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첫사랑이다.
여행 스타트업에 다니면 자주 여행을 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에디터팀에서 기획 취재를 통해 매거진을 작성하면 나는 글을 SNS 특성에 맞춰 2차 가공해 업로드를 한다. 그래서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전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인원이 필요한 취재가 생겼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신나게 어깨 춤을 추고 있었다. 분명 미소를 참고 있는 내 표정을 누군가 봤을지도 모른다. 에디터 한 명, 마케터 한 명, 이렇게 둘이 한 팀을 이뤄 취재에 나섰다. 나의 첫 취재 파트너인 리아는 입사 동기이자 언니 같은 존재다. 물론, 나이로도 언니이긴 하다. 리아는 약간씩 덤벙이는 구석이 있지만 사람들을 알뜰살뜰 잘 챙기고, 뷰티 꿀팁이 많아 많은 직원들의 뷰티 컨설턴트 역할을 담당한다. 내향형이라 대인관계에 힘들어 하는 나에게 리아의 관심과 배려가 큰 힘이 되었고, 회사에서 가장 빠르게 마음을 열게 된 동료였다.
취재는 기대만큼 즐거웠지만,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알이 많았다. 첫번째 장소인 카페에 도착해 주문한 커피를 마시기까지 약 40분~1시간이 걸렸다. 주문하고 메뉴가 나오기 전까지 카페 내부를 촬영하고, 음료가 나오면 다양한 각도와 컨셉으로 촬영을 한다. 방문한 카페는 테라스가 있는 3층 건물었는데 모든 층을 두 세번씩 오르내리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 안돼!! 아니 뭐해요. 위험해요!!’
3층 야외 테라스에서 남산 타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중이었는데, 강한 바람이 불어 촬영에 중요한 카페 엽서와 소품들이 날라갔다. 리아의 외침이 들리는 순간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난간을 넘어가 소품들을 주워왔다. 깜짝 놀란 리아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찍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바탕 크게 웃으며 촬영을 마치고 드디어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며 음료 한모금을 마셨다. 시간이 오래 지나 얼음이 다 녹아 밍밍한 커피와 차갑게 식어버린 베이커리를 먹으며 스피드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예쁜 사진만 찍다가 음식의 맛은 전하지 못할 테니까.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중에도 리아는 핸드폰과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동할 때나 취재를 마치면 슬랙(카톡과 같은 메신저)으로 보고를 해야 했고, 이동하는시간을 틈타 촬영한 사진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름마저 예쁜 하늘을 볼 여유도 없이 바쁜 그녀를 보며 취재가 쉽지만은 않다는 걸 다시 느꼈다. 다음 장소인 남산타워에 도착해 맥주 피크닉 컨셉 촬영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각도를 잡고, 모델이 되었다가 다시 사진가가 되었다가 정신이 없었지만 어느새 템포를 찾아갔다. 카메라 프레임에 담긴 노을이 지는 서울의 시티뷰를와 그때 마신 맥주의 맛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처음은 첫사랑과 비슷하다. 처음이라는 긴장과 설렘이 평소보다 감각들이 예민해지기 때문에 오랜시간 뇌와 가슴에 깊게 새겨져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남산 취재 매거진 오늘 업로드 완료!”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출근 길, 원래 빈속에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이제는 버릇처럼 연한 커피 한 잔을 내린다. ‘띠링'하고 울리는 슬랙 알림에 무미건조한 눈으로 핸드폰을 바라보고 후다닥 자리로 달려갔다. 컴퓨터를 켜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장 상단에 올라온 매거진을 클릭했다. 드디어 내가 촬영한 사진이 매거진에 올라왔다. 직접 글을 쓰진 않았지만 리아에게 말했던 내용이 글이 되어 매거진이 탄생하니 기분이 묘했다. 이때부터였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일에 흥미가 생긴게. 퇴근 후 취업 전에 기록용으로 작성했던 블로그를 다시 열어 무작정 1년 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건 여행 일기장이 남겨 있는 순례길 이야기 뿐이다. 쓰면 쓸 수록 기억이 생생해지는 기분. 글을 쓰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인지 몰랐다. 퇴근 후 나의 취미 활동이 생겼다.