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비타민제도 다른 영양제와 마찬가지로 섭취의 필요성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이 있습니다. LA와 하와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연구 대상자 4명 중 3명은 음식만으로 충분했고 종합 비타민제가 도움이 되는 비율은 4명 중 1명이었습니다(Am J of Clin Nutr, 2007). 종합 비타민제는 부족한 영양소의 비율을 평균 8% 포인트 정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음식으로 부족한 비타민 E와 칼륨, 칼슘은 종합 비타민제가 도움이 되지만, 비타민 A와 철은 이미 음식으로 많이 섭취하고 있어 종합 비타민제를 섭취할 경우 10~15%에서 과량 섭취될 우려가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베타카로틴이 폐암 발생률을 높인다?
하지만 종합 비타민제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며 충격적인 연구 결과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영양제 무용론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논문이기도 합니다. 첫째, 2만9천여 명의 50세 이상 남성 흡연자를 대상으로 5~8년 동안 진행한, 핀란드 국립보건원을 주축으로 구성된 다국적 연구 기관의 연구입니다. 놀랍게도 종합 비타민제의 베타카로틴을 매일 20mg씩 섭취했더니 위약을 준 그룹에 비해 폐암 발생률이 오히려 18% 높았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핀란드 쇼크란 이름으로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당시까진 베타카로틴이 폐암 등 암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구에 여러가지 문제 발견!
그러나 이 연구 결과는 실험에 사용된 베타카로틴의 투여량이 비현실적으로 높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매일 20mg씩 투여했는데 이 용량은 보통 시판 중인 종합 비타민제 속에 포함된 양보다 10배나 많기 때문입니다. 당시 실험에 사용된 베타카로틴이 합성이란 점도 문제입니다. 베타카로틴은 합성인가 천연인가에 따라 화학구조식은 같지만 입체 모양을 의미하는 이성질체가 달라집니다. 합성 베타카로틴은 트랜스형이지만 천연 베타카로틴은 20~50%가 시스형으로 이뤄집니다. 만일 당근이나 두나리엘라 등에서 추출한 천연 베타카로틴 제품이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입니다.
종합 비타민제를 섭취하면 사망률이 높아진다?
두 번째 연구 결과는 2007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나왔습니다. 코펜하겐대학교 연구진이 당시까지 발표된 68편의 종합 비타민제 관련 논문을 메타분석한 결과 비타민 C와 셀레늄은 사망률을 높이지도 낮추지도 않았지만 베타카로틴은 7%, 비타민 A는 16%, 비타민 E는 4% 사망률을 높였습니다. 언론에서는 이 소식을 코펜하겐 쇼크라 부르며 종합 비타민제 섭취로 사망률이 높아진다고 크게 보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여러 문제 발견!
그런데 이 결과는 새로 연구를 수행한 것이 아니라 이미 발표된 다른 연구 결과들을 모아 통계적으로 재분석하는 메타분석의 단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선 제품의 질적 차이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합성 비타민 A나 합성 베타카로틴이 과량 들어간 질 낮은 제품에서 나쁜 결과가 나올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또한 연구 대상자에 암이나 심장병 등 중병을 앓고 있는 고령의 참여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의 사망 여부에는 종합 비타민제보다 약물이나 수술 등 병의원에서 받은 치료가 훨씬 중요하게 관여한 것이 분명한데도 종합 비타민제 섭취 여부만으로 사망률 증감을 비교했습니다. 게다가 연구 기간에 타살이나 자살에 의해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처럼 영양제 섭취 결과와 무관한 사망까지 포함해 사망률을 산출했습니다. 연구 대상의 나이 차도 18세에서 103세까지 너무 컸습니다. 18세와 103세의 건강 상태는 너무나 다른데 사망률이란 동일한 결과로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투여 기간과 용량도 편차가 너무 컸습니다. 한 번 투여하고 3개월 관찰한 논문도 있고 6년 투여하고 14년 관찰한 논문도 있습니다.
이렇게 연구진 입맛대로 통계를 돌렸는데도 최초 분석에서 비타민 C와 셀레늄은 사망률을 10% 이상 낮추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연구진은 자의적으로 21개의 논문을 뺀 47개 논문만 가지고 다시 통계를 돌렸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코펜하겐 쇼크입니다.
