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열심히 달려왔던 지난날이 억울한 성냥팔이 청년

by 메신저클레어

엄마가 청소년 때부터 성경 구절처럼 외웠던 시가 하나 있어.

그렇다고 내가 문학소녀는 아니었어.

그저 일이 잘 안 풀릴 때 자못 마음의 안정을 취하기에 좋아 읊다 보니 저절로 머릿속에 박힌 것 같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알렉산드르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픈 날은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아직은 어려 그런 경우를 겪어보지 못했으리라 싶지만,

살다 보면 열심히 노력한 대가는커녕 오히려 그 노력마저 억울할 정도로 실망하는 순간이 찾아올 수도 있어.

특히 어릴 적부터 열정 부모를 만나 너도나도 조기교육으로 점철된 리즈시절을 보낸 요즘 아동 청소년 혹은 청년들. (70년대생 엄마가 클 때보다 80~90년대 태어난 청년들의 경우 확실히 어릴 때부터 달려온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

어쨌든 시대적 배경과 나이를 막론하고 노력에 대한 결과가 생각보다 너무 적다면 그동안 들인 노력뿐만 아니라 왜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 하고 그 때의 결심마저 후회되기도 하지.


더 노력한 만큼 실망도 큰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엄마의 경우 푸시킨의 시를 되뇌며 나를 속인 삶을 미워하지 않는 연습, 대신 즐거운 미래를 상상하는 연습, 지금 우울함을 날려버리는 연습, 그리고 다 지나가고 나면 오히려 이 순간이 그리울 정도로 나는 잘 되어있을 것이라고 초긍정 마인드로 내일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 것 같아.


물론 그 순간 이렇게 마음먹기는 정말 어려워.

그러나 쉽지 않아도 이것도 훈련이고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놀랍게도 과거의 실패가 지금의 반면교사가 되어 현재의 나를 도와주는 경우도 참 많다는 경험적인 간증이 쌓이더라.

사실이야.

푸시킨 시도 참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고.

그래서 성장하면서 이런 억울한 상황을 겪을지도 모르는 마음 약한 아이들, 청소년 혹은 청년들에게 미리 예방접종을 해주고 싶었어.


몇 달 전 안데르센 동화를 리메이크하는 공모전을 브런치에서 진행했단다.

엄마는 이 생각을 토대로 <성냥팔이 소녀> 원작을 리메이크해보았어.

요즘 사회구조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많은 이유로 청년들이 실망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접할 때마다 나는 그때 어떻게 견뎠을까 떠올리게 되더라고.

그리고 푸시킨의 시와 성냥팔이 소녀를 접목하여 힐링이 되는 글을 남겨주고 싶었어.


또한 이제 어른이 된 우리 기성 세대들이 너희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너무 추운데 그렇게 오래 있지 말고 다시 일어나서 힘내 보자고 도닥여주고 싶었단다.

마음만이라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으로 쓴 리메이크 소설이야.


그 어떤 암울한 상황에 처해도 더 좋은 일이 있을거란 주문을 걸어 힘차게 박차고 일어나는 연습, 같이 해보자.

- 늘 우리 젊은 친구들을 응원하는 엄마가.






‘요즘 누가 쓴다고 성냥을 팔아 오래.. 쓰읍.’


12월의 마지막 날 남들은 연인과 보신각 종소리 들으러 간다느니 가족과 새해맞이 파티를 한다느니 다들 분주하던데, 나만 말도 안 되는 물건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겨우 들어간 6개월 계약직이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내 사수 김대리가 영업력 트레이닝이라며 가끔 이런 뚱딴지같은 일을 시킬 때는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다. 오래 묵은 팔각 성냥을 서른 통 던져주며 이걸 다 팔아야 시무식 때 팀장님께 계약 연장에 대해 좋게 얘기해주겠단다. 그 빙글거리는 얼굴이 떠오르자 또 욱하는 마음에 사표를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정규직 가능성이 있으니 오래 다녀보겠다고 엄마와 한 약속이 떠올라 다시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재촉한다.


그때 저 멀리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순간 등골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무언가를 느꼈다. 세상 모든 행복을 다 가진듯한 표정으로 직장 동료처럼 보이는 무리들과 함께 지나가는 저 친구. 중고등학생 때 같이 학원 다녔던 그 친구가 분명하다. 매일 내 옆에서 게임하자고 어찌나 꼬드기던지, 정말 허벅지 찌르면서 참았다. 게임의 유혹을 눌렀던 만큼 이 친구보다 성적이 항상 높았고 결국 대학 성과도 좋았다. 그런데 이게 뭔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저 친구는 대학생 때 이미 엄청나게 유명한 게임회사에 입사해서 지금 팀장이고 연봉도 억대라고 하더라. 꾀죄죄한 나를 알아볼까 봐 그랬던 걸까. 황급히 반대방향으로 휙 돌아섰다. 사실 그 친구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양손에 성냥갑을 가득 든 상황과 함께 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생각하니 자동적으로 발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나 보다. 그런데 돌리는 발도 얄밉더라. 내가 뭐 어때서...


