭다. 여기서는 부동산 중개인이 매매만 주로 하기 때문에 렌트는 직접 뛰어야 한다.) 차 사고, 인터넷 TV 연결하고 공과금 자동이체 신청만 하고 나면 매년 4월에 소득세 신고하는 것 이외에는 크게 영어를 쓸 일이 없다.

그러기에 영어를 일부러 공부하거나 영어로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여기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어가 잘 늘지 않는다.

이런 실정을 잘 모르고 사람들은 내가 캐나다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다니까 영어를 원어민만큼 잘하는 줄 안다.

나도 처음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그럴 줄 알았다.

내가 여기에 오겠다고 결심한 동기의 약 13.85% 는 영어를 진짜로 마스트하고 싶어서였다. 명색이 영문학 전공이고 영어 교사인데 영어를 ‘와안벽’하게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 내 덧니와 함께 가는 나의 유이한 콤플렉스였다.

인물은 크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착각이라고? 그래도 이제 와서 어쩌겠냐? 이 나이에! 열등감보다는 착각을 하며 즐겁게 사는 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아무튼 나도 착각하고 사람들도 착각을 한 나머지 이렇게 묻는다.

"미쿡에서 살면 저절로 영어 잘하게 되지 않나요?"

나의 답은 이렇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입니다."

따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설령 별도로 공부를 하고 여기 사람들 하고 섞여서 산다고 하더라도 일상 대화에 필요한 표현만 배울 수가 있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은어(slang)와 전문어(jargon)와 이 사람들의 유모어이다.

은어와 전문어는 특정 집단에서만 통하는 표현이라 일반 원어민들도 잘 모르니 예외로 하더라도 유모어는 반드시 알고 써야 진정한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여기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대화 중에 유모어를 써서 상대방을 웃기기를 좋아한다. 연설도 반드시 농담으로 시작하고 강의나 심각한 대화도 도입은 반드시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해야 하는 줄 안다. 일상 대화 중에도 끊임없이 우스개 소리를 하고 재치 있는 농담으로 대중이나 상대방을 웃기고 폭소를 터뜨리게 해야 성공적인 대화라고 믿고 만족한다. 오죽하면 여대생에게 설문 조사를 하면 제1 인기남이 잘 생긴 사람도, 돈 많은 남자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아닌, 유모어 감각이 뛰어난 남자가 섹시하다고 느끼겠는가?

그런데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유모어라는 것이 책에도 안 나오고 문화에 따라 다른 유모어 코드가 있어서 이를 이해하려면 깊은 문화적 배경까지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외국어로 영어를 배운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이요 건널 수 없는 강 아니 한국과 미국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태평양이다. 에구 태평양은 배나 비행기로 건널 수나 있지만 이 유모어의 무궁무진한 바다는 건너는 게 아니라 태평양 물을 다 마셔야 해결이 될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이것까지 정복하리라고 마음먹고 이들의 농담 대화에 끼어들었다가 완전히 새됐다. 웃음 포인트와 적절한 리엑션을 몰라서 어색하게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이들은 내가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을 금방 눈치채고 자기들끼리 깔깔댄다.

원어민들이 우리 보고 '오, 너 영어 잘하네!' 하면 나는 영어를 못 하는 거다. 그 말속에는 '외국인 치고는 꽤 잘한다'는 뜻이 숨어있다. 반면에 '너 왜 못 알아들어?'라고 짜증내면 내가 영어를 잘하는 거다. 나를 원어민 취급한다는 뜻이다.

또 이 사람들이 내게 또박또박 천천히 말하면 내가 영어를 아직 잘 못 하는 거다. 반면에 알아듣지도 못하게 화르르르륵 지껄이면 내 영어가 정말 괜찮은 거다.

그래서 지금은 난 거의 스트레스 안 받고 그냥 필요한 의사소통하고 간단한 농담만 주고받는 수준으로 만족하고 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평생 걸린다. 심지어 원어민들도 Toastmasters로 대표되는 speech club에서 말과 연설을 더 잘하는 법을 연마하고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서 더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한다. 우리도 국어 공부를 하지 않는가? 그러니 영어를 마스트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끝없이 배우고 익히며 조금씩 좋아지는 것이다.

말은 곧 인격의 깊이요 글은 교양의 넓이이니까!


그다음으로 많이 듣는 질문은 '영어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습니까?'이다.

