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불경 들으며 자란 엄마가 교회에 간 이유
질풍노도 시기의 중심에 있는 사랑하는 내 사춘기 딸들에게.
요즘 엄마는 성경 구절이 날짜별로 나눠 정리된 <생명의 삶> 10월호를 읽으며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큐티(QT , Quiet Time : 성경을 묵상하는 나만의 시간)를 하고 있단다.
보통 성경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매일 다뤄지는 내용을 삶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게 되거든.
그런데 이번 달 내용이 성경 욥기라, 읽으면 읽을수록 욥이란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함께 우울해지더라고.
인생 살기가 정말 괴롭구나.
그러니 내 원통함을 터뜨리고
쓰라린 내 마음을 토로할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나를 정죄하지 마시고
주께서 무슨 이유로 내게 이러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욥기 10:1~2)
욥은 소위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어.
하지만 악마에 의해 그의 모든 것을 잃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다 잃고 몹쓸 피부병까지 얻게 되어 매일 소망 없이 괴로워해.
그 괴로움의 일부나마 공감될 때 그렇게 힘들 수가 없더라고.
욥의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이면 누구나 괴로운 상황을 겪게 되지.
정말 마음이 힘들어지는 경우가 생기거든.
그럴 때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뾰족한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래도 나만의 해결 방식을 하나 정도 갖는 건 정말 필요한 것 같아.
그래서 오늘은 마음이 힘들 때 극복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엄마의 경험을 얘기해주고 싶어.
요즘 코로나 때문에 매주 다니던 교회에 거의 못 가고 줌으로 가끔 예배를 보고 있지.
너희도 학년 별로 각기 다른 반에 배정되어 너희 수준에 맞는 예배를 드리고 말이지.
그런데 사실 엄마는 태어나서 30년간 불경을 읊으며 자랐단다.
그랬던 엄마가 지금은 교회에 다니잖아.
궁금하지 않니?
우리 막내 J를 낳았을 때 엄마는 대학원 석사 과정을 한 학기 남겨놓고 있었어.
사정상 휴학 없이 바로 논문을 썼더니 몸이 망가지더라.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적인 문제도 발생해서 아빠 벌이만으로 충당이 안되어 애를 갓 낳은 학생의 몸으로 몸조리는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공부와 살림뿐만 아니라 알바까지 했어.
하루 수면시간 3~4시간으로 3살, 젖먹이 아기를 키우며 모든 걸 다 해내려고 온몸을 갈아 넣었단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 건강이 바닥을 치더구나.
욥... 까지는 아니더라도 너무 힘든 하루하루를 경험했던 터라, 요즘 욥의 괴로움을 읽을 때 살짝씩 공감이 되어 그때 그 감정이 되살아나더라고.
도대체 열심히 살아온 내 인생에 왜 이렇게 어려움이 닥쳤을까 억울했고,
내 능력으로 해결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쉽게 회복이 안 되는 데 한계를 느꼈으며,
이 힘든 상황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노라 결심까지 하게 되더라. (심지어 악마와의 딜까지도...)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질 때 엄마가 했던 행동은 정말 다양했어.
매일 베란다에 냉수 떠놓고 천지신명과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 알라신 등 이 세상 모든 신들에게 빌었어.
용하다는 점쟁이도 소개받아 많이 갔단다.
거의 1년이 다 되어 갈 때쯤, 이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지인 한 명이 나에게 건네준 책 한 권.
길지도 않은 작은 수첩 같은 책이었는데, 이렇게 적혀 있었어.
야베스의 기도 (역대상 4:10)
원컨대 주께서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나를 돕는다...?
신이 나를 돕는다고?
복도 주고 근심까지 없애준다고?
조건 없이..?'
누구의 도움을 잘 구하는 편이 아닌 나로서는 잘 와닿지 않았단다.
인생은 언제나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도움을 구하는 의존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내 능력을 쌓는 데 치중해 살아왔던 것 같아.
일이 커질수록 혼자 다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힘든 나를 보며 상대가 걱정할까 봐 웃음으로 포커페이스까지 했지.
그런데 이제 다 내려놓고 주께 기대라는 거야.
기대는 대상이 인간이 아니라 절대신인 거지.
