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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수 Jun 19. 2023

우정은 국경을 넘고

외국에서 생활을 하다가 보면 내가 나라는 한 인간으로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중의 한 사람으로 보여지고 대접을 받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이미 나를 아시아인 그 중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 같고 나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그들이 한국인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형성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인도인에게 한 번 사기를 당하면 '인도사람들은 거짓말쟁이야. 다음부터 조심해야지. 믿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물론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개념화하고 범주화하는 것이 인류가 시행착오를 줄이고 빠른 의사결정을 하게 된 생존의 비결이긴 하지만 때로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오해를 받거나 분에 넘치게 혜택을 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다행히 요즘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고 특히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면 바로 '안녕하세요? 오빠!'라면서 친근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고 또 주변에는 이것을 이용해서 한식점을 차려서 경제적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다가 보니 한국인은 공동운명체라는 은근한 애국심이 생기고, 나 역시 대표 한국인으로서 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웃으면서 인사를 하는 습관을 들이고 (이게 말은 쉽지 반사적으로 나올 때까지 습관화하기에는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길을 가다가도 '무슨 좋은 일 할 건수가 있을까' 눈을 부라리고 살펴보다가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서 문도 잡아주고, 길 가에 서 있는 사람이나 차가 길을 건널 수 있도록 기다리고 양보하기도 하고, 낙엽이 떨어지면 바로바로 비로 쓸어내고, 눈이 내리면 삽을 들고 후다닥 얼른 치운 후 친절하게 이웃집까지 도와주고, 넘어진 사람이 있으면 다가가서 "Are you Ok?"라는 멘트를 다정하게 날려주고, 무거운 물건을 들고 가는 사람이 있으면 얼른 가서 같이 들어주는 등 엄청 신경 쓴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이 음흉한 '저의'를 미처 간파하지 못하고 내가, 아니 한국 사람이 엄청 친절하고 친근하고 착한 사람들인 줄 '착각'한다.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국경을 넘어서는 우정이 싹트기도 한다.

우선 내 주변 이웃들은 내가 '괜찮은 한국인'인 줄 알고 있다. 일단 성공이다.

그리고 일터에서도 내가 '믿을만한 성실할 한국인'으로 알고 있다. 최소한 잘리지는 않았으니 또 성공이다.   

그리고 손님들과도 재미있는 인연을 쌓는 경우도 종종 있다.

너무 길게 하면 자기 잘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이미 다했나?) 한 중국인과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다.

한 번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을 록키산맥 주요 코스로 안내하는 일정이 잡혔다. 밴프와 레이크 루이스, 제스퍼를 왕복하는 전형적인 3박 4일 코스다.

그런데 7월 산중에 갑자기 폭설이 내려서 길이 뚫릴 때까지 6시간 동안 우리 일행은 버스 안에서 갇혀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비록 하늘과 날씨 탓이니 여행사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그래도 일정을 망치고 지루한 손님들이 짜증을 낼 수도 있는 상황이라 나로서는 손님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까 봐 내내 전전긍긍이었다. 다행히도 속 넓은 중국 손님들은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어떻게 하겠냐'며 좁은 버스 안에서 그 긴 시간동안 즐겁게 잘 놀았다. 

우스개 농담을 하기도 하고 갑자기 중국 전통 창을 불러 사람들의 박장대소를 이끌어 내는 중년의 아저씨도 있었고, 조금씩 배가 고파지자 아줌마들의 가방 속에서는 아침에 호텔 식당에서 챙겨 온 간식들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급기야 나중에는 한 우슈 사범님이 나에게 우슈 동작을 가르쳐주는 일도 벌어지고 간단한 중국어와 중국문화 심지어 愚公移山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중국 고사성어를 주제로 배경 이야기까지 나누고 아리랑을 부르며 눈물까지 글썽이는 버스 안 장기자랑 야유회가 벌어졌다.

덕분에 그 지루할 뻔했던 하루가 잘 흘러가고 위기탈출에서 오히려 서로 이해하고 친해지는 전화위복의 기회까지 가지며 모든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연락처를 나누며 나중에 다시 만나자고 기약없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진심과 선의는 국경과 인종과 나이와 성별을 넘어서서 서로 통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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