이에 대한 나의 답은 '아이들은 원어민과 어울려 놀게 하고 학교에 보내면 저절로 배우고 어른들은 흥미로운 주제로 된 영어를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말하고 많이 들어야 한다'이다.

말은 어릴 때일수록 쉽게 배우고 쉽게 잊어버린다. 외국어 학습 이론에 따르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언어를 배우는 것은 13세까지 이고 그 이후로는 의도적으로 배워야 한다. 인간은 어릴 때는 언어에 내재된 문법을 본능적으로 익힌다. 그러나 그 소위 크리티컬 한 시기가 지나면 우리의 어릴 적 입맛이 몸에 배듯이 언어를 그냥 받아들이는 뇌가 닫히고 인지적 사고작용으로 의식적인 학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13세 이전에 조기 유학을 오면 어른들보다 더 빨리, 더 쉽고, 자연스럽고, 더 유창하게 영어를 배울 수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서 영어를 계속 안 쓰면 그 능력이 금방 사라진다.


세 번째 교민들이 많이 고민하는 '이중언어는 가능한가요?'에 대한 답은 '가능하다'이다.

2중이 아니라 3중, 4중도 가능하다. 서로 간섭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분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각 언어는 저장고가 다 다르다. 이중언어를 쓰면 오히려 사고능력이 좋아지고 치매도 잘 걸리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어를 조기에 배우는 것은 좋다. 인도나 필리핀 사람들이 캐나다에서 빨리 적응하는 이유는 그들이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기들의 토속언어에 미숙하지 않다. 또 가정에서 한국어를 쓰는 교민들의 자녀는 영어와 한국어 모두를 능숙하게 한다. 영어를 빨리 익히게 한다고 집에서도 자녀들에게 영어로 말을 하는 집 아이들은 한국어를 못 하거나 어색한 한국어를 구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유튜브 인기 스타로 떠오른 최재천 교수가 써서 교과서에도 실린 한 칼럼은 문제가 있다.

그 내용은 '18세기 미국의 지도급 인사들이 고향인 영국의 찌르레기를 미국 땅에 들여왔다가 그것이 너무 번식해서 문제가 되었으므로 한국에서도 외국어를 무분별하게 쓰지 말고 한글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 하지만 여기에는 논리적 오류가 있다.

생태계에서 외래종과 토종이 경쟁을 하고 하나가 밀리는 문제는 언어가 소위 오염되는 것과는 인과관계가 없다. 인과관계만 없을 뿐만 아니라 상관관계도 없다. 완전히 별개인데 비슷해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이는 마치 수탉이 울면 해가 뜨므로 수탉을 죽이면 아침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오류와 비슷하다. 비유를 잘못 들면 안 드는 것만 못하다.

언어는 한 언어가 다른 언어를 몰아내거나 오염시키지 않는다. 다만 역사적 사회적 현상을 반영할 뿐이다. 그 역(逆)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이 일본이나 미국의 식민지이어서 강제로 한국어가 말살되는 상황은 아니다. 따라서 다른 언어의 자연스러운 영향은 오염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언어를 풍성하게 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영어에도 프랑스어나 독일어 등이 어원인 단어가 엄청나게 많지만

그 단어들을 몰아내려고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한국어에도 중국의 한자어에서 유래된 말이 많고 근대 서구 문물의 도입과 더불어 진행된 전문 학술 용어와 어휘의 증가도 대부분 일본에서 한자어로 번역한 것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다.

그러니 만약 한국어에서 한자어를 다 몰아내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마 적절한 어휘 부족으로 복잡하고 전문적이고 세련된 표현을 할 수 없어서 제대로 된 언어의 구실을 못하게 될 것이다. (당장 이 한 문장만 해도 한자어를 빼면 남는 것이 '아마 할 수 없어서 제대로 된 구실을 못하게 될 것이다.'이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겠는가?)

결국 이것은 그가 국어책에 실릴 것을 의식하여 무리하게 논리를 비약시킨 것이고 80년대 한국을 풍미한 근거없는 민족우월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최재천 교수의 스승인 애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해석되어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정당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의 제자는 오히려 환경보호와 종다양성의 중요성을 주창하다가 생각이 약간 왼쪽으로 경도되어 오늘의 잣대로 과거를 평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최재천 교수의 전반적인 견해는 공감하고 지지한다. 다만 일부 편견과 논리적 오류가 있는 부분을 지적하여 외국어에 대한 국수적인 시각을 바로잡고 보다 자연스럽고 풍성한 언어생활을 하고자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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