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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May 19. 2023

生老病死

오늘까지 off라서 늦잠을 자고 있는데

‘띵동’ 문자 알림이 왔다. 혹시 회사에서 보낸 긴급 호출인가 해서 보니

사장님보다 무서운 마눌님 명령이다.

비록 ok라고 0.1초 만에 답문을 날렸지만 내려가기가 귀찮다. 그냥 무시하고 자려다가 며칠 전에

“나 건망증인가 봐 뭘 자꾸 까먹어!”라길래

“괜찮아! 집에 불만 안 내면 돼!”라고 쿨한 척 응대를 했던 게 생각이 났다.

‘그래 이건 정말 불과 관련 있는 일이로구나. 내가 솔선수범해서 내 말에 책임을 져야지!’라고 비장하게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

아아아무 이상 없다.

아침 일찍 일 나가는 마눌님이 먹는데 무관심한 불쌍한 이 중생을 구제하고자 끓여놓은 된장국과 불고기, 가자미 구이가 얌전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래도 천하의 마눌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보다. 그래도 걱정은 없다. 마눌님은 죽어도 천국이든 극락이든 분명히 좋은 곳으로 갈 거다. 평생 내게 베푼 자선만으로도 천국입장 티켓이 남아돌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표를 못 구할 것 같다.

‘ 내게 암표라도 좀 팔아주면 좋을 텐데…’

구시렁거리며 다시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여름 해는 벌써 창문을 가린 블라인드가 무색하게 환히 비추고 나는 한번 깬 잠이 다시 잘 들지 않는다.

뭔가 찜찜하다. 나도 뭔가 뻬먹거나 잊어버린 기분이 든다.  

“뭐지? 뭘까? 중요한 일이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이게 문제다. 이래서 항상 일에 묻혀 사는 거다.

‘에라 모르겠다. 잠이나 더 자자 ‘하며 이불을 뒤집어쓰는 순간 생각이 났다.

‘아, 生老病死를 놓쳤구나! ’

캐나다 문화소개 의무 방어전을 어제 쓴 衣食住시리즈로 끝내려고 했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하는 수 없다. 얼른 오늘 한 방에 요약정리하고 내일부터는 재미있게 살아가는 이야기로 점프해야겠다.


1. 출생

캐나다는 시민권 취득이 속지주의(屬地主義, Territorial principle)다. 즉 부모의 국적과는 상관없이 캐나다 국내에서 태어난 아이는 모두 캐나다 시민권을 갖는다. (한국은 혈연진실주의 즉 신생아나 입양아가 어디에서 태어나든지 부모의 국적을 갖는다. 그래서 한국인이 캐나다나 미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혈연에 따른 한국국적과 출생지에 따른 캐나다 국적을 둘 다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으므로 18세가 되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이를 악용한 의도적 원정출산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정 반대로 내가 아는 한 캐나다 원어민 교사는 한국 제자랑 결혼해서 한국에서 사는 데 그 아이들이 외모나 언어는 캐나다인인데 캐나다 국적이 없어서 고민인 경우도 있었다.)

시민권이나 영주권자는 출산비가 무료이지만 여행을 온 외국인은 정상분만을 해도 출산비가 천만 원 정도 든다고 들었다. 여기는 산후조리 개념이 없어서 출산 후 별 문제가 없으면 바로 퇴원을 하는데 한국 교민들 중에서 산후조리를 도와주는 사람은 있다. 아이들은 정부로부터 0-6세 년 $6,833 7-17세까지 년 $5,765. 정도의 CCB(육아보조금)을 받는다. 추가로 자녀 1인당  $1,750 -$900 (한부모인 경우 추가 $500)의 소득세 공제도 받는다.

5세까지는 자비로 사설 Day Care에 탁아를 할 수 있고

6세부터 유치원 7-12세 초등학교 13-18세 고등학교에 취학한다. 학비와 교재는 무료이고 점심은 도시락을 지참하는데 대개 샌드위치 등으로 간단하게 준비하기에 부모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진학이나 취업을 하고 독립한다. 일찍 결혼을 하는 편이고 요즘엔 결혼식을 하지 않고 동거를 하는 것이 대세다. 동거인도 lawful partner 라 하여 배우자로서의 법적 의무와 권리를 가진다. 내 직장 동료 중의 한 명은 나이 40에 할머니가 되었다고 좀 즐거 슬퍼했다.


