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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May 19. 2023

달리는 멧돼지

내 친구들은 나를 ‘멧돼지’, 그것도 ‘달리는 멧돼지’라고 부른다.

나같이 양처럼 양순하고 소처럼 소심한 사람에게 그런 무지막지한 별명을 붙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저지른 두 건의 무모한 건축 사건 때문이 아닐까 짐작을 해본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캐나다에 와서도 한 건을 더 터뜨렸다는 사실은 아직 모른다. 이제 곧 알게 되겠지? 그럼 내 별명이 어떻게 바뀔지 자못 기대가 된다.

아마 '날뛰는 멧돼지'?


1. 유치원 설립 시도 사건

경기도 북부의 어정쩡한 소도시에 있는 한 사립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한 나와 동기들은 젊은 교사의 소명감으로 똘똘 뭉쳐서 참 교육을 해보겠다고 나름 발버둥을 쳤으나 재무와 인사권뿐만 아니라 학사운영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단의 막강한 권한과 오랜 구습 앞에서 수 없는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와, 재단의 힘이 이렇게 센 줄 몰랐네! 그렇다면 이걸 힘들게 개혁하려고 할 게 아니라 차라리 내가 학교를 세우면 우리 꿈을 더 쉽게 펼칠 수 있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아내가 유치원 교사이기도 해서 우선 만만한 유치원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다행히 이전 직장에서 꽤 많이 받았던 연봉을 알뜰한 아내가 거의 안 쓰고 그대로 모아두었기에 겁 없이 인근 아파트 신축 단지의 유치원 부지를 분양받기로 했다. 그러나 계약을 하러 가던 도중에 차바퀴에 펑크가 나서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바퀴를 갈다가 그만 돈가방을 분실하고 말았다. 경찰이 하는 말로는 범인들은 내가 은행에서 고액을 찾는 것을 보고 고의로 펑크를 낸 후 뒤쫓아와서 타이어 교체를 도와주는 척하면서 돈을 훔쳐갔다는 설명이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것은 나의 무모함을 만류하려는 하늘의 계시였는데 오기가 발동한 나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강원도에 있는 다른 유치원 부지를 가 보지도 않고 덜컥 계약을 했다. 나중에 잔금을 치르러 가 보았더니 500미터 인근에 어린이집이 두 개나 있어서 도저히 유치원을 세울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빈 터로 두었는데 인근 상가의 한 친구가 차라리 상가를 세우면 자기가 입주를 하겠다고 했다. 그 유혹에 넘어간 나는 우여곡절 끝에 상가 건축에 착수했다. 그러나 운명의 신은 나에게 또다시 시련을 안겨주었다.

업자를 선정하고 설계와 관청의 인허가를 마친 후 막 기초 콘크리트를 했을 때 IMF 가 터진 것이었다. 갑자기 돈 줄은 막히고 금리는 연 30-40% 까지 치솟았다. 공사를 계속할 수도 중단을 할 수도 없었다. 돈을 구하러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공사비를 계속 조달할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중단하면 밀린 자재비 인건비 그리고 이자를 갚을 길이 없었다. 사람들이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자살을 하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막막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운수업으로 성공을 하신 형의 도움으로 간신히 완공을 할 수 있었지만 빚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얼마 후 그 상가를 자진해서 형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나에게는 뼈아프지만 값진 경험이었다.


2. 전원주택 건축 사건

된통 혼이 난 나는 다시는 사업을 하지 않으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한동안 자숙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양평에 전원주택을 짓고 유유자적 하는 친구집에 갔다가 나도 한번 경치 좋은 시골에서 책 읽고 음악 들으며 글도 쓰면서 살고 싶다는 황당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엔 어찌어찌하여 경매로 작은 시골 땅을 싸게 구입하고 대지로 용도변경을 했다. 터를 닦고 조그마하지만 예쁜 2층 조립식 건물을 올렸다. 텃밭도 만들고 작은 연못도 파고 연꽃을 심고 분수도 세웠다.

