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공평한가요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8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를 간병하며 속마음을 감추고 살아온 20여 년.
이유 없이 40대 중반에 뒤늦은 사춘기가 옵니다.
그래서 다시 열 살 꼬마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몇십 년이나 지났지만 어린 나를 만나, 그때 그 마음을 글로 어루만져줍니다.
<짧은 상고머리의 핵인싸 여고생(2)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7>에 이어...
지금까지 친구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과격한 음악으로, 글쓰기로, 그림으로, 야자 땡땡이로, 탈색으로 내 수준의 일탈을 살짝 맛보았다.
사실 부당함에 약간의 반항을 했을 뿐 지속적으로 일탈할 배짱도 없었다.
엄마가 싫어하실테니까...
어쨌든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고3 = 대학
천만다행히도 나의 반골 성향을 좋아하는 담임 선생님을 만나 고3 내내 힐링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생물 과목을 담당하셨던 담임 선생님은 정말 특이한 분이셨다.
한 달에 한 번씩 생물 시간을 장기 자랑으로 바꿔놓으셨다.
그래서 고3인 우리는 쪽지 시험 대신 십팔번 노래를 준비해야 했다.
이 시간만큼은 성적이 낮아서 창피한 게 아니라 노래나 춤을 못 춰서 부끄러웠다.
"공부만 잘하면 뭐해, 잘 놀면서 공부도 잘해야 멋지다!"
그래서 노래 연습차 고3 신분으로 노래방도 자주 갔다.
숙제하듯 갔으나 덕분에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역시 커트 머리 때문에 오해도 많이 샀다.
팔짱 끼는 걸 좋아했던 나는 걸을 때마다 친구들과 늘 팔짱을 꼈다.
뒤에서 젊은 연인이 수군거렸다.
"어머, 요즘 고등학생들은 대놓고 연애하네!"
"음.. 설마.. 다 여학생이겠지."
"그런가? 확인해볼까?"
뒤따라오던 연인이 갑자기 앞으로 치고 나가며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거봐, 남자 맞잖아!"
황당한 내 얼굴을 보며 함께 걷던 친구들은 배꼽빠지게 웃어댔다.
지지배들...
사실 당시 성적 순으로 반장을 시켰던 고3 문화에 나는 명함도 못 내밀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 보시기에 내가 잘 놀 것 같아 보였는지 날 반장으로 세우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머리 스타일과 컬러가 한몫...)
선생님은 내 등수를 보시곤 (의도적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나까지 뚝 잘라 후보로 세웠다.
인기 투표를 하신다면야...
짧은 노란 앞머리 레이업슛 소녀는 또 반장이 되었다.
우리 반과는 다르게 다른 반은 모두 반석차 1등이 반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담임 선생님과 코드가 맞았던 나는 노래방 분위기를 고스란히 학급에서도 연출했다.
사이키는 없었으나 교실 형광등을 조절하면서 신명을 돋우었다.
이 참에 집 안의 스트레스를 불태울 요량으로 진성으로 목청높여 노래를 불렀다.
특이한 담임 선생님은, 뭔지 모를 우울함을 숨기고 노는 데 진심인 특이한 반장을 아끼셨다.
내가 반장이어야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다른 반장은 신고했을지도...)
가끔은 특별 지시도 있었다.
요즘 같은 때에는 자칫 징계감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수업을 마치고 다른 친구들이 자율 학습을 할 때 선생님은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반장, 애들 모아."
나는 바로 눈치를 채고 친한 친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프라이드나 티코였던 것 같다.
허름한 담임 선생님 차를 타고 우리 너댓명은 미사리 같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곳으로 떠났다.
자연과 함께 자유를 즐기는 그 시간 자체가 힐링이었다.
고3 학생들이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땡땡이 치고 담임 선생님과 놀러가다니 상상할 수 있겠는가!
(아마 엄마도 아직까지 모르실테지만, 지금 중학생을 키우는 내가 봐도 이건 기절초풍할 일이다.)
선생님은 맘껏 뛰어놀라고 하셨고, 소리도 질러보라고 하셨다.
맛난 멸치국수도 사주셨다.
할머니를 간병하며 놀러간 적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정말 멋진 일탈이자 설레는 휴식이었다.
공부 스트레스를 풀어주려고 이러시는 데 공부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감사함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미적, 벡터 등 수학은 어려워져만 갔다.
뒤늦게 학원에 가볼까 싶었으나, 1년도 남지 않은 제한적인 시간에 시행착오를 겪을 자신도 없었다.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수학의 정석을 처음부터 혼자 풀어보기로 결심했다.
집앞 독서실에 등록했다.
일반정석(요즘의 수상하 정도일 것이다), 수학1, 수학2를 공책에 차례대로 빠짐없이 정리했다.
