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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고푸른 May 31. 2021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날들. 86

국밥 좋아하세요?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치솟는 날이었어

그래서 네게 전화를 했는데

밥이나 먹고 가라는 너의 말에 마음이 녹았어

그날의 나는 배가 고팠던 게 아니라 마음이 고팠던 거야

마음이 고플땐 라면 같은 먹지 말고 와라.. 같이 밥이나 먹자..

나는 국밥충이다 국밥을 너무 좋아한다

용두동 어머니 대성집의 맑은 해장국을, 종로 YMCA 옆골목 시골집의 경상도식 선지 해장국을, 

용산전자상가 넘어가는 고가 다리 밑 문배동 육개장을, 신설동 간판 없는 순댓국집의 걸쭉한 돼지국밥을, 

을지로에서 명동으로 옮겨버려 슬픈 하동관의 곰탕을, 안암동 고려대 앞 착착 감기는 동우 설렁탕을 좋아한다


집에서 끓여 먹는 국도 좋다. 

양지와 얼갈이를 넣고 된장을 풀어 푹 끓인 얼갈이 쇠고깃국, 푹 끓인 사태를 납작하게 썰어 무와 대파를 넣어 끓인 쇠고기 뭇국 

잡뼈와 목뼈를 넣고 푹 끓여 우거지에 된장을 풀어 낸 우거지 국, 새우젓과 고춧가루로 간을 한 콩나물 국, 

바지락조개와 아욱을 넣고 끓인 아욱된장국, 참기름에 미역을 달달 볶아 오래 푹 끓인 미역국.. 


갓 지어 뜨끈뜨끈한 밥에 오래 끓여 흐물흐물해진 국물을 한 숟갈 후루룩 흡입하면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와 슬픔이 녹아내린다. 

얽힌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의도하지 않게 받은 오해로 인한 억울함이 스르르 풀어진다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배가 고프지 않은데 허기가 지는 날이 있다

아무리 좋아하는 국밥이지만, 뜨끈한 국물로도 도저히 허기가 채워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도리가 없다 고향에 가야 한다. 

오래오래 끓이고 우려내어 이제는 흐물흐물해져 씹을 것도 없이 넘어가는 국밥처럼, 

만나서 별로 할 이야기도 없이 그저 술잔만 기울이다 돌아오더라도 마음이 뜨끈하게 채워지는 친구들이.. 

허기진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국밥 같은 놈들이 있으니까...


매주 월~ 금요일 그림과 글을 올리고 토, 일요일과 공휴일은 쉽니다

성실하게 주 5일 근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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