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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신러너 Mar 28. 2024

WHY1. 왜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할까(4)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서 구체적으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당신 찾아 드리는 내비게이션

     STEP1.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 파악하기



내 삶에도 장소세포와 같은 스위치가 있다면 어떨까. 이 스위치는 삶에 여정에서 내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GPS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삶의 여정에서 내가 있는 '장소'를 파악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우두커니 서 있는 이곳은 어디인가요. 아름다운 꽃밭인가요 아니면 위험천만한 비무장지대에 지뢰밭인가요. 혹은 보기만 해도 어지럽게 얽히고설킨 미로인가요. 아니면 망망대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인가요. 사막 한가운데 우연히 찾은 오아시스인가요. 아니면 단 두 갈래길 밖에 없는 교차점인가요.


우리 삶은 공간과 장소를 떼놓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장소 없는 사건은 없듯이 우리는 언제나 그 '어떤 장소'에 있기 마련입니다. 모든 일은 필연적으로 어디에선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그 장소를 파악하는 것은 모든 것에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 기억이 그러합니다. 무엇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장소를 연상해서 기억을 되짚어 봅니다. 그것이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 수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가 시간이 지나 잊어버리면 우리는 다시 설거지했던 장소로 갑니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떠올리려는 기억을 되살려보지요. 장소는 단연 기억에 생명을 불어넣는 훌륭한 단서가 됩니다. [1]


기분 좋은 기억과 재미있었던 기억은 그곳을 좋은 장소로 저장해 둡니다. 또 오고 싶게 하죠. 이런 장소를 알게 해주는 장소세포가 고장 나서 무용지물이 돼버리면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실로 비극입니다.

모든 우리의 삶 속에서 장소세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스위치가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그곳에 다시 갈 수 있겠습니까. 그곳은 나의 애호가 담긴 맛집일 수도 있고 연인과 추억이 담긴 장소입니다. 공간을 넘어선 장소의 의미는 새롭게 시작한 공부일 수 있습니다. 혹은 새롭게 옮긴 직장도 포함됩니다. 아니면 취미이거나 걷기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모두 가능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발견하는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서 구체적으로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것입니다.
취향과 애호가 바로 우리 삶의 지도를 그리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장소세포가 있는 해마가 공간상에서 길 찾기에 그치지 않고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합니다."-하워드 에이헨바움 [2]


삶에 의미로서 장소세포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에 '찌릿'한 자극 신호를 보내며 응답합니다. 해마 연구의 권위자였던 에이헨바움의 말은 장소세포의 메타포는 그야말로 내 '인생의 길잡이'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목적은 내가 재미를 느끼고 행복해하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 발견으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혀 느낄 수 없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나. 진화심리학적 설명으로 <행복의 기원>에서 서인국 교수는 '행복감'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인간의 본능적 반응으로 재해석합니다. 한마디로 '찌릿'하는 전율이 없는 삶은 생존과 번식에서 도태되어 생존을 이어갈 수 조차 없다는 겁니다. 내가 행복해하고 재미있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 곧 생존의 목적이고 내 인생의 길잡이란 의미입니다. [3]



"인간과 동물에게 동시에 적용되면서 생각하기와 만들어내기처럼 중요한 제3의 기능이 있으니 곧 놀이하기다. 그러하여 나는 호모 파베르 바로 옆에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수준으로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인류 지칭 용어의 리스트에 등재시키고자 한다." -요한 하위징아 <호모 루덴스>[4]


우리 인간 종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18세기 인류를 호모 사피엔스, 그러니까 생각하는 인간으로 정의했습니다. 세기가 흘러 20세기 오늘날 우리는 '호모 파베르, 만들어 내는 인간으로 발전했습니다. 호모 파베르 본래의 뜻은 인류가 창의적으로 도구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고 생존과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것입니다.


서구 200년 경제 성장을 단 50년 만에 따라 재껴 버린 대한민국에선 호모 파베르가 '출근하는 인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우리 실정에 더 잘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지난 50년간 고도 압축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근면과 성실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업사회 발전의 원동력은 단연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현재 본능과 충동을 억누르고 금욕과 절제를 옳은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야만 자본을 축적하고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경우를 보더라도 제 아이들이 자동차는 좋아하지만 커서 저와 같이 공학자는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항상 노트북을 끼고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저를 보면서 아이들은 '공학자는 저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따분한 삶이네'라고 느낄 것입니다. 매 번 제가 보고 있던 노트북을 '퍽'하고 닫아버리기 일쑤입니다. 다시 열어서 할라치면 이번에는 전원 버튼을 눌러 꺼버리는 극단을 보이기도 합니다.

공학자뿐이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대부분 맘 놓고 놀지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혹여나 놀고 있더라도 왠지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이 싹틉니다. 이 불안은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언제나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는 선택을 강요합니다.


K-호모 파베르, '출근하는 인간'은 매일이 불안합니다. 불안하면 숲을 볼 수 없이 당장 모아야 하는 나무 베는 '일'에만 집중하게 합니다.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는 우리에게 놀이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 이상이라는 걸 보여줍니다. 놀이는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고 우리 자신을 표현하고 진정으로 즐기는 방법입니다.

“아이만큼 어른도 놀 줄 압니다.”




[1] 마이클 본드 <way finding>

[2] 하워드 에이헨바움 (2014), "(의역)해마 기능에 대한 선언적 기억과 공간 탐색 관점의 조화가 가능한가?", Neuron, 83(4), 764-770

[3] 서인국 <행복의 기원>

[4] 요한 하이징아 <호모 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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