부처님과는 느낌이 조금 다른 걸 처음으로 발견했어.
(엄마가 이해한 바로는) 고통을 벗어나려고 부처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열반 경지에 이르는 불교에서는 나의 끊임없는 수행에 초점이 되었다고 생각했어.
즉, 내가 생각을 바꾸면 되고 내가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거야.
여전히 세상의 중심은 나였어.
수행도 내가 하는 거였으니까.
그래서 괴로움이 커지는 족족 내가 다 받아 짊어지게 되어 나중엔 숨쉬기도 힘들더라.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절대신이고 세상의 중심이며 기도만 하면 그 절대 권력으로 짐을 내려놓게 해 주신다는 거야.
그것도 무상으로 대가 없이!
물론 의심도 상당했지만, 당시 너무 힘들었던 나로서는 자연스레 귀가 솔깃해졌어.
진화론을 바탕으로 세계관이 형성된 나에게 창조론 중심의 가치관으로, 즉 세상의 중심을 '내가 아닌 신으로' 바꾸라고?
사실 쉽지 않았어.
하지만 엄마는 마음이 진짜 힘들어 믿어보기로 했어.
먼저 기대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면 마음의 어려움을 참 많이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어.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걸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은 심적으로는 가까워질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부담을 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대상이 신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지는 것 같아.
그 대상이 늘 변하지 않는 절대신이라면 실망할 일도 줄어들 거야.
너희들이 힘들 때 엄마에게 기댈 수도 있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살아가면서 너희들에게 도움이 못될 수도 있단다.
그래서 엄마 욕심에, 엄마가 채워주지 못하는 많은 부분을 절대신에게 부탁하고 싶어.
즉, 엄마 아빠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 너희들이 직접 절대신에게 구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엄마의 개종이 당시 힘들었던 것들에 대해 잠시 판단 미스였을 수도 있으니 되돌아본 후 지금 후회 안 하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겠네.
맞아, 그때의 선택이 잘못이었다면 교회를 더 이상 다니지 않았겠지.
하지만 놀랍게도 엄마는 더 깊은 신앙으로 자리 잡아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도 받았으며, 4개월의 일대일 동반자 과정과 4개월의 양육자 과정까지 마치고 지금은 새로운 성도들을 양육하는 양육과정을 주도하고 있단다.
우리 딸들도 깊은 신앙으로 자라길 바라지만 너희가 항상 말하지.
"엄마, 종교는 자유니까 우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직접 선택할 테니 지금 강요하지 마세요."
물론 너희에게 선택권을 줄게. (부모의 강요로 엇나가는 친구들도 자주 봤으니까)
우리 엄마도 그러셨어.
심지어 외할머니는 정년퇴직하시고 불교대학까지 마치셨어.
그럼에도 늘 나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지.
"어떤 종교를 갖던 네가 믿는 그 신께 최선을 다해 기도해라.
네가 하나님을 선택했다면 너와 네 가족을 위해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길..."
그래서 엄마는 외할머니를 많이 존경해.
오늘은 조금 길어졌네.
하지만 언젠간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이야.
매사에 최선을 다 하되 너무 힘들 때는 그 짐을 혼자 다 안고 가려고 애쓰지 마.
부모에게 기대고 부모로도 역부족일 때에는 절대 존재, 즉 신에게 값없이 부탁해도 돼.
홀가분하게 비워야 그다음을 생각할 여유가 생긴단다.
그리고 고민만 많이 한다고 다 해결되진 않아.
오히려 어린애처럼 신께 아뢰고 해달라고 조르는 것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는 사실!
사춘기 청소년인 너희가 성인이 되고 중후한 어르신 나이가 되어도 신께 의지하길 권한다.
신앙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것 같아.
이런 마음으로 이제부터 예배를 드려보렴.
조금 달라진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몰라.
아직 그렇게 큰 어려움이 없어 쉽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나 살다 보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 힘든 순간이 올 때에 오늘의 이 말을 떠올려서 부디 마음의 평화를 얻길 바래.
엄마는 늘 너희들의 고요한 행복을 기도한단다.
- 세상의 중심을 바꾸면서부터 말할 수 없는 자유와 해방감을 얻은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