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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신러너 Feb 09. 2024

배우는 건 어차피 삽질이다

쿡쿡 많이 찔러볼수록 얻을 게 많습니다 뒤늦게 깨우친 인생 방향입니다

‘무엇을 쓸까’ 고민할 때 바라보는 글이 있습니다.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글쓰기 최전선> [1]


의문을 갖고 그 물음에 스스로 답해보는 것입니다. 이 의문의 주제는 아주 가볍고 보잘것없는 것에서 꽤나 진중한 것까지 다양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문은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골칫거리나 정답을 찾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긍정이나 부정과 같은 감정에 대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대부분 순간적으로 갖게 되는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그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하나는 이미지 형태의 텍스트고 다른 하나는 음성 형태의 텍스트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항상 나타나게 되고 이때가 저에겐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는 세트장과도 같은 것입니다. 타인으로부터 질문을 받아서 대답해야 할 땐 세트장이 등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질문에 답을 찾는 것과는 다른 메커니즘임에 확실합니다.

이 세트장 이란 것의 모습은 우습게도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아주 넓은 마당에서 치러지는 과거시험 현장입니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개미만큼 작은 존재로 앉아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흑백으로 보이고 나로 여겨지는 존재는 컬러입니다. 관리 한 사람, 지금으로 치면 한 공무원쯤 되겠지요. 이 공무원이 두루마리를 촥 펼치는데 그곳엔 내가 갖는 의문이란 것이 간략하게 쓰여 있습니다. 이때부터가 시작입니다.


그리고 다른 텍스트인 음성은 나의 목소리임에는 분명하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느낌이 하고 싶은 말을 찾고 있음 정도를 '알아차릴 뿐'입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나와 그 사이에는 완벽한 분리감이란 것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어떤 생각들이 조합되고 만들어지는 것을 조용히 지켜봅니다. 이 세트장을 채우는 목소리는 ‘들린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듣다 보면 ‘그런가 그런 것도 같네’ 어떤 것에는 ‘오 그러네’하고 깨닫기도 합니다.

이 세트장이 등장하는 것에 저는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단 한 번도 싫증을 내거나 거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주제만 나올 수 밖에 없고 조바심을 가질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불현듯 떠오른 한 세트장의 모습을 짤막하게 소개해 보겠습니다. 공무원이 펼친 두루마리엔, "왜 배워야 하는가" 운명적 공대생이 대답하기에는 아직 뭐랄까 너무 묵직해서 이 것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또 다른 의문의 꼬리가 달립니다. 이럴 땐 방법이 있습니다. 조금 고치면 됩니다. 잠깐 앞으로 나가서 조금 수정할 수도 있습니다.


"배움이 무엇인가?"


한 결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why'이 전에 'what'에 대답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 같습니다. 객관적 데이터를 보아도 우리는 why 보다 what을 더 많이 알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구글] why, what 사용 빈도수 상대비교 시계열 데이터


이제 느낌에 귀 기울입니다. 배운다는 것에 제가 가진 표상은 '땅파기'입니다. 평평한 땅 위에 삽 한 자루 들고 멍하니 서있는 모습. 그리고는 여기도 찔러보고 저기도 찔러봅니다. 말라비틀어져서 너무 딱딱한 땅도 있을 테고 조금 폭신한 흙은 그런대로 하고 삽대가리가 재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이 적어도 제 경험으로는 '배운다는 것'을 그런대로 설명할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이 시나리오에서 팁 중에 팁은 어디를 파든 다다익선입니다. 쿡쿡 많이 찔러볼수록 얻을 게 많습니다. 이 것은 뒤늦게 깨우친 나의 인생 방향과도 일치합니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하자" 다채롭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빠르게 실패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거친 표현으로 '삽질'은 더없이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삽질은 벽돌을 착착 쌓아 올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모든 벽돌을 빈틈없이 쌓아 올리기보다 구멍이 숭숭 나더라도 말 그대로 이곳저곳 삽질을 해야 합니다. 애초에 완벽한 것이란 것이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늘에 떨어지지 않는 달을 보고 완벽한 구라고 했습니다. 2,000년이 지나도 완벽함에 내 마음이 동요했던 것은 100점이라는 '일루전'을 쫓았던 것 같습니다. 이 삽질로 '공부의 집'을 짓는 법은 최재천 선생의 <최재천의 공부> [2]로 대신하겠습니다.


"대가들도 꼭 완벽하지는 않다는 제 나름의 확신이 있어요. 젊은 친구들,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어차피 조금은 엉성긴 구조로 가는 게 낫다. 이런 것에 덤벼들고 저런 것에 덤벼들면, 이쪽은 엉성해도 저쪽에서 깊게 공부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쪽과 저쪽이 얼추 만나더라. 깊숙이 파고든 저쪽이 버팀목이 되어 제법 힘이 생깁니다."


(다음화 계속...)




[1] 은유 - 글쓰기의 최전선

[2] 최재천 - 최재천의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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