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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뫼 Apr 19. 2022

그때의 언니에게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어른이 된 나


‘애들아 배고파? 짜장면 먹자!’


유퀴즈온더블럭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반인의 과거 인연을 찾아주는 코너를 한 적이 있었다. 한 여성분이 과거에 좋아했던 오빠를 만나고 싶다고 의뢰했고, 둘은 카페에서 만나 재회까지 하게 되었다. 그때의 기억이 얼마나 좋았으면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인연을 다시 찾고 싶었을까.  


사실 나에게도 그리운 인연이 있다. 유퀴즈를 보고 그를 찾아달라고 의뢰해 볼까 잠깐 상상했다.

사연 의뢰를 진작에 알았다면 정말로 신청했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하진 않지만 2008~9년도쯤. 내가 초등학교 5~6학년 때라고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나는 공부보단 놀기를 좋아했던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이 동네 저 동네를 쏘다니면서 놀이터를 점령하던 건장한 초등학생.  


주말이었던 것 같다. 친구 한 명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달리다 보니 어느새 꽤 먼 동네까지 왔었고, 다리가 아파서 근처 고등학교로 무작정 들어갔다. 우연히 쉬러 갔던 곳이 바로 ‘동산고등학교’. 당시에도 지금도 명문고라고 불리는 곳. 그곳에 자전거를 내려놓고 고등학생 언니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특유의 초딩력(?)으로 근처를 지나가던 한 언니한테 말을 걸었다.


탐정으로 빙의했던 초딩의 신상 조사 질문들. 공부를 잘하냐는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언니들이 ‘엄청나게 잘한다’며 말했었다. 우리의 말을 잘 들어주던 언니 덕분에 더욱 신나서 이것저것 질문을 했었다. 언니는 그런 질문에도 정성스럽게 대답해줬다. 바르고 친절했던 언니의 태도 덕분인지, 나는 정말로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에 대해서 조금 생각나는 게 있다. 동산고 교복과 검정 안경. 머리는 길었고, 정확하진 않지만 묶고 있었던 것 같다. 언니는 학교가 있었던 지역에 살던 사람이 아니었고, 서울인지 아무튼 먼 곳에서 아빠 차를 타고 통학한다고 했다.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학교를 다니는 게 너무 대단해서 기억에 남았다.


서로의 이야기를 오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친해졌고, 언니는 갑자기 우리에게 배고프냐고 물었다. 철없던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배고파요!’라고 말했고, 언니는 웃으면서 맛있는 걸 먹자고 했다. ‘짜장면 먹자!’라는 말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다 큰 어른(?)이 아니었던 언니에게 얻어먹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다행히 염치는 있었던 건지. 당황하며 거절하는 우리에게 용돈을 받는다며 걱정 말라던 언니. 사실 그날 과자 같은 간식을 먹었는지, 모르는 척 짜장면을 먹으러 갔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진 않다. 그때의 우리는 낯선 이에게 아주 다정한 감동을 받았고, 지금까지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으니까.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준 덕분에,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좋은 인연이 될 수 있다는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친절과 유머를 베풀어야지-하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가 <나, 트로트가수, 마트>라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유년시절에 언니 같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훗날 영향력을 조금이나마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이 글이 아주 우연히 언니에게 가닿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살다가 언니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지금은 어떤 어른이 되었는지,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아마 명문 학교에 다녔고, 공부를 잘했으니까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실히 살고 있을 것 같지만.


고등학생이었던 언니가, 어른이 된 지금도 누군가에게 친절한 다정을 베풀고 있진 않은지.  

나는 언니 덕분에, 어린이들에게도 친절함으로 무장한 어른이   있었다고, 그때의 언니보다 조금   어른이  내가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나, 트로트가수, 마트> 원문

https://brunch.co.kr/@m-ee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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