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
거실 장식장 위에 놓여 있는 여러 그림과 사진이 보인다
사진과 그림 속에 주인공은 가족이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사진은
남편과 큰 아이 아들이 함께 높은 장의자에 앉아 있는 사진이다
종아리 위로 두 남자의 무릎이 가지런히 모아져 있다
손을 배 위에 얹고
두 사람의 손에는 작으나 정감 어린 한 송이 꽃이 들려 있다
두 사람 다 베이직 색 톤 슈트를 입고 있다
아빠가 아들 귀를 잡아당기며
짓궂게 웃고
아들은 아빠의 손에 귀를 잡히고도 해맑게 웃는다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다
가장 기쁨을 주는 사진이다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두 남자의 표정이 아주 행복해 보인다
부자는 늘 친구처럼 스스럼이 없고 다정하다
새벽마다 거실 좌탁 앞에 앉는다
좌탁에는 어제 읽다 만 책과
노트북과
원서 몇 권과
펜과
수첩과
a4 이면지 몇 장이 놓여 있다
물 한 잔을 마시고
일상으로 먹어야 하는 약을
생존을 위한 약을 11알을 먹는다
그리곤 다시 건강 유지 약을 10알 먹는다
21알의 약을 입에 털어놓고는
늘 같은 마음으로
좌탁 앞에 앉아
사도신경을 불러낸다
지키소서
인도하소서
동행하소서
늘 같은 기도이나
또 늘 같은 간절함이 들어 있다
다음
아니 오늘은 잡은 책이
톨스토이의 세 죽음이다
8시까지 책을 읽다가
준비하고 나가자 일정을 가늠한다
동선을 생각하고
시간을 생각하고
이동 거리를 생각한 하루 일정 결정이다
오래전부터 깊이깊이
참 기독교인으로 살고자 한다
거짓이 아닌 참으로
오로지 당신과의 관계임을 굳게 믿기에
다른 여타 한 겉치레 빈 것 허상에
의미를 두지 않는
오직 참
핑계 변명 구실 인사치레가 아닌
참
그것에 의미를 두고 산다
요사이 더욱 이 참이 깊게 가슴에
각인됨은
톨스토이가 주는 성찰적 글에 심취해서일 것이라 생각한다
머리 왼쪽이 좀 움찔거린다
징조
ㅎ
그다지 건강 염려증은 없다
자연스레 받아들이자 한다
모든 것을
순리로
새벽
모든 잠든 어둠 속에 거실 불이 더욱 환하다
빈말
겉치레
인사치레
헛 말
그런 것을 다 초월해 온 지 꽤 오래되었다
주제 사라마구가
예수복음
에서 말한
그 인식에 깊이 공감했고 가슴에 담았다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끝나지 않고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으니
모든 시작은 끝남에서 나온다
오늘 사라마구의 이 한 구절이 주는 깊음이
왜 이리 아픈지 모르겠다
글은 늘 마음이다
글 한 줄의 글이 바로 마음 진실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 아마 한 줄의 글을 새기는 지도 모른다
이 새벽에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