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 접어들 즈음 셧다운 일정이 다가왔다.
여름의 끝자락에 접어들 즈음 셧다운 일정이 다가왔다. 셧다운은 연 2회 주어지는 복지 휴가로, 회사 문을 닫고 모든 직원이 휴가를 즐기는 것이다. 여행 스타트업이니 여행은 필수! 여름과 겨울, 각각 5일씩 주어지며, 여행 스타트업답게 넉넉한 여행 지원금은 덤이다. 일반적인 휴가 시즌을 피해서 셧다운 일정이 잡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직원분들이 연차를 붙여서 장기 해외여행을 떠난다.
“은빈아, 여권 재발급 당장 해!!”
오랜만에 해외여행에 한껏 들뜬 마음으로 동생 은빈이에게 방콕행 비행기 티켓을 선물했다. 직장인이 된 후 처음으로 주는 선물이다. 약 2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 이후 같이 해외여행을 떠난 적이 없었고, 이번 기회에 꼭 같이 가고 싶었다. 은빈이는 일주일이나 사용할 연차가 없어서 여행 중간에 합류하기로 했다.
늦은 저녁 시간, 방콕 공항에는 내가 먼저 도착했다. 대중교통 운행이 종료되어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호텔 문이 닫혀있는 게 아닌가. 누가 봐도 입구로 보이는 거대한 문이 굳건히 닫혀있고, 그 어디에도 벨을 누를만한 무언가가 없었다. 분명 24시간 체크인이라고 했는데 말이다! 가방을 들고 기웃거리는 나를 보고 문제가 생긴 걸 알았는지 드라이버는 호텔에 다른 입구가 없는지 같이 둘러봐주었다. ‘come here’ 다행히 옆문을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친절한 드라이버는 안쪽 로비까지 나를 에스코트해 주고, 체크인할 수 있도록 서류까지 확인한 뒤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렇게 안심한 것도 잠시 나에게 또 다른 문제가 찾아왔다.
“ok, passport and deposit please”
“...deposit?”
직원분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종이 위에는 숙소 보증금에 대해 적혀있었다. 보증금은 방콕 돈으로 약 5000바트였다. 물론 체크아웃 시 다시 돌려받는 금액이지만 문제는 내가 여행비로 환전한 금액이 5000바트 뿐이라는 거다. 별다른 해결책은 없다. 내일 저녁 비행기로 도착할 은빈이만을 기다리며 방콕 호텔에서 진짜 방콕을 하는 수밖에. 은빈이는 영어를 못해서 혼자 숙소까지 올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핸드폰 유심 설정은 잘 했는지, 길을 찾못 찾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한가득. 혼자서는 대중교통을 절대 못 타고 올 거 같아서 그랩 택시를 불러주었는데 은빈이가 탄 택시 드라이버가 어제 나를 데려다준 친절한 그 드라이어였다.
"oh, your sister?"
드라이버는 어제와 같은 호텔 앞에 서있는 나를 보고 자신이 태운 손님이 내 친 동생이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이렇게 뜻밖의 인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방콕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는 하루에 두 번씩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고, 버스를 잘못 타서 늦은 밤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추억을 가득 만들었다.
하루의 끝은 숙소에서 오늘 찍은 사진첩을 정리하거나 피곤해 곯아떨어질 거라 생각하겠지만 스타트업 마케터의 여행은 다르다. 휴가 중에도 회사 일은 해야 한다. 휴가 전 일주일 동안 야근을 했는데도 일이 워낙 많다 보니 여행 중 피곤한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려야 한다. 여행을 업으로 삼으니 예전과 다르게 온전히 여행을 즐기지 못하게 되며 여행 자체에 대한 권태감이 밀려왔다. 여행 중 보는 것, 먹는 것, 타는 것 , 모든 게 콘텐츠로 보이면서 여행자의 여행을 즐길 수 없게 된 거다. 여행=행복이 아니라 여행=콘텐츠가 돼버린 인생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우울감이 든다. 혹여나 나 혼자 그런 걸까 싶었는데 회사에서 휴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동기분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아쉬운 방콕 여행, 아직 여행과 일을 분리하는 것은 아직은 어렵지만, 에디터 팀 리더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여행과 업무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여행의 권태기조차 이겨내며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