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즐거운가
이곳저곳 쿡쿡 찔러보는 엉성한 삽질로 '공부의 집짓기'를 조금 더 상세히 그려보겠습니다. 이 삽질을 3차원으로 풀어 보면 깊이와 넓이로 환원할 수 있습니다. 깊이는 수직적 확장이고 넓이는 수평적 확장입니다. 내 느낌은 깊이 파기만 하면 옆으로 넓히는 것은 뭐 그럭저럭 할만하지 않는가. 공학하신 분들은 공감이 되실 것이라 생각하는데―공학이 아니더라도―깊이를 파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시도하고 확인하고 다시 되돌아오고 다시 한걸음 딛고 다시 한걸음 나아가고 마치 퍼즐을 이리저리 맞추듯 슬금슬금 나아갑니다. 고생하며 어느 정도 깊이를 팠다 싶으면, 옆으로 넓이를 확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입니다.
"나무를 베는 데 딱 1시간이 있다면, 나는 도끼를 가는데 처음 45분을 쓸 것이다." - 에이브러햄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대로, 3/4을 깊이 파기 위해서 삽자루를 갈고 깊이 파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나머지 1/4은 넓히는데 쓰면 집 짓기를 성공할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이 원리나 노하우만 딱 깨우치면 깊이 파는 것에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견뎌 낼 수 있습니다. 수평으로 넓이를 키우는 것은 몇 번 해봐서, '조금만 기다려라'라는 심정으로 참을 수 있습니다.
설령 내가 한 삽질이 말 그대로 '삽질만 했네'라고 결론이 나오더라도 멈추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악착같이 찾아야 합니다. 적어도 '내 길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샘이니 손해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팠다가 메우는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 하다 보면 갑자기 끝없이 질주하고 싶은, 나를 가슴 뛰게 하는 고속도로를 발견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저에게 이 발견이란 것은 글쓰기입니다. 이제 전력으로 내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달리기 전략으로 무라카미 선생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 나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서 무언가를 마이너스해 나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1]라고.
비본질적이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지금의 세상에서 뺄샘하여 단순화하고 차원 축소하는 것은 매우 소중한 능력입니다. 오컴의 칼날처럼 표면적인 사실을 덜어내다 보면 남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던지는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운명적 공대생에게 글쓰기는 너무 생소하기에 그 질문은 직관적인 것으로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즐거운가'입니다.
철저히 내 안에서 답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타인에게는 뭐라고 적당히 '재미있다 즐겁다'라고 적당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잠시 속일 수 있더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금방 탈로 날 것입니다. 짧은 연재 과정에서 내 안에서 얻은 답은 '아주 순간의 즐거움은 있다'입니다. 글쓰기 시간의 대부분은 '그냥 쓴다'와 '뭘 써야 할까'로 채워집니다. 모두 채우고 남은 좁은 틈새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비율은 시간이 흘러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나의 글쓰기가 능숙해지더라도 과연 이 비율이 변할까. 우리의 삶 자체가 '곤궁하지 않으면 권태로우니까 즐거움의 시간 비율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원하던 것을 이룬 다음부터 즐거움은 잠시고 그 이후부터 그렇게까지 좋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보면 이 비율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것은 마치 글쓰기에 관한 게임의 룰과 같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게임의 룰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누구보다 게임을 잘할 수 있다".
이 게임의 룰을 받아들이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지루한 작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이 느려터진 지루함 속에서 나의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글쓰기 게임을 '즐겁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탁월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다 보면, 계속 쓰다 보면 더 할 수 있는 말이 생기면서 나의 언어가 창작되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 창작된 것이 내가 느낀 탁월함입니다. 과거의 나보다 아주 조금은 더 나아졌다는 것에서 즐거움을 발견합니다. 이 것은 확실히 내 밖에서는 답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인위적으로 내 밖에서 찾았다한들 아마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모래 위에 세워진 집처럼 기반이 튼튼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1]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인으로서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