2. 늙음

캐나다에서 정해진 은퇴 나이는 없지만 국민연금이 65세부터 나오니까 보통 그때 은퇴를 한다고 본다. 연금체계는 좀 복잡하다. 국민연금인 CPP는 자신이 일을 할 때 불입한 금액에 따라 차등지급하고 기타 기초연금 등은 설명이 복잡하여 다음 표로 대체한다.

대부분 웬만하면 사치는 못해도 죽을 때까지 기초생활은 가능하다.

은퇴를 전후하여 아이들이 분가하면 좀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 down sizing을 하고 거동이 불편해지면 노인 전용 아파트로 옮겼다가 더 건강이 나빠지면 요양원, 요양병원으로 이주한다. 요양원은 공립과 사립이 있는데 사립은 돈이 월 $2,000 이상 들지만 시설과 대우가 더 좋다.

여기는 퇴역군인 요양원이다. 시설과 운영, 처우가 좋아서 노인들이 서로 교류하며 여생을 편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자선 음악회가 있어서 한번 가 보았는데 간호사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음악을 감상하는 분도 있고 음악에 맞추어 블루스를 추는 분도 계시고 그걸 보고 농담을 하는 분도 계신 것이 분위기가 정말 좋아보였다.


3. 의료

주마다 소득에 따라 좀 다르지만 대부분 의료보험료가 무료다. 대신에 마음대로 병원에 갈 수 없고 아래와 같은 동네 family doctor의 의뢰서가 있어야 상급 병원에 가서 진료 및 치료 수술을 받는다.

무료체계라 좋기만 할 것 같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얻는 게 있으면 포기할 것도 생긴다.

즉 정부예산 부담이 크기에 소득세율이 높고 의료진 부족과 불친절 문제가 있으며 대기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서 ‘캐나다에서는 진료를 기다리다가 낫거나 죽는다 ‘는 자조적인 표현이 있다. 물론 과장이지만 실제로 응급이 아닌 경우 CT 한 번 찍는 데 6개월을 기다리고 무릎 인공 관절 시술에 2년을 기다린다고 한다.

내 직장동료 하나는 기다리다 지쳐서 자비로 미국인지 남미인지에 가서 수술을 받고 오는 것을 봤다.

엠뷸런스 이용은 40만 원 정도로 비싸고 응급실에 가면 선착순이 아니라 응급 정도에 따라 triage라고 하는 순번을 받는다.

치과 안과와 약물은 유료인데 대부분 미국보다는 싸다. 이것은 임의가입 직장 의료보험으로 일정 금액까지 커버된다.

그래서 간단한 감기 몸살 정도는 그냥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 건강보조식품이 다양하다.

의료 수준은 예전에는 좋았는데 지금은 한국보다 못하다는 것이 경험이 있는 여기 교민들의 중론이다.

장애인들에 대한 처우와 복지는 내가 보기엔 거의 완벽하다. 장애수당과 시설, 사회적 처우가 좋다.

학교에서는 통합교육을 하기 때문에 중증 장애아인 경우에는 도우미가 교실 안까지 하루 종일 동행한다. 물론 비용은 국가 부담이다.

내 지인 중 하나는 오로지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조기퇴직을 하고 이민을 왔다고 했다.


4. 죽음

대부분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대도시에서는 화장을 장려하지만 아직도 매장이 대세이고 수목장을 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대개 사망 전에 재산을 다 정리하여 노후자금으로 쓰기 때문에 많은 유산을 남기는 경우는 드물다.

인상적인 것은 공원에 유가족이 기부금으로 벤치 등을 기증하고 거기에 사망자의 기념명패를 새기는 것이다.

누구나 나이가 많이 들면 외모 건강 직업 등 모든 것이 평준화되고 인격차이만 남는다는데, 삶을 돌이켜보면 전 세계인의 생애도 큰 틀에서는 모두 비슷한 것 같다. 울고 웃고 사랑하고 떠나고…

그러나 나뭇잎이 모여 숲을 이루고 물방울이 흘러 바다에 이르듯 크던 작던 그 삶들이 하나하나 이 세상과 역사의 의미가 되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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