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홉 Apr 15. 2022

손질 안 된 꽃나무에도 벌은 머물렀네.

자연의 눈


산책을 했던 날이었다.

도로 옆에 붙은 들꽃을 구경하며 걸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마른 잎으로 지저분하게 엉킨 꽃나무가 있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듯

영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나뭇가지에 겨우겨우 달려있던 시든 꽃잎.

그건 볼품없지만 분명 동백나무처럼 보였다.

아무도 그런 꽃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을 것 같지 않았다.


대롱대롱 매달린 몇 점의 붉은 꽃잎을 쳐다봤다.

어떤 감흥도 관심도 없었다.


어디서 윙윙 소리가 나서 나무를 올려다봤다.

거기엔 두 마리의 벌이 꽃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얽히고설킨 한적한 꽃나무에도 벌이 머무는구나.

볼품없는 모양새라고 단정했지만,

자연의 눈으로 바라본 너는 그렇지 않았다.


붉은 동백꽃의 꽃말은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잘 어울리는 말 아닌가.


유년 시절, 지독한 외모 강박에 시달렸던 내가

이 사실을 조금 더 빨리 깨달았다면 좋았을 텐데.


때때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싫어했다.

외모, 몸의 강박, 성격 콤플렉스, 신체적 결함, 단점. 그런 것들을 나열하다 보면 금세 볼품없는 자신이 되어 있었다.


우리를 유약하게 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아무것도 없는 본연의 내가 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어떤 흐트러짐이 있어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고.

자연의 눈으로 보는 나는 그냥 나일뿐이라고.

투명하고, 볼품없고, 맨날 흔들리는 나 자신.


‘그대를 사랑한다’라고 속삭이는

동백꽃과 벌 몇 마리처럼,

가끔은 우리에게도 자연의 눈이 필요한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개를 쓰다듬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