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신저클레어 Jul 04. 2023

과연 서열화가 주는 씁쓸함일까 게으름의 핑계일까

괜히 남 탓하면 기분이 나아지니?

대부분 중고등학교가 기말고사로 숨죽이는 주간이다.

기숙사에 있는 큰 애도 내신 기간만큼은 수면시간이 들쑥날쑥하여 별다른 연락이 없어도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한다.


최근 친한 언니가 기숙사 고등학교에서 시험 기간 동안 서로 친구들을 깨워주지 않는 분위기가 문제래~ 하며 이슈를 던졌다.

우리 아이도 기상음악을 잘 못 듣는 아이라 살짝 걱정되었지만 방 친구들이랑 엄청 친해졌다고 하니 "학교마다 다르겠지 뭐.." 하며 넘겼다.


"엄마.. 저 오늘 시험 30분 전에 사감선생님이 깨워주셔서 일어났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헐, 아무도 안 깨워줬니?"

"완전 손 떨면서 학교 갔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눈물표시가 끝도 없었다.

그러다 이마저 시험 시작과 동시에 멈췄다.

시험 이틀째 벌어진 일이었다.


바로 전날 방 친구들이랑 나가서 눈꽃빙수도 먹고 떡볶이도 함께 먹고서 첫날 시험의 스트레스를 함께 풀었다며 행복해했다.

그 여파가 아이에게만 온 것 같다.

다들 변함없이 자신의 일정에 맞게 기상하고 밥 먹고 시험 보러 학교에 간 듯했으나 우리 아이만 제때 일어나지 못했다.


처음 이 톡을 받았을 때 함께 당황해서 어떻게든 시험시간에 늦지만 않도록 당부했다.

교복 입을 여유도 없었던 아이는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학교까지 냅다 달린 듯했다.

땀범벅에 숨을 고를 여유도 없이 몇몇 아이들의 불량한 교복 상태(?) 때문에 어느 선생님의 폭풍 잔소리를 또 들었다고 한다.


멘털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에서 주요 과목 3개 시험을 마치고 아이는 정신적으로 탈진한 상태였다.

남은 시험을 보기 위해 빨리 정신줄을 잡으라고 말하려는데 내 일에 치여 결국 퇴근 후 아이에게 더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엄마.. 내일 ** 시험을 보는데 교과서를 학교에 놓고 왔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

"... 뭐라고...?!"


공부해야 할 책을 놓고 왔다는 말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는 제시간에 기상하지 못한 아이를 나무라야 했다.

그 전날 스트레스 푼다고 할애한 기나긴 시간을 지적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털 회복을 강조해야 했다.


그런데 모두 잔소리로 들릴까 봐 함구했다.

정답 회신 : 괜찮아! 어제 스트레스 풀었으니 오늘은 책 있는 과목 마무리하고 내일 새벽에 학교 가서 그 과목 벼락치기하면 돼. 어떠한 영향도 받지 말고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침착하게 집중해서 보면 돼~


사실 아침형 룸메이트들이 기상 종을 잘 듣지 못하는 올빼미형 우리 아이를 잘 깨워주는 것 같아 늘 고맙다.

지금은 시험기간이니 자신의 시간표가 분주하여 각자 더 일찍 나왔을 것이다.

반면 잘 깨지도 못 하는 데다 전날 벼락치기를 하여 늦게 잔 아이는 그만 시험에도 못 들어갈 뻔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아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정신이 번뜩 들만한 사건이 생겨야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니까...

다만 이 경험이 찌질한 엄마 머릿속을 잠시 스쳤던 친구 탓으로 옮겨지지 않길, 그래서 다른 악순환으로 빠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이에게 괜히 한 마디 더 건넸다.

"너처럼 아침 기상 잘 못하는 룸메이트 만나면 오늘을 기억하면서 시험 때 네가 꼭 깨워줘~"




오늘 작은 애 중학교 시험감독을 맡았다.

큰 애 일은 어제였지만 생생하게 마음속에서 아직도 요동치니 애보다는 엄마가 더 문제인 것 같다.


시험감독 중에 무심코 고개를 들어 칠판 위를 보고 그만 빵 터졌다.


급훈
어.쩔.티.비


세대가 확실히 다르다.

우리 시대 '기본'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

라테는 말이야, 꼰대 입장에서 볼 때 적어도 급훈에 저런 걸 적으면 안 되지.. 라 하기에 우리 아이들은 이미 많이 자유롭다.


서열화 교육 문화에 이유 불문하고 잘 따르려 했던 우리 세대들은 자녀들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국영수만 잘한다고, 또는 서열화에 앞선다고 모두 잘 사는 게 아니라고 외치는 (우리 작은 애 같은) 어린 친구들도 꽤 많이 늘었고, 실제로 그게 맞다.


어쩔티비, 세상이 뭐라 해도 내가 느끼는 가치는 그게 아닌데 어쩌겠어?!

요즘 MZ세대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바라건대, 우린 달라!라는 이 멋짐을 계속 유지하면서 나 같은 꼰대가 만들어놓은 서열화에 이 아이들은 물들지 않았으면 한다.

쉽지 않겠지만 당장 우리 아이부터 뒤쳐지는 친구의 손을 잡아주며 그들만의 기본을 세워가는 우리 아이들을 기대해 본다.


m.Claire.


sasint@pixabay


이전 07화 고1 첫 중간고사와 아이의 자존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