영양제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
영양제에 대한 편견을 가진
일부 학자들의 태도가 우려됩니다
저는 영양제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일부 학자들이 언론의 센세이셔널리즘에 힘입어 주목받으려는 태도를 우려합니다. 코펜하겐 연구는 원래 815편의 논문을 대상으로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68편을 추려냈고 여기서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다시 21편을 뺐습니다. 연구진이 편견이 개입됐다며 배제한 21편의 논문을 대상으로 다시 분석한 결과 비타민을 섭취한 그룹에서 사망률은 9% 줄었습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하병근 교수는 “코펜하겐 연구는 연구자의 편견이 심해 의학이 가야 할 정도를 벗어났다”고 비판했습니다. 저명한 영양역학자인 하버드대학교 메이 스탬퍼(Meir Stampfer) 교수도 “코펜하겐 연구는 적절한 결론을 끌어내기엔 지나치게 이질적인 논문들을 대상으로 했다”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영양제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오늘날 비타민제에 비판적인 연구 그룹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법이 코펜하겐 연구와 같은 메타분석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발표한 논문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메타분석의 큰 단점 중 하나가 ‘waste in waste’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대로 번역하면 ‘쓰레기 속의 쓰레기’라는 뜻입니다. 잘못 디자인된 연구들을 짜깁기 식으로 모아서 메타분석을 하면 잘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제대로 된 메타분석을 하려면 영양제의 질과 용량이 비슷해야 하고 연구 대상의 건강 상태나 연령 등 연구 조건도 비슷한 범위를 정해서 분석해야 합니다. 결국 분석 대상으로 어떤 논문들을 고르는지가 메타분석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연구자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유리한 논문들만 골라내는 편견이 은연 중 개입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양에 대해 잘 모르는 의사도 많습니다
일부 의학계의 편견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는 영양에 대해 잘 모르는 의사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의과대학 교육 과정에서 영양학 커리큘럼은 매우 부실하며 의대생들은 영양을 제대로 배우지 않습니다. 제가 의과대학을 다닐 때도 제대로 된 영양학은 1주일 정도 배웠고 그나마 1학점이었습니다. 많은 의대생들이 영양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건강은 의사가 처방하는 약물이나 수술만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영양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무시하는 건 의사로서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연구 결과에 일희일비할 필요 없는 이유
종합 비타민제는 본질상 약물이 아닌 식품이므로 이와 관련한 사망률이나 암 발생률은 앞으로도 계속 들쭉날쭉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결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질병이나 사망이 아니라 오히려 기능 향상에 주목합니다. 건강한 사람을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는 개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알기 쉽습니다. 싱싱한 채소와 과일을 잘 챙겨 먹고 나면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을 몸으로 느낍니다. 반대로 부실하게 끼니를 때우면 피곤하고 찌뿌듯합니다. 이렇게 누구나 상식적으로 공감하는 체험에 정답이 있습니다.
체험을 증명해야 한다?
수만 명을 대상으로 수년 이상 관찰해서 무슨 병이 생기고 안 생기고를 따지는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강박적인 증거 중심 의학의 허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매사 논문으로 검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체험을 어떻게 증명할 건가요? 또 증명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수학에도 증명할 필요가 없는 공리가 있습니다. 예컨대 ‘평행선은 공간에서 절대로 서로 만나지 않는다’와 같은 것입니다.
영양제로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한다면...
저는 영양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영양제를 통해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면 어떤 형태로든 굶거나 부실한 끼니를 먹을 때보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 영양소의 분자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을 모두 밝혀낼 필요는 없습니다. 혈액검사로 결과가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능의 변화는 혈액검사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느끼는 것입니다. 수십 년 후 사망률 저하를 지금 당장 입증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한 끼 식사를 잘 챙겨 먹고 나서 여러분이 느끼는 상쾌한 기분에 정답이 있습니다. 수억 명의 인류가 매일 종합 비타민제를 섭취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글쓴이 서울대 예방의학박사 여에스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