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chelle Lyu Apr 17. 2020

한 세대 이상을 지나서야 비로소

그 마음을

엄마는 막내의 발령을 못 보고 세상을 뜨셨다
한 세대 30년도 훨씬 더 전이다

엄마와 막내딸은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후 서로 마음으로 의지하며 살았다

두 세대를 조금 더 살아가는 엄마와
한 세대의 삶을 살고 있는 막내는 둥지 잃은 새들처럼 오로지 서로가 서로를 느끼며 살았다

엄마는 막내의 일거수일투족이 되어 온 마음을 막내에게 다 바쳐 사셨다
철부지 막내는 그저 엄마가 해주는 모든 것을 당연히 받으며 사는 아주 여린 미숙아였다

합격
정부기관 합격 후
면접 보러 가는 날 엄마는 온 정성을 다해 막내를 챙겼다
앞뒤로 살피고 현관까지 따라 나오시고는

잘해라

한 마디를 하시고는 정거장을 향해 내려가는 막내를 내내 지켜보셨다
그렇게 지켜보는 엄마를 뒤로 하고
딴에는 아주 잘 다 준비했고
자신감 있게 집을 나섰고
면접 장소를 향해 지하철을 타려고
성내 정거장에서 내리며
그만 사람에 밀리고 밀려
구두 샌들 끈이 끊어졌다
순간 훅 아 면접에서 잘 안 되나 보다라는 불길한 생각으로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신발끈이 떨어진 구두 한 짝을 들고 공중전화부스를 찾아 집에 전화를 했다
마치 대기라도 하고 계셨던 듯

엄마 신발끈이 끊어졌어
다른 구두 좀

부리나케 달려온 엄마가 한 손에 구두를 들고 택시에서 내리셨다
엄마의 얼굴은 긴장하셨는지 붉게 상기되었고 열이 나는 듯했다
구두를 건네며

빨리 갈아 신어라

다급한 한 마디에 막내는 대답도 없이 구두를 갈아 신고 승강장을 향해 계단을 올랐다


비가 내린다
비를 막으려고 재킷을 머리 위로 올렸다
막내는 2020년 4월 17일 새벽 기도가 하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아주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기도를 하려고 두 손을 마주 잡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엄마 생각이 났다
내내 내내 계속
마음이 아팠다
시렸고 저리고 저몄다
이제서야 엄마의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아주 조금
상기된 붉은 얼굴로 얼른 갈아 신어라 늦지 않겠니 하셨던 엄마의 마음
정거장을 향해 가는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셨던 엄마의 마음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엄마 세상 뜨시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엄마의 정성 어린 사랑 때문인지
엄마의 한결같은 염원의 마음 때문인지
신발끈이 끊어진 어려움 속에서도 합격을 했다
합격 후
발령을 기다리던 늦가을 어느 날
엄마는 단 한 마디도 하시지 못하고 불의의 사고로 이승을 하직하셨다
말 한마디 없이
한 번의 눈짓도 바라봄도 없이
허망하게
속절없이
엄마에게서 마지막 말 한마디도 듣지 못한 막내는 한이 되어 늘 가슴을 저몄다
울고 울었다

막내는 자녀들에게 엄마가 막내에게 해준 것처럼
꼭 그렇게 마음 다해 자녀들을 가슴으로 품으며 살고 있다


축복의 비가 내린다
첫걸음
아주 오래 돌고 돌아서 온 사회 세상 첫걸음이다
오래 시간이 지났다
유학에서 돌아와서도 또 시간이 지났다
결국 꼭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차선으로
어쩜 부모로부터 선택을 강요당해서였는지도 모르는
차선으로 선택한 일에서
필기 통과
면접 불합격을 두 번이나 지나고 나서

다시
필기 면접 최종 통과 연수 지나서도 또 시간이 지났다
기다리게 했다
시간은 그리 속절없이 길게 오래오래 돌고 돌고 돌아오게 했다
36해를

뜻이 있겠지
이제 그 믿음을 더욱 굳게 생각한다

God Bless You!!!


막내는 엄마 돌아가신 후
발령을 받았고 첫 월급을 탔다
빨간 내의 한 벌을 샀다
돌아가신 엄마를 위해
그리곤 집 옥상에 올라가 내의 한 벌을 태워 하늘로 올렸다
파란 연기가 하늘을 향해 올랐다

엄마 편히 계세요
막내 잘 살게요

첫걸음을 떼는
사회로 나가는
세상을 향하는
큰 아이를 아들을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웅했다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를 타며
큰 아이 아들이 말했다

다녀올게요
그래 잘하고

한 세대 이상을 거슬러 올라간 엄마의 말이었다
한 세대 이상을 지난 뒤 막내의 큰 아이가 하는 대답이었다  

언제나 언제나 너를 응원한단다...

엄마
죄송했어요
감사했어요
너무 그리워 가슴이 아파요
엄마
편안하세요
이제서야 엄마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아요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19의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