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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신러너 Mar 05. 2024

WHY1. 왜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할까(1)

내비게이션이 내 인생 여정의 다음 길을 찾아줄 수 있지는 않을까


남중 남고 공대 군대 현대 그리고 두 아들 아빠.

거두절미하게 제가 걸어온 경로입니다. 남자 중·고등학교를 거처 공대 자동차공학과에서 공부하고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 구호를 외치며 군대 운전병으로 전역했습니다. 남은 대학 공부를 마치고 감사하게도 자동차 회사에서 첫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추가로 지금은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네요.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제 삶이 어딜 가도 절대 과반 이상 남자 무리로 이끌렸고 가정까지 과반 이상이 남자가 되었습니다. 나머지 제 삶의 이끌림은 자동차입니다.


스무 살 이후 자동차와 많은 인연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 시뮬레이션 엔지니어로 커리어 트랙을 밟아 가고 있습니다. 매일 자동차 구동 장치를 연구합니다. 시뮬레이션 연구원으로서 여러 고급 기술을 개발하고는 있지만 정작 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이없게도 '내비게이션'입니다. 길치들에게 내비게이션은 단연코 혁명입니다.

이런 내비게이션에 찬사를 보내는 것은 제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물하나 운전병 시절 대대장님을 모시고 전주에서 이천으로 운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군용차에 내비게이션이 있을 리 만무하고 전국 지도 낱장만 있었습니다. 선배에게 가는 길을 이렇게 저렇게 가면 된다고 전해 듣고 영어 단어 외우듯이 암기했습니다. 대대장님이 “가는 길 알지”란 물음에 “(외워서) 알고 있습니다 운행 시작하겠습니다” 큰소리 외치고 출발했습니다. 고속도로 표지판을 보면서 가는데 어느 순간부터 선배가 말해준 것과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상황이 잘못되고 있는 것을 알았음에도 도저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온 몸에 식은땀만 흘렀습니다. 대대장님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시계를 보시더니 “어디로 가는 거야. 늦었잖아. 당장 차 세워!” 그리고는 대대장님이 운전대를 잡고 저는 옆자리에 앉아 도착할 때까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말 그대로,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첫 문장과 같은 상황입니다.


"길을 잃어버렸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1]


내비게이션만 있었더라면. 고개 숙이고 무지하게 자책했습니다. 지금도 차에 타면 내비 꼭 켜고 운전을 시작합니다. 이제 내비 없는 차는 상상할 수 없듯이 우리에겐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길을 찾을 때 내비만 있으면 걱정 없습니다. 내비게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나비가레(navigere)'에서 유래하는데 배(navis)와 항해(agere)의 합친 말로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를 뜻합니다. 예전에는 지구가 둥글다고 믿지 않았던 시대이고 저 먼바다 끝에 무시무시한 불구덩이가 있다고 믿을 만큼 미지의 세계였으니 항해술이 발달한 것은 당연합니다. 단어는 시대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니까 내비게이션은 이렇게 미지의 길을 갈 수 있는 기술이고 인류의 전략인 것입니다.


내비게이션의 어원이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서 시작된 것처럼 지금의 내비도 우리가 낯선 길을 찾는 데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과거 항해사가 별의 위치와 해안선을 관찰하여 현재 자기 위치를 파악한 것처럼 내비도 GPS를 이용해 현재 자신의 위치를 먼저 알아냅니다. 다음으로 목적지를 정합니다. 여기에서 목적지는 짐을 나르기 위한 눈에 보이는 옆에 있는 섬일 수도 있고 콜럼버스호처럼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신대륙을 수도 있을 겁니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나침반이나 태양의 뜨고 지는 것을 이용해 방향을 잡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질주합니다.


정리하면 1)현재 자기 위치를 찾는 것으로 시작해 2)목적지를 정하고 3)방향을 잡습니다. 그리고 4)질주합니다. 이 4단계 내비게이션 작동 원리가 바닷길이나 자동차길 뿐만 아니라 남중 남고 공대 군대 현대 그리고 두 아들 아빠 다음 내 인생 여정의 길을 찾아줄 수 있지는 않을까. 다의적 의미를 가진 '길 찾기'를 공간적인 의미에서 삶에 의미로 확장합니다.


"우리는 뼛속까지 탐험가이며, 공간 능력은 근본적인 인간의 조건이다." <way finding> [2]


길 찾기는 우리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인류의 시작이 곧 길 찾기입니다.

우리는 탐험가 DNA를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길 찾기는 생존, 탐험, 발견의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며 새로운 땅을 탐험한 것에서 시작해 길 찾기는 인류의 시작과 동일시됩니다. 이러한 원시적인 길 찾기는 음식을 찾고 새로운 서식지를 발견하는 데 필수적이었습니다. 인류학에서 중요한 개념 한 가지는 우리 인류의 길 찾기 능력은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서 모든 종 위에 군림하는 데 있어서 필수였다는 것입니다.





[1] 단테 알리기에리 <단테의 신곡 지옥>

[2] 마이클 본드 <way fi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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