그러나 이번엔 위치가 문제였다. 아직은 바쁘게 살 때라 시간도 없고 너무 먼 이곳에 자주 갈 수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관리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그림의 떡이 아니라 마음속의 떡이었다.

결국 캐나다에 오면서 정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에도 정이 드는지 나는 지금도 이 집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련하고 아쉽다.


3. 첨단 사업 도전기

나는 소와 말과 개, 사슴 등 동물을 좋아한다. 그들의 눈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착한 눈 속으로 내 마음이 빠져든다. 그래서 어느 날 지평선 끝, 눈길이 닿은 곳까지 거침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캐나다의 초원을 보면서 또 얄궂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기다가 목장을 하나 세워서 말과 소를 키우면 좋겠다. 그리고 형 친구가 배터리 관련 사업을 한다는데 한국이 배터리 선진국이라 앞으로 전기차가 많이 보급되면 여기서도 사업의 기회가 있을 것이다.'

결국 땅을 샀다. 1억 5천만 원으로 4천 평을 살 수 있었다. 엄청 넓었다.

용도 변경을 하고 건축 허가를 내고 전기를 끌어들이고 터를 닦고 기초공사를 하고 퀀셋 건물 자재를 구입하고 조립을 했다.

이 모든 것을 건축업자에게 맡기려고 견적을 내 보았더니 5억 이상이 든다고 했다. 너무 비싸고 가진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모두 내가 직접 했다. 너무 너무 너무 힘이 들었다.

제도와 관련 법규가 한국과 다르고 생소한 곳에서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고 경험도 없이 일을 추진하다 보니 막히고 막막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산 넘어 산, 물 건너 물... 한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캐나다를 우습게 봤다. 환경영향 평가 등 규제가 훨씬 더 까다롭고 주민 동의까지 얻어야 했으며 어느 것 하나 대충 넘어가는 것이 없었다. 매 과정마다 신청 심사 동의 확인 승인 사후점검이 끝없이 이어졌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결이 되는 게 아니었다. 용역들도 안전 장비가 부족하면 천금을 준다고 해도 작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세부적으로 상술된 규정에서 요구하는 요건만 갖추면 말도 안되는 트집이나 꼬투리를 잡지는 않았고 일이 모두 합리적으로 처리되었다. 요건 딱 내 스타일이다.

몇 번이고 포기할까 하다가 한국인의 자존심과 내 똥고집으로 간신히 완공을 했다. 어찌나 힘이 들었든지 단번에 내 몸무게가 15 kg이 줄었다.

몸으로 때워서 8천만 원의 경비로 간신히 완공을 했으나 이번엔 용처가 문제였다. 그 사이에 배터리 사업은 너무 전망이 좋아져서 대기업도 엄청난 액수로 투자를 하기에 내가 감당할 수준을 넘어서 버렸고

목장을 하려고 했더니 동물은 방목을 해야 한다며 그 넓은 땅에 소나 말을 각 2 마리 밖에 기를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작물을 기르는 농장을 하려고 했더니 지역 특성상 강수량이 적어서 용수가 필요한데 하천은 너무 멀고 지하수는 너무 깊이 있어서 취수가 어려웠다.

아 나의 무모함이여!

난 도저히 사업을 할 운명은 아닌가 보다.

이번에도 다행히 내가 든 비용에 그대로 모든 것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넘겨 버렸다.

또 뼈 아프지만 값진 경험만 남았다.


'이제 다시 무엇이든 하면 그동안의 실패 경험을 참고하여 정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쉿! 이런 생각은 금물이다. 이제 정말로 사고를 안 칠 것을 이 기회에 만천하에 대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고맙소 마눌님! 내 이런 무모한 도발에도 끝까지 나를 믿고 후원해 주어서 고맙소. 마음속으로는 불안 불안 조마 조마 했다는 걸 나도 다 알고 있소.


이 이야기가 캐나다에서 사업을 하려는 분에게 조금이라도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필요하신 분은 댓글로 연락처 남겨주시면 성심껏 조언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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