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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May 24. 2023

고1 첫 중간고사와 아이의 자존감

엄마가 미안해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시험 결과가 중요하다고 그렇게들 말하더라.

묵직한 긴장에 더하여 몇 차례 반복된 기숙사 내 감기로 아이는 시험날까지 열이 났더랬다.


결과는 뭐 뻔했다.

"기말고사 때 만회하면 되지~

아픈 와중에도 안 빠지고 시험 보느라 수고했어!"

그래도 아쉬운 내 감정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번 결과로 시뮬레이션해 본 내신 등급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아이는 전사고(전국형 자사고)에 입학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마음에 굳이 스크래치를 내고 싶지 않아 더 쿨한 척하는 내 모습을 보며 자문한다.

'정말 괜찮아?'




요즘 대치동 모 수학학원 재원생을 대상으로 자존감 코칭을 하는 중이다.

원래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내 아이에게는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지만 다른 청소년들에게는 그렇게 응원을 잘해준다.

아마 내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말이라 미안한 마음을 투영했는지도...


아이들의 자기 존재감을 높여주는 코칭이다.

강남 한복판에 살면서 너도나도 빠른 선행과 매일 반복되는 서열화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시간이다.


그러나 (전화도 거의 없는) 멀리 있는 내 아이와는 카톡 소통이 전부다.

최근 연습이 되어서일까?

늘 내 아이에게만큼은 곱지 않았던 내 톡 말투가 점차 부드러워진다.


아이와의 카톡에서


보고 싶다는 엄마 말에 "공부 안 하는 딸이어도 보고 싶어요?"라는 딸아이의 말에 현타가 왔다.

엄마의 사랑을 조건부로 보고 있었구나...

아직 중간고사 결과로 내 눈치를 보고 있구나.


갑자기 너무 미안하고 슬퍼졌다.

뿌리 깊어야 할 모녀의 정이 공부 따위에 휘둘린 것 같아 화도 났다.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이성으로 자존감 코칭을 해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아이에게 답을 했다.

"물론! 엄마는 너라는 존재만으로도 기쁘다."


아이는 '요새 퍼즐게임이 너무 재미있다'라며 평소와 다르게 훈훈하면서도 어색한 카톡 분위기를 바꿔보려한 것 같다.

그러나 분명 내 마음이 닿았을 거라 믿는다.


얼마 전 EBS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다큐멘터리를 한 적이 있다.

대학 서열화로 인해 입시 지옥이 만들어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지역 거점 국립대학들을 서울대 수준으로 함께 상향 평준화하자는 주장이었다.

수많은 찬반이 생기기에 충분하나, 서열화가 학생들에게 주는 영향은 긍정적이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EBS 다큐멘터리 K


따뜻해야 할 롱디 모녀의 카톡에서 서열화에 뒤처진 딸아이의 낮은 자존감을 확인한 엄마 마음은 찢어진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키워왔고, 아이가 변하는 것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 잘못이다.


아무리 성적이 바닥이어도 엄마의 사랑은 변함없다는 진심이 아이에게 깊게 심길 때 비로소 아이의 자기 존재감은 올라올 것이고, 그래야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든 이겨내고 단단하게 성장할 것 같다.


기말고사까지 또 한 달이 남았다.

엄마의 푸시로 움직이지 않도록, 자신이 직접 준비하고 계획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그저 잘한다, 잘한다 응원만 해보려고 한다.

내 마음 쉽지 않겠지만...


m.Cl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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