충분히 멀어졌다 느껴졌을 때 그 발은 속도를 늦추더니 어째 감각을 잃었는지 급하게 피로감을 호소했다. 이렇게 추운 밤길을 돌아다닐 줄 모르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나온 나의 착오다. 무리한 지시를 한 김대리도, 멋지게 변신한 그 친구도, 추위에 약한 나도 다 짜증 나서 영업이고 나발이고 그냥 저 쪽 보이는 벤치에 가서 털썩 앉아버렸다.

고시원에서 지낸 지 벌써 몇 년째인가. 제대로 된 회사에 입사하면 조그마한 오피스텔로 옮기겠노라 엄마를 안심시키며 독립한 지 어언 3년째. 하지만 이번에도 틀린 것 같다. 6개월 채우면 실업급여 받으며 또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고시원으로 돌아가긴 우울하다. 그러나 영하 10도가 넘는 밤에 벤치는 너무 추웠다. 하지만 모두 행복해하는 밝은 카페에 혼자 청승맞게 들어가는 건 왠지 내키지 않는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내 표정 들키는 게 추위보다 더 싫으니까.


양손 그득했던 비닐봉지에서 팔각 성냥 하나를 꺼내 한 개비를 그어 불을 붙였다. 여섯 살 영어유치원 다녔던 때가 떠올랐다. 어릴 적부터 엄마 말씀 잘 듣고 무엇이든 성실하게 해내는 모범생 DNA가 흐르고 있었다. 어린 내 얼굴이 또렷이 보이려고 할 때 불이 꺼졌다. 또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이번에는 대학 때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며 자소서를 썼던 모습이 보였다. 토익 공부도, 학점 관리도 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숨차게 달려왔다. 그런데 아까 길거리에서 마주친 친구 얼굴이 함께 떠올랐다. 나보다 열심히 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더 먼저 안정적인 자리를 잡거나 결혼하고 자산을 만드는 걸 볼 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성실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갑자기 억울하게 다가왔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두 번째 성냥개비 불빛도 사그라들자 갑자기 울컥하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러나 첫 눈물을 닦기도 전에 추스르는 여유마저 잃은 채 점점 어깨가 들썩였다. 소리를 삼킬 힘마저 조절이 되지 않자 이내 꺽꺽거리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다. 창피하지도 않다. 오히려 쉼 없이 달려온 30년을 보상받고 싶다고 눈물로 소리치고 싶었다. 열심히 노력하면 미래가 보장된다던 어른들 말에 이제는 화가 난다. 오열은 그 말만 믿고 에프엠(FM)으로 살아온 나를 책임지라고 터져 나오는 분노의 외침이었다.

결혼도 직장도 모든 미래가 불투명했다. 그래서 어떤 시도든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나의 몸무림은 젊은 세대의 무모하고 겁 없는 에너지 낭비로 보이기 일쑤였다. 하긴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했을 것이다. 내신 시험에서도 1개 틀렸을 때 잘했다는 말보다는 그 한 개의 실수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는지 분석하고 만점을 강요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쉰 적도 없이 늘 노력만 하며 살아온 지금, 내가 얻은 것은 뭐지? 결국 난 커다란 실수 덩어리처럼 취급받는걸?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이제 와서 무책임하게 왜 나를 무능한 사람 취급하지? 미래를 꿈꾸기 힘들게 만들어놓고 왜 기대도 관심도 기회도 주지 않냐고?!'


몇 달 전 내 옆방에서 한 청년이 고독사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취업준비생이었던 그는 늘 말이 없는 모범생이었다. 한동안 표정이 안 좋더니 그만... 그때는 너무 놀라 생각할 여유는커녕, 무서워서 일부러 그 방 앞을 피해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도 나와 같은 막막함과 단절감을 느꼈던 게 아닐까 불현듯 떠올랐다. 한 번쯤 말도 걸고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얘기라도 나눴다면 그 청년은 선택을 달리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갑자기 깊은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도 내 코가 석자였다고 애써 합리화하며 미안한 마음을 삼켰다.


마지막으로 그 청년을 위해 성냥을 그었다. 그 친구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배신감으로 다가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하늘에서라도 이 불빛을 내려다보며 뒤늦은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쪽 마음을 이해하니 이젠 분노를 풀고 편히 쉬라고...

갑자기 성냥갑 안에 들어 있는 수십 개, 수백 개의 성냥개비들이 나와 이 청년같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답답함과 줄곧 혼자일 것만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친구들로 보였다. 콘크리트 바닥에 성냥개비를 높이 쌓아 불을 붙였다. 캠프파이어 모닥불처럼 활활 탔다. 그동안 참 수고했다고 누군가 등을 쓸어주는 따뜻함을 느꼈다. 이 온기가 나처럼 힘들어하는 청년들 모두에게 전해지길 바랬다.


“우리 열심히 살아왔잖아. 암울해도 억울해도 난 버텨 보련다. 대한민국 입시도 버틴 우린데,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함께 조금만 더 해보자.”


Myriams-Fotos@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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