분명 재미없을 것을 예상하여 일부러 알록달록 색깔볼펜을 사서 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꾸며갔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도 많았다.
너무 방대하고 지겨운 나와의 싸움이었으니까.
그래도 내가 뭐 하는 게 있냐며, 이거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해야 담임 선생님께 덜 민망하지 싶었다.
어느 순간, 하던 게 아까워서 지속하는 나를 발견했다.
슬쩍 목표도 생겼다.
이걸로 나중에 과외를 해야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자 단순 공부가 아니라 돈버는 일처럼 느껴져서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아직도 보관하는 당시 수학 노트 : 알록달록 유치찬란
운좋게 다른 과목도 길이 열렸다.
고3이라 그런지 학원에 과외에 과중한 공부로 학교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친구들이 점차 많아졌다.
어떤 수업 때는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기적처럼 내 앞 친구들이 책상과 일체가 되어 선생님과 나만 1:1 과외하듯 수업을 했다.
그리고 과목마다 그런 시간이 꽤 많았다.
내가 중요시 하는 가성비 최고인 개인맞춤 학습 시간들이었다.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고 양도 늘려 나갔다.
어느 순간 수2까지 직접 풀어보고 노트 정리한 게 마무리되자 정말 당장이라도 과외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칸트 할머니는 고3때도 어김없이 시험 당일날 새벽 3시면 칼같이 깨워주셨고 벼락치기 성공률도 꽤 높았다.
친구들의 상담도 수능을 열흘 앞둔 날까지 지속되었으나 나도 수다떠는 기회가 되어 윈윈이라 생각했다.
담임 선생님 덕분에, 할머니 덕분에, 친구들 덕분에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은 고3이 무르익을 무렵 입시의 최고봉인 수능이 다가왔다.
그 해 불수능이었다.
언어 영역부터 난조였다.
종쳤을 때 마킹을 다 못한 상태여서 막판에는 손이 떨려 길쭉한 동그라미 대신 찍찍 긋기만 했다.
겨우 제출하고 수리영역 보기까지 멍한 상태였다.
어떻게 마쳤는지도 모른채 수능이 끝났다.
집에 와서 내 방에 들어가자마자 할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참았던 눈물이 왈칵 터져나왔다.
긴장하느라 종일 너무 힘들었다.
아니 이날까지 그동안 함께 달려온 할머니와의 시간들이 떠올라 더 북받쳤다.
할머니를 부둥켜 안고 둘이 꺽꺽대며 울었다.
다음날 학교 분위기는 초상집이었다.
늘 최상위권을 유지했던 친구들이 20점 이상씩 떨어져 가출한 친구도 있었다.
오히려 학원에서 트레이닝을 받지 못한 나같은 외인부대는 신기하게도 평소와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엥? 그럼 상대적 평가니까 등수가 올라가는 거?!
정서 관리를 해주시고 여러 모로 못난 반장을 아껴주신 선생님이 너무 고마워서 기대에 부응하고자 잘 해보려고 노력한 게 일단 헛되지 않아 기뻤다.
그런데 선생님은 더 큰 베팅을 노리셨다.
평소 내 성적으로 닿기 힘든 대학에 지원해보라고 하셨다.
담임 선생님의 승부사 기질을 알면서도 믿어주심에 나도 베팅을 했다.
그 해 그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수능 말고도 무슨 시험이 무척 많았다.
그냥 잡념을 내려놓고 꾸역꾸역 쳐냈다.
그동안 과하게 시달리지 않았던 나는 막판스퍼트를 낼 체력이 남아 있었나보다.
면접까지 마치고 홀가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아빠랑 머리 식히려고 부산까지 여행하던 중 기쁨에 들뜬 목소리의 엄마 전화를 받았다.
합격이다.
세상은 공평한 것일까.
그간 꾹꾹 눌러왔던 모든 욕구에 대해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딱 10년 전 내 인생 왜이러냐고 한탄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10년 동안 할머니 덕분에 오히려 더 많은 경험과 더 많은 친구를 만나 행복한 학교 생활을 누렸다.
사실 희생, 헌신 뭐 이런 단어도 이순간 적합하지 않다.
드린 것 보다 받은 게 더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다른 친구들이 쉽게 가지지 못할 할머니와의 세대공감을 통한 유대감을 선물처럼 받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지난 10년 간의 희노애락은 (요행으로 들어간) 전국 수재를 모아놓은 대학에서 더 진하게 드러나 또 여러 에피소드와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냈다.
이 롤러코스터를 맛볼 준비가 되었는가.
그럼 지금부터 2막을 연다.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9>에 계속...
지금까지 <1부. 할머니와 나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1 ~ #8>를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 2부. 아빠와 나 : 불쑥 찾아온 사십춘기 그리고 이른 회고 #9 ~ >를 연재할 예정이니 함께 공감하며 편안하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